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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 개표방송,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나니

[인터뷰] SBS 선거방송 ‘2016 국민의 선택’ 주시평 PD 이혜승 기자l승인2016.04.19 13: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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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있지 않나. 선거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이때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할 몫이다”

제20대 총선 결과만큼이나 놀라운 SBS 선거방송이 연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SBS는 선거방송을 위해 사는 것 같다’, ‘약 빤 거 아니냐’는 말이 나돌 만큼, 재치 있는 그래픽과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방송 당시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는 ‘스브스(SBS를 한글 초성으로 재미있게 부르는 말) 선거방송’ 관련 검색어로 꽉 채워졌고, ‘다음’ 앱과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SBS 선거 방송을 시청한 이용자는 76만 명이었다.

19대 총선, 18대 대선을 거쳐 20대 총선 방송까지 자칭 티칭 ‘스브스 선거방송 전문PD'가 된 주시평 PD를 15일 오후 서울 목동 SBS에서 만나 ‘빅재미’ 속에 숨겨진 기획의도를 들어봤다.

▲ SBS <2016 국민의 선택> 중 'SBS 총선극장 도전! 300석' ⓒ화면캡쳐

단순 패러디 'NO', "재미보다 정치 맥락 담은 '스토리'가 먼저"

주 PD는 19대 총선, 18대 대선 때 선거방송에 스토리텔링을 접목시켜 선거와 정치가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때 좋은 평가를 받은 이후, 이번 20대 총선 방송에서는 재미는 기본이고 꼭 알아야 할 정치 히스토리를 넣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획을 시작했다. 이런 마음에서 선보인 ‘총선 삼국지’, ‘총선록-잠룡이 나르샤’, ‘SBS 총선극장 도전! 300석’ 등의 다양한 바이폰은 장면별로 떼어놓고 보면 재미있는 패러디에 불과하지만, 그 흐름 속에는 정치 맥락이 담겨져 있다.

대표적으로 주요 총선 후보들을 영화 주인공에 패러디한 ‘SBS 총선극장 도전! 300석’은 제임스 본드로 변신한 안철수 의원이 총을 쏘며 시작한다. 주 PD는 “이번 총선 정국이 사실상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부터 촉발됐다는 데에서 모티브를 삼았다”며 줄거리를 소개했다.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전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 총을 쏘고, 문 전 대표는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한다. 이어 '3당 체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특수우산으로 총알을 막아낸다.

위태로운 자세로 등장한 김한길 의원은 국민의 당으로 당을 옮겼다가 불출마 선언을 해버린 ‘위기에 빠진 남자’를 표현한 것이다. ‘공천괴담’ 문구를 걸고 무섭게 등장한 박영선 의원은 한때 국민의 당으로 옮기느냐 마느냐로 더불어민주당을 떨게 만든 적이 있었다. 뒤이어 나온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는 원래 ‘노원 병’이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이 지역구에 안철수 의원이 가게 되면서 지역구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노원 병’에 새롭게 출마한 이준석 후보를 바라보며 달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주 PD는 “SBS가 재미만 추구한 건 아니다. 네이밍 작업 하나하나에 정치적 맥락을 담았다”며 “중요한 정치 맥락을 기본으로 스토리를 먼저 짰다. 거기에 재밌는 그림을 얹은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 SBS <2016 국민의 선택> 확정 당선자 소개 ⓒ화면캡쳐

단순 OST 'NO', BGM에 담긴 정치에 대한 바람

이번 선거방송은 그래픽 외에도 다양하게 사용된 BGM이 주목받았다. 이 역시 아무 의도 없이 선곡된 것은 아니었다.

선거방송이 끝나기 직전, 당선 확정 후보를 소개하는 영상에서는 과거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던 애국선열들의 모습이 함께 비춰진다. 이때 영화 <왕이 된 남자, 광해> OST 중 '상참 가는 길'이 흐른다. ‘상참’은 매일 아침 국왕을 알현한다는 뜻이다. 주 PD는 “이 시대의 왕은 유권자 아닌가. 상참해야 할 대상이 조선시대에는 왕이었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라는 뜻에서 이 음악을 선곡했다”고 밝혔다. 그는 “4월 13일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없던 시절에도 상해임시정부를 세웠던 선열들을 생각하며,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이 정말 엄중하다는 걸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표현해봤다”고 말했다.

