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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장애, ‘치트키’여선 안 된다

[위클리포커스] 현실 반영하는 드라마, 장애인은 어디에?...극적 갈등 위한 도구 등으로 사용 김세옥 기자l승인2016.04.20 01: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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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방송된 SBS 일일드라마 <마녀의 성>에서 희재(이해인)는 자신 때문에 다리를 다쳐 하반신 신경이 마비된 단별(최정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원히 눈 뜨지 말고 잠들어요.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구차하게 살면서 민폐 끼치지 말고.” 같은 달 15일 방송에서 희재는 단별의 식사를 가져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여기다 둘 테니 기어와서 먹어봐”라고 말하더니, 이내 그릇 속 음식들을 바닥에 쏟은 뒤 “기어와서 핥아 먹는 게 어떨까. 이게 네 수준이야. 걷지도 못하고 내 발 밑을 걸어 다니는 수준”이라고 조롱한다.

드라마 속 적대하도록 설정된 관계에서 악역의 캐릭터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괴롭힌다. 장애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4년 시청률 30%를 넘기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불새>(MBC)의 미란(정혜영)도 그랬다. 부족함 없이 자란 재벌가의 딸인 미란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장애가 온 인물로, 친했던 친구 지은(고(故) 이은주)이 과거 자신의 약혼자(세훈‧이서진)와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에 휩싸인다. 세훈이 자신과 동승한 차에서 발생한 사고로 다리를 다친 자신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미란은 그의 죄책감을 자극하며 분열적인 행동을 거듭한다.

방송 등 미디어가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을 민폐의 대상으로 규정하며 비하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당연시하거나, 신체장애가 이상 성격을 야기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는 건 적절치 않다는 걸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12년의 터울을 두고 방송된 드라마들조차 유사한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다.

▲ SBS 일일드라마 <마녀의 성> 3월 15일 방송. 희재(이해인, 사진 오른쪽)는 자신 때문에 다리를 다쳐 하반신 신경이 마비된 단별(최정원)을 조롱하며 바닥에 쏟은 음식을 핥아 먹으라고 한다. ⓒSBS 화면캡처

장애인 없는 드라마…‘장애’ 등장해도 극적 요소 위한 소재로 이용 대부분

사실 TV 드라마에서 장애(인)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논하기엔 장애(인)에 대한 얘기 자체가 부족한 현실이다.

<PD저널> 집계 결과 현재(2016년 4월 기준) 지상파 3사에서 방송하고 있는 20편의 드라마 중 이름이 있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태양의 후예>(KBS), <굿바이 미스터 블랙>‧<몬스터>(이상 MBC), <대박>‧<마녀의 성>(이상 SBS) 등 5편이다. 이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 장애인 캐릭터는 총 6인으로, 20편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 343인(홈페이지 등장인물 소개 기준) 중 1.749% 비율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표한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49만 4460명으로 전체 인구의 4.9%를 차지한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데, 정작 방송, 그것도 유료방송을 제외한 지상파 3사에서 방송하고 있는 드라마 속 장애인 캐릭터는 현실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 모연(송혜교)의 친구이자 병리과 전문의로 등장하는 표지수(현쥬니)를 제외하면, 이들 드라마 속 대부분의 장애는 극적 요소, 즉 불행을 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실례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의 차지수(임세미)의 실명은 선재(김강우)의 악행의 결과물이자 오빠인 지혁(이진욱)의 복수심을 자극하는 요소다. <몬스터>의 주인공 기탄(강지환)은 의료재단 상속자였지만 이모부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의문의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실명까지 했다. 하지만 비밀 로비스트 채령(이엘)의 도움으로 시력을 회복했다. 즉, 과거 기탄의 실명은 그가 겪은 고난을 상징하며 복수의 당위성을 더하는 장치인 셈이다. <몬스터>는 또 다른 주인공 수연(성유리)을 돈에 집착하는 캐릭터로 설명하고 있는데, 수연의 이 같은 성격은 자폐성 장애인인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억척스러워진 데서 비롯했다. 주인공의 성격을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장애가 있는 동생’이란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장애를 극적 장치의 하나로만 사용하다 보니 장애와 관련한 정보를 왜곡해 전달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마녀의 성>에서 단별은 재활 치료를 통해 금세 하반신 마비에서 회복한다. 12년 전 드라마 <불새>에서도 미란은 가벼운 전기 감전 후 감각이 되살아나 몇 차례의 수중 재활치료 끝에 두 발로 서는 데 성공하고 보행까지 가능해진다. 하지만 척추 손상에 의한 하지마비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 상 불완전 손상이면 보행을 포함한 감각과 운동기능의 회복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갑작스럽게 회복한다는 건 난센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드라마에서의 이 같은 묘사는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자칫 대중에게 장애를 질병으로 인식시켜 노력으로 완치될 수 있는 것으로, 즉 장애인을 스스로의 장애를 극기로 극복하지 못한 무능하고 게으른 존재로 인식시킬 수 있다.(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

