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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없는 ‘방송작가’, 권리 찾아 ‘노조’ 하다

[노동절 기획] ‘방송작가 유니온’ 출범과 그 의미 최영주 기자l승인2016.04.28 12: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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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일 노동절이지만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는 다른 날과 같은 하루일뿐이다. 방송계에도 특수고용 노동자가 존재한다. 바로 프로그램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방송작가’다. 최근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는 방송작가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위해 나섰다. 아직 방송계는 물론 작가들 사이에서도 ‘노조’ 결성 움직임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작가들이 나선 이유는 하나다.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것이다.

▲ MBC 사측이 지난 2012년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나자 지난 2012년 7월 25일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켰다. 이에 지난 1962년 한국방송작가협회 설립 이후 방송작가들이 첫 집단행동에 나섰다. 사진은 방송 4사 구성작가협의회 소속 작가들이 지난 2012년 8월 6일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열린 ‘PD수첩 작가 해고 규탄 결의대회’에 참가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PD저널

“가장 열악한 환경의 막내작가들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그 빈자리는 비정규직이 메우게 됐다. IMF 조기 졸업이라는 신화 역시 노동자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의 출범 그리고 정책적인 지원으로 방송 다채널 다매체의 경쟁이 격화됐다. 2002년 월드컵과 한류의 시작으로 방송은 호시절을 맞았지만 한정된 시장 안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제작비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의 활용 비율은 높아갔다. 방송의 핵심 스태프 중 하나인 ‘방송작가’가 대표적인 예다.

방송작가는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특수고용직이라 구체적인 규모는 파악하기 어려운데, '방송작가의 집필환경 현황 및 해외사례'(최현주, 2014)에 따르면 전체 방송작가의 규모는 대략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상파, 종합유선, 방송채널사용사업 등을 포함한 방송사 정규직이 2만 6226명이란 점을 비춰보면 전체 방송 인력 가운데 방송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업무의 특성이나 수적으로 핵심인력인 방송작가는 노동자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작가는 현재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법적으로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으로 생활하는 개인사업자 내지는 위탁계약자로 되어 있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학습지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화물운송업자 등이 바로 특수고용직 노동자인데 작가들도 여기에 속한다. 특수고용직은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비용은 적게 들고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조 설립으로 인한 노사문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고용형태일 수 있다. 이른바 쉽게 쓰고 버리는 소비재 같은 의미다.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느끼는 바이기도 하다.

이처럼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커녕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방송작가들이 노조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들 중에서도 서브작가(코너작가)와 막내작가(보조작가), 한국방송작가협회 등 협회 소속이 아닌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있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의 모임인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노조 구성을 위해 만든 ‘방송작가 유니온’은 현재 온라인카페를 만들어 뜻을 같이 할 방송작가들을 모으고 있으며, 언론노조에서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 방송작가의 노동자성과 노조의 필요성 등을 설명하고 가입 의사를 묻고 있다. 현재 20명의 메인-서브-막내작가 등이 언론노조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향후 언론노조 산하 방송작가노조지부라 이름으로 오는 6월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 설립을 통해 방송작가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적극 여론화하고, 오는 5월 30일 제20대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법제도 개선 활동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방송작가 유니온 담당자인 언론노조 이만재 활동가는 “방송작가들의 문제는 단순히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산업 전체의 문제라는 걸 자각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미디어산업 종사자들에게 무엇이 올바른가 하는 관점에서 방송작가 노조 결성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언론노조에 가입한 경력 6년차인 한 구성작가는 “10년 전과 다르지 않은 노동환경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내가 바꾸기 위해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 생각하던 중 언론노조를 알게 됐다”며 “‘열정페이’라는 단어는 방송작가의 실상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열정페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이 누군가에 의해 개선이 되면서 부당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개선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언론노조가 지난 2015년 11월 11일부터 22일까지 방송작가(응답자 647명)를 대상으로 조사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언론노조

노동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작가 노동실태

그러나 사회 전반의 인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방송계, 심지어 방송작가들조차 자신의 노동자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언론노조가 지난해 11월 11일부터 22일까지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막내부터 메인까지 방송작가들은 고용실태에서부터 ‘노동자’로서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노동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설문조사에는 종합구성・교양(41.1%), 예능(31.7%), 시사・보도(12.7%), 다큐멘터리(11.3%) 등 각 장르의 647명의 방송작가들이 응답했다. 직급별로는 메인작가 6.6%, 서브작가 46.6%, 막내작가 46.8%가 설문에 참여했으며, 경력별로는 5년 미만 작가가 65%로 가장 많이 참여했으며 5년 이상~10년 미만(27.7%), 10년 이상(7.3%) 작가가 그 뒤를 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작가들 중 68.8%가 노동조건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만 들은 채 ‘구두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방송작가를 시작한 사람도 24.6%에 달한다. 서면계약을 맺은 작가는 응답자의 6.6%에 불과했다. 가장 기본인 근로계약 체결도 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적용받아야 하는 사회보험제도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직인 방송작가는 제외된다. 647명의 응답자 중 국민연금에 가입한 작가는 16.5%(직장가입 2.5%, 지역가입 14%)에 불과했으며, 직장가입자는 1.4%에 그쳤다. 산재보험 가입자의 경우 647명 중 약 10명인 1.5%(직장가입 1.3%, 예술인복지법 통한 가입 0.2%)에 불과했다.