개표 이전에는 전국 투표율을, 개표 이후에는 각 지역의 당별 의석수를 소개하는 ‘투표로가 간다’에서는 존 레논의 ‘이매진’이 흐른다. 4년 전 19대 총선 방송 때 사용했던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를 잇는 선곡이다. 주 PD는 “정치는 극렬한 싸움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한국 사회가 잘되자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웃어 보이며 “그런 의미에서 시청자가 원하는 사회는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 생각에서 ‘이매진’을 선곡했다”고 밝혔다.

▲ SBS <2016 국민의 선택>의 주시평 PD ⓒPD저널

반짝 아이디어 'NO', '집단지성'과 '밤샘 검색'의 힘

이 모든 아이디어가 주 PD에게서만 나온 건 아니었다. 그가 밝힌 아이디어의 원천은 ‘집단지성의 힘’이다. 작년 7월 선거방송기획단이 꾸려지고, 10월에 주 PD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선거방송 기획을 시작했다.

6개월 동안 200여 명의 사람들이 선거방송을 위해 힘을 합쳤다. PD, 작가, 기자, 기술 감독 등의 제작진이 모두 모여 끝없는 회의를 했다. 영화 패러디를 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천만 영화’ 리스트를 뽑고,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이라고 꼽는 장면들을 골라냈다. 이렇게 후보자와 캐릭터를 매칭해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영상을 구성하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

기획과 동시에 진행한 그래픽 작업은 넉 달이 걸렸다. 중간 중간 촬영이 결정 난 장면들은 바로 촬영에 들어가기도 했다. 부득이하게도 겨울에 민소매 차림의 마라톤 장면을 찍게 되면서 출연진이 고생하기도 했다. 선거방송 한 달 전부터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40여 명의 후보들을 촬영했다. 안철수 후보가 총을 쏘는 장면, 이준석 후보가 빗자루를 타고 위 아래로 움직이는 장면, 유승민 후보가 머리를 깎는 장면 등은 모두 후보자들이 실제로 크로마키 배경 앞에서 연기를 펼친 결과였다. 촬영 전에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부탁을 거절한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즐기며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 SBS <2016 국민의 선택>에 대한 SNS 이용자 반응 ⓒSBS 트위터

"정확성과 공정성은 기본···재미있게 전하는 건 지상파 '책무'"

선거방송은 소위 ‘돈 되는 방송’이 아니다. 그럼에도 SBS가 이렇게 선거방송에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해 주 PD는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 알권리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선거”라며 “이때 선거방송의 정확성, 공정성은 기본인 거고 여기에 더해 그 맥락까지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건 지상파의 책무”라고 답했다. 그는 “지상파가 싸움만 부추길 순 없지 않나. 집안에서도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식이 모두 표가 갈리는데 그걸 TV가, 선거방송이, 즐겁게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87년, 한국에 선거방송이 처음 도입된 당시 KBS와 MBC는 미국, 일본 등의 선거방송을 참고했다. 결과 분석 위주의 미국식 선거방송, 좌담 분석식의 영국과 프랑스 방송 등을 따랐다. 하지만 그건 그쪽에 관심이 많은 그들의 문화였다. 한국의 실정, 한국 국민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주 PD는 “한국만의 새로운 선거방송 포맷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라며 “이제 오히려 해외 선거방송이 우리한테 와서 배워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총선 때는 알자지라 방송국이 SBS 선거방송을 모두 촬영해가기도 했다.

‘진심 개표방송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기획이었다’는 댓글 반응이 가장 기뻤다는 주 PD는 “SBS 선거방송 덕분에 정치인 이름 하나라도 더 알게 되고, 선거에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 정치에 대한 관심의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혜승 기자  coa331@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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