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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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기자수첩] 변화의 순간을 기다리면 공정 언론의 봄은 올까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6.04.29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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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 운동이 시작된 이후 1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렇게나 많은 여성(소수자)들이 혐오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 또 맞서고 있구나, 새삼 깨닫고 있다. 일의 특성상 특히 관심 있게 보는 건 언론(방송)의 혐오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들인데, 거의 매일 트위터에선 사안을 가리지 않고 ‘○○녀’ 제목으로 기사를 팔아대거나 여성을 성욕 해소나 인구 증식의 수단으로 대상화하는 등의 기사를 써대는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직접 항의의 액션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문제제기와 항의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활동을 하는 여성단체 등에 대한 후원에도 적극 나선다.

개개인의 이런 활동은 당장의 어떤 가시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시작된 게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에 가담한 ‘김군’, 그를 보며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칼럼을 쓴 팝 칼럼리스트 김태훈, <마녀사냥>(JTBC)에 출연해 모델 한혜진에게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남자가 싫어할) 모든 걸 갖췄다”고 말한 장동민, 그리고 장동민이 속한 개그 트리오 ‘옹달샘’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마구잡이로 쏟아낸 여성 혐오 발언들에 대한 분노가 시작이었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들한테 머리로 안 돼”,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개X년” 등의 말들을 낄낄대며 하는 이들 앞에 오랜 시간 동안 차별과 폭력, 즉 혐오를 견디고 있던 여성들(과 소수자, 그리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일어섰다. 참고, 견디고, 인내한다고 혐오는 사라지지 않으니 앞으로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겠다(Go Wild, Speak Loud, Think Hard)”고 선언하며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행동들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편함을 느낀 이들에게 공격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혐오를 반대하기 위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여성에 대한 범죄를 놀이라고 주장하는 음란(범죄) 사이트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며 여론을 만들고 서버 폐쇄를 실현하는 등 성과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공기(公器)를 자처하는 언론이 문장과 단어 사이 알게 모르게 담아둔 혐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저마다, 때때로 연대하며 멈추지 않고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순간 또 다른 현실을 떠올리곤 한다. 이렇게 떠올리는 현실 중엔 ‘공정’과 ‘독립’이라는 단어를 혐오하는 듯 보이게 된 언론(방송) 현실도 있다. ‘공정’과 ‘독립’을 혐오하는 언론 현실이 어디에 있냐고 누군가는 따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법에서조차 언급하고 있는 당위의 가치인 ‘공정’과 ‘독립’을 주장했다고 수많은 언론인들이 징계를 받고, 누군가는 해고당한 현실이 있다. 그런 현실을 목도했음에도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조용히, 가만히, 눈에 띄지 않고, ‘공정’과 ‘독립’이란 말로 공격당했다고 느낄 그분들을 거스르지 말고 살라고 강요하는 현실은, 지금도 있다.

오랫동안 이런 현실의 시간을 살아낸다는 게 무서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런 현실의 시간을 그냥 살아내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때다. 당위의 말들을 불편해하는 그분들과 결코 함께 하진 않는다. 지금의 현실에 분노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목소리들에 때때로 연대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은, 변화를 위해 움직일 때가 아니라고, 지금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결과일 테니 일단은 조용히, 분노하지만 그래도 조용히,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순간에 놓여있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는 때가 있다.

불쑥 올라온 이 생각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또 잠재워야 할까. 하지만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겠다며 행동하기 시작한 트위터 속 사람들의 모습은 말한다. 견디기에 최선인 시간은 없다고, 지금, 당장, 차별과 혐오에 맞서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차별과 혐오에 맞을 뿐이라고 말이다. 무모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안에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를 잠재우고 견디면 무엇이 변할까. 설사 외부의 흐름 속에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변화는 지속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차치하더라도, 사회의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의 기능이 내 안의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와 함께 잠재워진 시간 동안 묻히고 왜곡될 약자의, 소수의 목소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2년이 지나도록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지도, 책임을 묻지도 못했지만 대통령이 앞장서 재정과 인건비, 세금만을 말하는 현실을 지금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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