저널리즘 혁신, ‘기술’ 아닌 ‘저널리즘’ 본질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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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연속 토론회’ 저널리즘·독자·소통·전문성 강조

1. 우리는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특종-권력과 자본을 향한 비판정신-즉, 숨겨진 배경을 찾는 분석 기능을 이미 잃었다.

2. 우리가 단지 많이 안다고 해서, 제한된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할지,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수렴할지 생각해야 한다.

3. 물론 아직 전통매체는 가장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에 의해 읽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로만을 줄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 트래픽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시청률과 발행부수는 무의미하다.

4. 우리는 잘못된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디지털부문과의 협업도 불분명하다. 참여 지향적이고 교양적인 시민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들과 어떤 연결과 관계를 맺을지가 관건이다.

-‘독일 슈피겔 혁신 보고서 초안’ 중

종이를 통해 구현됐던 신문이라는 매체는 디지털을 통해 전파되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에 밀려 ‘전통’ 내지 ‘올드’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통매체들은 ‘디지털’을 통한 저널리즘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저널리즘이 진정한 혁신을 이루려면 ‘저널리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8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기자협회 연속 토론회 '저널리즘과 혁신: 성찰적 진단 및 과제’에 참가한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이 저널리즘 혁신을 위해 제시한 키워드는 크게 ‘저널리즘’, ‘독자’, ‘소통’, ‘전문성’이다.

▲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8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기자협회 연속 토론회① 저널리즘과 혁신: 성찰적 진단 및 과제’에서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이 저널리즘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D저널

“디지털(기술)만으로 저널리즘은 구원되지 않는다”

발제자로 나선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최근 몇 년 간 전통매체들이 디지털 진입을 시도하며 혁신에 나섰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평판과 신뢰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여전히 ‘킬링 타임’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아니라 결과로서의 뉴스에 치중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전통매체에) 디지털 옷을 입히는 정도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리고 전통매체가 모바일과 SNS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인가? 참여 지향적, 교양의 독자를 만나기 위해 일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합리적 소통이 이뤄지고 있나”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최 교수는 △신뢰의 저하-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 부족 △독자의 이탈-독자에 대한 이해 결여 △창의의 부족-비슷한 기술과 도구에 맹신 등 혁신의 기본적인 한계를 짚으며, 앞으로의 혁신은 신뢰와 관계, 사회의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디지털(기술)만으로는 저널리즘은 구원되지 않는다. 단지 안심시킬 뿐”이라며 “미국 <뉴욕타임스>는 오직 하나만 안다. ‘진지한 저널리즘’.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지난 4일 영국 BBC와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호주 ABC, 한국 <뉴스타파> 등 전 세계 109개 언론사와 함께 분석한 중미 파나마의 최대 로펌이자 ‘역외비밀 도매상’으로 악명 높은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1977∼2015년 기록을 담은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사진은 ICIJ 홈페이지. ⓒ화면캡처

혁신, 디지털 아닌 저널리즘의 본질에서 시작

토론 참가자들도 ‘디지털’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진정한 혁신이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저널리즘이 진정한 혁신을 이루려면 디지털이라는 기술보다 저널리즘이라는 본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익현 <지디넷 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은 기존의 혁신은 기술적인 측면으로 이야기되어 왔으나 진정한 혁신의 출발은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예를 들면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익명 취재원 활용 규칙을 내놓았다. 우리 언론도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런 아주 기본적인 관행을 바꾸는 게 혁신의 출발”이라며 “(잘못된)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기술적 혁신에 대한 담론을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근본에 대한 성찰, 저널리즘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데 안 지키는 것들, 거기서부터 변화의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소장은 혁신을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자의 전문성’과 ‘독자’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기자가 전문적 영역으로 나가면서 독자가 (언론에) 오게 만드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현재 언론사 디지털 인력이 적은 건 사실이나 디지털 인력을 확충한다고 해서 디지털 혁신이 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조직의 무게중심이 바뀌어야 한다. 철저하게 ‘독자’로 무게중심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대용 <뉴스타파> 뉴미디어팀장은 ‘디지털’로 저널리즘의 논의가 치우치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좋은 콘텐츠, 오리지널 인포메이션을 확보하고 알리는 데 집중하는 게 저널리즘 기본이고 여기에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뉴스타파>는 평소에는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러나 오리지널 인포메이션을 확보하면 다른 매체가 <뉴스타파>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며 “디지털 혁신이 저널리즘의 기본에 대한 논의를 외면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취재방법, 취재환경 개선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오리지널 인포메이션 확보가 기자의 기본 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종이신문 자체는 사라지거나 약화되겠지만 저널리즘의 본질은 안 변하고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저널리스트, 한국의 저널리즘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말할 줄 아는 것”이라며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정교하게 가공하는 걸 왜 안 하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저널리즘의 본질은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라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지금 한국 저널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저널리즘의 기본인 독립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뉴스타파>에 열광하는 건 당연하다”며 “올바른 뉴스, 좋은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진흥재단에서 할 일은 현역 기자가 어떻게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지, 그러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디지털 혁신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SBS <스브스뉴스>

혁신 위해 필요한 건 완벽 아닌 실행과 도전

독자들의 참여와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은 “독자들이 좀 더 참여해서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나눠주는 역할, 이게 현재 언론사에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기자들이 시민들의 참여, 지적인 시민들, 목격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일종의 ‘에디터’ 역할을 해야 하고, 시민들은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순 교수는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한 우물만 파고, 또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이 좋은 기자라고 분류되고 평가됐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성도 어느 정도 갖추고, 해당 분야에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소통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성’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아낌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좋은 기사를 쓰는 사람에 더해 좋은 소통을 하는 사람, 그게 기자의 전문성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독자 내지 이용자가 정보 지출 비용을 줄이는 상황에서 콘텐츠 생산자, 특히 뉴스 사업자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그럴수록 타 언론사, 이해관계자, 특히 독자와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미국 <워싱턴포스트>를 방문했을 때 기자가 참여해 지역 독자와 함께 하는 일정을 통해 지역 독자와 끊임없이 만나고 있었다. 이게 우리가 발굴해야 할 혁신의 키워드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혁신의 시작도 ‘실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혁신안을 가지고 실행하려 한다면 혁신은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영인 SBS 뉴미디어실 스브스뉴스팀장은 “언론사 혁신을 이야기하면 항상 드는 생각이 편성과 편집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 같다. 혁신도 편성과 편집처럼 완성된 형태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강박이 있는 거 같다”며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타트업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혁신이라는 건 편집된 ‘(혁신)안’에 의해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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