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糖)하지 않으려면 알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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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SBS 스페셜-설탕 전쟁’ 이윤민 PD

어렸을 때 단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썩은 이빨 수가 우리 반 1등이었다. 실험 정신도 강했던지, 초콜릿에 밥을 비벼 먹어본 적도 있다. 사실 그 때만해도 설탕은 충치의 원인으로만 인식되었다.

과학적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설탕의 만성적이며 전방위적 위험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설탕 섭취는 오히려 증가했다. 지방이 비만과 심혈관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가공식품에서 고소한 기름을 대신해서 단맛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설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2016년 보건의료 분야의 가장 큰 화두는 ‘설탕’이 될 것이라는 것이 명확했다. 미국의 첨가당 제한 가이드라인, 영국의 설탕세 도입 발표는 그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 쿡방 열풍 속에 외식업 레시피가 ‘집밥’ 속으로 들어온 것은 우려할 일이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당류 섭취는 가공식품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부 쉐프들이나 영세한 자영업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일 수 있다. 핵심은 거대한 식품 산업이 만들어내는 가공식품에 함유된 여러 형태의 당(糖)이다(심지어 이런 설탕범벅 제품이 건강식품인양 선전되기도 한다). 쿡방의 불편한 진실은 사용량자체라기 보다는 일반인들이 갖고 있던 설탕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무너뜨린 데 있다.

'설탕전쟁'에 소개된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하루 설탕 섭취량 ⓒSBS

‘설탕’을 다룰 때 가장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당(sugar)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유리당(free sugar)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 가이드라인은 첨가당(added sugar)이다. 이 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과일주스를 포함하느냐 여부다. 미국에서 첨가당 기준을 사용한 것이, 가공 주스를 제외하기 위한 거대기업들의 로비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렇듯, 설탕은 정치적이며 경제적이다. 우리는 WHO 기준을 따르기로 했다. 당류 섭취에 있어 과일주스를 빼놓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과일 그대로 당을 섭취하는 것은 괜찮다.)

<SBS 스페셜> 제작진이 가장 고민한 부분은 ‘사람들이 설탕 나쁜 건 다 알지 않느냐?’였다. 시청자들이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설탕의 문제점을 직접 느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프로그램의 중심축을 ‘체험’으로 잡았다. 우리 생활 속 곳곳에 숨겨진 설탕의 존재를 직접 확인해보자는 거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설탕 없이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관찰하기로 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개그맨 남희석 씨와, 4명의 일반 참가자들이 셀프 카메라를 이용해 하루하루를 기록해 나갔다.

그러나 ‘~없이 살기’만으로는 너무 진부한 접근으로 보였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수퍼사이즈미(Super Size Me)’를 패러디한 형태인 ‘슈거사이즈미(Sugar Size Me)’를 해보자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먼저 몇 명의 내분비 전문의들의 자문을 구했다. 한 달 정도 설탕 섭취를 늘려도 수치상으로 별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자는 생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수퍼사이즈미’를 실험이라고 하지 않고 프로젝트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의 성격상,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의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3년 전 <SBS 스페셜>‘끼니반란’에서 간헐적 단식 실험에 참여했던 심재호 박사, 그리고 2014년 '희망TV SBS'에서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나섰던 유진아 원장이 프로젝트에 자원했다.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방송에서 나왔듯이 결과는 예상을 넘어섰다. 심재호 박사는 지방간 초기 증상 등 몸에 이상을 느껴 중도에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유진아 원장도 30일 만에 내장지방이 늘고, 다리가 붓는 등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설탕의 무서운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에서 '슈거 사이즈 미' 프로젝트에 도전한 출연자들 ⓒ

내가 스태프 회의에서 매번 강조한 것이 있다. 단지 건강정보 프로그램에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고. 다큐다웠으면 한다고.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나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우리 제작진 사이에는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한 어렴풋한 공감대는 형성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정보와 체험 프로젝트 이외에, 설탕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떠한 시각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신호등 표시제’가 좌초하는 과정과 ‘그린푸드존’이 유명무실해 진 이유를 짚어봤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가공식품에 포함된 당량을 각설탕의 숫자로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었다. 시민들이 설탕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길 바랐다.

많은 분들이 식생활은 개인이 알아서야 해야 할 일리라며, 사회ㆍ국가적 차원의 규제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바로 여기서부터 '먹거리 정치(food politics)'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간섭이 정당한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가 적절한 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올바른 방향의 논의 전개를 위해,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해 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에 대한 결정을 대기업이나 관료, 전문가의 손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민의 참여와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역할을 상징적으로 선도한 것이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다. 정치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먹거리가 예능의 소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정치적 담론도 될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새 ‘반란’(끼니반란, 2013년)도 일으키고, ‘전쟁’도 치렀다. 그러나 우리의 식생활과 그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도 부딪쳐야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알고, 행동해야 한다. 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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