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렇게 다시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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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다시 4월이다
[리멤버 세월호 ①] KBS 라디오 세월호 특집 다큐 ‘어떤 약속’ 박대식 PD
  • 박대식 KBS 라디오 PD
  • 승인 2016.04.12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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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이다. 이 글이 읽혀질 때쯤엔 가수 장범준의 ‘벚꽃앤딩’ 노래가사처럼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거리마다 흩날리고 있을 것이다. 벚꽃비 아래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벚꽃이 만발할 수록 지독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눈물을 왈칵 쏟아낼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마저 화사한 벚꽃마저 비수가 되어 기억의 숨골을 깊게 찌른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이 그러하고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이 그러하다.

지난해 4월 바로 이맘때였다. 벚꽃이 만발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고에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세월호 생존학생을 만났다. 세월호 1주기 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서였다. 고통 중에 용기를 내어 인터뷰에 응해준 생존학생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혹 다시 고통스런 기억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만남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벚꽃이 예쁘기로 유명했고 벚꽃 시기가 되면 학생들 모두 다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한다. 사진은 자료사진 ⓒ뉴스1

생존 학생의 시선이 학교 안 벚꽃나무에 닿아 있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벚꽃이 예쁘기로 유명했고 벚꽃 시기가 되면 학생들 모두 다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한다. 사고 전 반 단체사진 찍었던 바로 똑같은 공간의 자리에서 사고 후 남은 학급친구들끼리 사진을 찍었는데 서른 몇 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열 명도 채 안되었다 한다. 살아있었다면 그 친구가 이걸 좋아했을텐데…. 그 친구가 있었다면 같이 신청해서 함께 할 수 있었을텐데…. 자신만 행복한 것 같아서..자기만 웃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많이 미안하다는 생존학생은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슬픔만큼이나 힘들었던 건 사고 이후 상황이었다며 무겁게 다시 입술을 떼었다.

“그 때는 당연히 해결이 될 줄 알았어요, 제가 겪었던 사고는 제가 배안에서 느꼈을 때랑 배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고였고, 그걸 제가 온 몸으로 느꼈으니까 뭔가는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지는 게 없고 부모님들의 힘겨운 싸움을 숨죽여 지켜보던 친구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바로 부모님들이 고생하는 걸 봤기 때문이었어요"라고…

그랬다. 생존학생의 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친구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갔어야 했는지 그 이유와 진실을 온전히 알기 원했고 또 그것에 대한 책임자가 있으면 그 책임자가 처벌을 받기를 바랐다. 바로 그럴 때만이 친구들 몫까지 살아나가야 하는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랬다. 조금만 상식적인 대응과 조치가 이뤄졌으면 다 살릴 수 있었던 사고. 침수가 확인되자마자 승객들을 모두 갑판으로 대피시키고 구명조끼와 구명정을 이용해 탈출시켰으면 될 일이었다. 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럼 지난해도 단원고 학생들은 여느 꿈 많은 학생들처럼 벚꽃 아래서 추억을 남겼을 것이고 올해엔 자신의 꿈을 향해 각 자 멋지게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친구들은 지금 없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4월이다.

거짓말처럼 세월호 진실의 시계는 여전히 멈추어있다, 세월호 1주기 다큐멘터리를 2주기인 올해 그대로 편집 없이 다시 들려드려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라 할까?

▲ 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유리벽에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형상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리본에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실종자 9명의 이름은 굵은 글씨로 쓰여있다.ⓒ뉴스1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결이 다른 시선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누군들 안타깝지않겠느냐. 그러나 “이제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시각. 그러나 만약 우리 언론이..보다 공정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세월호에 대한 보도와 심층취재를 지난 2년간 해왔었다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어쩌면 가장 안타깝고 긴박했던 사고 후 72시간여를 지상파가 아닌 인터넷방송으로 실시간 목도하게 되면서부터였으니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해법에 대한 접근이 정파적으로 갈리게 된 상황에서 세월호 인양 이후에도 그 상처가 아물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10년! 20년! 아니 평생이 걸리더라도 세월호 희생학생 부모님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 유가족과 국민이 납득하고 공감하는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분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부모이니까! 아빠고 엄마이니까. 세월호 속 아이들을 보낼 수 없는 이유이다.

지난 해 세월호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면서 뵙게 된 많은 유가족분들 그분들은 정말 어디에서도 뵐 수 있는 우리 이웃 평범한 아빠 엄마였다. 그분들에게 '가만히 있으라'하기 전에 그 아픔과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게 먼저가 아닐까? 진실규명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믿는다. 바라기는 더 늦기 전에 그 진실을 향한 항해에 무엇을 준비하고 기록해 나갈 지 더 많은 언론인이 더 많은 PD들이 동참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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