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드라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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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드라마들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기억’과 ‘시그널’ 그리고 세월호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6.04.19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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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를 맞아 우리는 새삼 2년 전의 다짐들을 떠올리게 된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그 다짐은 과연 얼마나 지켜졌을까.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다는 핑계로, 또 그 생존의 환경 속에서 버텨내는 것도 벅차다는 핑계로, 때로는 비겁하게도 과거에 머물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야한다는 그럴 듯한 말에 미혹되어 우리는 기억 속에서 당시의 다짐들을 저 밑으로 가라앉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호는 여전히 저 차가운 물밑에 가라앉아 있지만 그 수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기 이를 데 없으니.

하지만 이 밑바닥에 가라앉은 이물감과 부채감 같은 것들이 때로는 드라마 한 편으로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tvN <기억>은 그런 드라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성공한 변호사 태석(이성민)이 처한 상황은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로펌 변호사로서 거대기업들의 더러운 죄들을 변호하고, 때로는 법정에서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협박하기도 하는 태석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야 자신의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우리네 기성세대들의 삶을 표징하는 면들이 있다. 즉 살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뛰고 또 뛰어왔지만 그런 삶이 누군가를 파괴하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삶도 파괴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이제 다른 삶을 살려 노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 tvN <기억> ⓒCJ E&M

흥미로운 건 그렇게 강박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이유가 뺑소니 사고로 죽은 아들의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석은 그렇게 늘 잊지말아야 할 기억으로부터 도망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뺑소니범은 다름 아닌 그가 일하는 로펌 사장의 아들이다. 즉 아들의 죽음을 잊는 대가로 그는 성공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 이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가. <기억>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건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가 여러모로 우리네 사회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기억의 수면 위로 다시 떠올린 또 한 편의 드라마는 종영한 tvN <시그널>이다. <시그널>의 지속적인 메시지는 무엇이었던가. “포기하지 말아요”, “미래는 바뀔 수 있어요” 같은 대사에 담겨진 것은, 끝없이 터져 나오지만 무언가에 의해 덮여지고 묻히는 미제사건들의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강렬한 호소다. 오죽했으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무전기라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판타지적 오브제를 활용했겠는가. 하지만 그 강렬한 메시지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황당한 판타지마저 기꺼이 받아들여줬다. 그리고 마치 저 차디 찬 바다 밑에 가라앉혀 두고 마치 그런 일조차 벌어진 적이 없었던 듯 바쁘게 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그 고통과 아픔들 그리고 죄책감과 부채감 같은 것들을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끄집어내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덮으려는 이들의 총구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이재한(조진웅) 경사의 숭고함에 기꺼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당시 배가 침몰하던 그 순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를 상세하게 다시 보여주었다. 구조가 아닌 기가 막힌 보고체계 하에서 배는 허망하게 가라앉아버렸다. 고통스러워 잊으려 했던 기억들은 다시금 생생해졌고, 그렇게 잊으려했다는 마음을 발견하고는 우리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기억’과 ‘시간’은 그렇게 잔인하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흐릿해진다. 그것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일지라도.

▲ tvN <시그널> ⓒCJ E&M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포착해 보여주는 <기억> 같은 드라마나, 잔인하게도 시간에 의해 없었던 일처럼 치부되어 버리는 많은 사건 사고들의 진실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아낸 <시그널> 같은 드라마는 그래서 우리의 병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그 고통을 넘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 이들 드라마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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