지난 2011년 발표된 <방송작가 고용 안정화를 위한 정책 방안에 대한 연구>(총 494명 응답, 서울 및 지역 지상파 소속 작가는 378명, 작가협회 소속 작가는 307명)에서도 작품을 제작하는 도중에 방송사나 프로덕션 담당에 의해 고용이 해지된 경우도 53%에 달했으며, 7회 이상이라는 응답자도 10명(2%)으로 조사됐다. 고용해지 사유는 프로그램 개편이나 제작 중단, 방송 불방으로 인한 경우(41.3%)가 대부분이었으며, PD와의 관계에 의한 고용해지(PD와의 불화・담당PD 교체・PD가 작가 교체)도 32.1%에 달했다.

▲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지난 3월 16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1월 11일부터 22일까지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이 전통적인 방송작가의 지위와 정체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노조

‘관행’이란 이름으로 굳어진 부당함, 가장 밑바닥부터 깨고 나와야

법적 테두리에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결국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고용이 이뤄지며, ‘열정 페이’라는 이름 아래 ‘방송작가’라는 노동이 손쉽게 사용되고 손쉽게 버려지는 관행을 낳고 있다.

이렇다 보니 노조 가입을 문의하는 방송작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신상노출’이다. 대부분 어린 연차의 작가들이 이 같은 걱정을 하는데, ‘인맥’을 통해 일을 얻는 방송작가 세계에서 노조에 가입했다는 소문이 날 경우 작가로서 일을 하지 못할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고용불안, 그리고 이 같은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게 방송작가 유니온의 목표이기도 하다.

현재 방송작가 유니온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방송작가군이 서브작가와 막내 작가라는 점은 그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작가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방송작가협회와 지상파 4사 구성작가협의회 등이 막내작가 급여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제도 변화를 이끄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 입회규정을 살펴보면 구성・다큐 부문은 해당 분야에서 메인작가 1년을 포함한 4년 이상, 예능은 5년 이상, 라디오는 4년 6개월 이상의 집필활동을 자격기준으로 두고 있다. 자격기준을 갖췄다 해도 정회원 3인의 추천을 받되, 그 중 반드시 입회하고자 하는 분야 현직 이사 1인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막내작가와 서브작가는 자격요건 상 협회원이 될 수 없다.

또 직능단체는 노조처럼 단체교섭권을 갖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방송작가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거대 방송사에 맞서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조 결성은 필요한 작업이다.

이만재 언론노조 활동가는 “작가협회나 아카데미에서 방송작가 교육을 하지만 방송작가의 노동관계가 어떻게 되고, 노동법을 적용받는지 여부를 설명하지 않는다”며 “이렇다 보니 방송계 비정규직은 꾸준히 늘고 있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은 영화 및 방송작가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인 전미작가협회(WGA)가 있다. 여기에는 무직인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전미작가협회는 고료 협상을 포함한 작가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걸쳐서는 저작권료 인상을 위해 대대적인 파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 지상파 방송사 교양 프로그램 제작부서 A팀의 노동력 구성. ⓒ<노동과정과 노동조건을 통해 본 방송 작가의 노동자성>(김순영, 2007)

노조 결성 이후에도 첩첩산중

이처럼 조직적으로, 그리고 노조법상 명시된 단체교섭권을 통해 합법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적폐를 해소하고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난 1999년 마산MBC에서 일하는 구성작가, 리포터 등이 전국여성노동조합 마산창원지부에 가입해 마산MBC 분회로 활동하면서 지난 2001년 마산MBC에 고료인상과 고용계약서 작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섭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은 인정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특수고용노동자인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해 노동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왔는가 하면, 서울고등법원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도 노조법상 인정되는 노동조합으로 봐야 하며 독자적인 단체교섭을 할 자격도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연기자를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방송작가노조를 결성한다고 해도 당장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자 형태인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사태는 지난해까지 2822일간 이어졌다. 그러나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실태를 세간에 알리고 긴 투쟁 끝에 해고자들은 복직했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환경이 7년 7개월만의 바뀐 것이다.

방송작가도 마찬가지다. 이만재 활동가는 “노조가 눈에 보이는 것, 당장의 이익만 가지고 움직이는 조직은 아니다. 더디더라도 방송작가 스스로가 제대로 알고 주체적으로 모여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방송작가 고용해지 사유. ⓒ<방송작가 고용 안정화를 위한 정책 방안에 대한 연구>(최현주·이강형, 2011)

안팎의 인식 변화 속 조직화 통해 ‘시스템’ 개선해야

마지막으로 법제도적인 변화만큼 주요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이 방송작가에 대한 내・외부의 인식이다. 사용자 입장에 있는 방송사 관계자나 PD들은 방송작가를 여전히 ‘프리랜서’로만 인식하고 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안주식 한국PD연합회장은 “작가라는 직종 자체가 프리랜서라 노조 결성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그건 잘못된 편견으로 내・외부에서 깨나가야 한다”며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방송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고, 이에 대해 PD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사실 PD연합회 같은 조직에서 앞장서서 같이 해야 할 부분인데 지금까지 다루지 못했다”며 “방송사 수익구조가 10년 동안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방송사는 정책적으로 방송작가의 기본고료를, 그것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책정한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인데, 방송작가들이 처한 상황에 비춰볼 때 노조를 조직해 협상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변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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