특정 유형의 장애에 대해 ‘특별한 능력’이 존재할 거란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경우도 있다. 사극에서 시각장애인을 예언자 혹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존재로 기능시키는 건 흔한 설정이다. 현대극에선 자폐성 장애인을 기억이나 암산, 퍼즐이나 음악 등 특정 영역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서번트 신드롬 캐릭터로 묘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남자이야기>(KBS)의 경태(박기웅), <하얀거짓말>(MBC)의 형우(진태현), <찬란한 유산>(SBS)의 은우(연준석) 등이 있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장애인도 있을 수 있지만 ‘자폐=천재’ 등과 같은 특정 장애유형에 대한 도식적인 묘사는 자칫 이들에 대해 그릇된 기대를 형성하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 KBS <태양의 후예>의 지수(현쥬니, 사진 왼쪽)는 병리과 전문의로 주인공 모연(송혜교)의 조언자이자 친구로 등장한다. 휠체어를 타지만 왜 휠체어를 타는지 등의 이유를 드라마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KBS 화면캡처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다수 제작‧연출한 류미례 감독은 자폐성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말아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통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스릴러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거나 <레인맨>이나 <샤인>에서처럼 착하고 해맑은 천재로 그려지는 경향성이 있었어요. (그런데) <말아톤>은 그렇지 않았어요. 영화에서 초원(조승우)이는 맨날 <동물의 왕국>을 보잖아요. 감독이 어느 날 초원이랑 같이 TV를 보는데 초원이가 줄줄 외우는 걸 보죠. ‘세렝게티 초원에서~’ 이러면서. 순간 감독이 초원이가 천재인가 싶어 어려운 수학문제를 보여주지만 초원이는 하품을 하며 관심이 없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폐아는 천재다’라는 편견을 보여주고 그것을 또 깨주죠. 감독의 장애에 대한 고민과 감수성이 느껴졌던 영화였어요.” (2016년 2월, 한국장애인재단 ‘세상을 여는 틈’)

국가인권위는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는 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면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굿닥터>(KBS)가 반프(Banff)상과 한국PD대상 작품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며 높은 평가를 받은 배경엔 서번트 신드롬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인인 시온(주원)을 특별한 대상이 아닌 동료 의사, 환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꿈을 이루는 존재로 그려낸 노력이 있다.

장애가 아닌, 사람이 있다

소수자 인권을 말할 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주인공 모연의 친구이자 동료 의사로 등장하는 지수는 주목할 만하다. 극중에서 지수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으로 시원시원한 성격의 인물이다. 모연과의 대화 속에서 지수가 결혼을 한 사실이 드러나긴 하지만, 드라마는 지수가 왜 터프한 성격인지, 왜 휠체어를 타게 됐는지, 그녀의 연애 스토리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모든 비장애인 캐릭터의 성격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등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1969년부터 방영하고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실제의 사회를 반영하기 위한 목적의 하나로 방송 초기인 1970년부터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등을 정기적으로 출연시키고 있다. 휠체어에 탄 어린이들에게 <세서미 스트리트>에 출연한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이 특별하지도 소외되지도 않은 평범한 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함이다.(2012년 장애인 관련 방송 언어 가이드라인에 대한 토론회, 박천기 KBS PD)

▲ 미국 PBS <세서미 스트리트>의 한 장면.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휠체어를 탄 소녀(사진 가운데)가 보인다.

국가인권위도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에서 이 같이 권고했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 단독 출연보다는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나 장애가 없는 친구들을 설정해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모습을 일상의 시점에서 보일 수 있도록 연출해야 한다. 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되도록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장애인이 보다 많이 등장하도록 한다. 가게 주인이나 마켓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 속에, 혹은 건널목이나 행인 중에서도 장애인을 연출한다. 아역 중에서도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나오게 하고, 다수의 어린이들이 등장할 때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그린다.”

보이지 않으면 특별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특별한 존재에겐 평범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애가 한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특징을 가리지 않는 순간이 돼야 편안하게 때론 착하고, 때론 비겁하고, 때론 섹시한 장애인 캐릭터도 등장할 수 있다. 장애를 특별하게 인식하는 시선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일단 시선 안에 두는 게 최선이란 얘기다.

시선 안에서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영국 BBC의 경우 2005년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자체적으로 ‘장애인 평등계획’을 수립하고 장애인 전용 웹사이트(Outch!)를 개설해 장애인의 삶과 경험 등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BBC의 모든 프로그램에 자막 처리를 하는 등의 노력에 더해 연간 3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장애인 등 소수자를 방송 스태프로 채용하고 관련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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