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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다시 2008년 쇠고기 촛불을 말하는 이유

참여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정권의 전방위적 여론 탄압 본격화…2008년 촛불에 대한 진지한 재성찰 필요 최영주 기자l승인2016.05.02 23: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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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운동은 물론 언론에도 커다란 전환점이 된, 2008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켠 ‘촛불’.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거리에서 실현된 그날 이후 국민들은 정부의 실정에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심이 밝힌 촛불의 힘을 경험한 정부는 이후 정부 정책에 반하는 목소리를 법과 공권력을 동원해 입막음하기 시작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촛불의 힘은 국민들을 위축하는 계기이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시작이 됐다. 8년이 흐른 지금, ‘참여’와 ‘위축’을 모두 가져온 ‘촛불’, 이를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2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서울변호사회 조영래홀에서 ‘2008년 쇠고기 촛불 백서 발간 보고대회’를 열고 2008년 촛불집회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8년이 흐른 2016년 현재는 2008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서울변호사회 조영래홀에서 ‘2008년 쇠고기 촛불 백서 발간 보고대회’를 연 가운데 ‘대한민국효녀연합’으로도 잘 알려진 홍승희씨가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경험과 함께 당시 촛불집회가 한국사회의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D저널

MB정부 광우병 협상으로 시작해 <PD수첩>이 촉발한 2008년 촛불집회

지난 2008년 4월 11일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개시를 발표, 일주일만인 4월 18일 사실상 ‘전면 개방’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직후 수입과 중단을 반복하다 2007년 10월 이후 검역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버린 정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협상 타결 이후 10일 이후인 지난 2008년 4월 29일, 미국의 불완전한 광우병 통제 시스템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 타결의 문제점을 짚은 MBC <PD수첩>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한가’ 편(이하 ‘광우병’ 편)이 방송되며 민심도, 언론도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PD수첩>은 촉매제가 되어 향후 2개월여 간 계속된 ‘촛불집회’(5월 2일 첫 집회)가 시작됐다. 언론에서도 연일 광우병의 위험을 지적하고 정부의 협상을 비판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학생, 주부, 직장인 등 그간 집회나 참여에 있어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이 자진해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타결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촛불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MB(이명박) 정권 퇴진 등 사회・정치 문제로 확산됐다. 헌법 제21조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권리를,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적극 실현하겠다고 나선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2008년 촛불집회는 ‘참여 민주주의’ 및 ‘국민 주권의식’을 새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이후 촛불집회는 민심의 자연스런 표출, 그러니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계기가 됐다.

‘촛불 백서 발간 보고대회’에 참석한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2008년 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사회 변동이나 사회운동이 있을 때 조직된 노동단체가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형태였다면 2008년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가장 정점에 달한 게 가장 큰 특징”이라며 “수백만 명이 참여해서 된 게 뭐 있냐는 식의 일정한 문제제기나 냉소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 정부는 100만 촛불대행진에 앞서 청와대로 진입하는 시민들을 막기 위해 지난 2008년 6월 1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일대에 대형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한 가운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불리는 정부가 쌓아 놓은 컨테이너 벽면을 화려한 스티커와 낙서로 장식해 놓고 있다. ⓒPD저널

촛불 민심에 놀란 정부, 촛불 참가자 연행하고 재판에 회부

그러나 촛불의 힘을 체감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시작했다. 여론, 다시 말해 ‘민심’과 ‘언론’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고 장악하는데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경찰력을 동원해 대거 연행했다. 집시법, 일반교통방해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재판에 회부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반교통방해죄’ 혐의다.

촛불사건 변호인 중 한 명인 서선영 민변 변호사는 지난 8년 동안 한 촛불재판 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일반교통방해죄’를 꼽았다. 서 변호사는 “일반교통방해는 야간주거침입절도, 존속살해, 영아살해랑 법정형이 같은 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한다”며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 2008년 6월 10일 이른바 ‘명박산성’(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난입과 전경과의 충돌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 바리케이드를 뜻하는 말. 이명박 대통령과 산성을 본따 만든 합성어)이라고 하는 촛불집회인데, 우리 측 추산 서울시민 10%가 나왔는데, 이들이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 걸 판사나 검사가 한번쯤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형법 제185조(일반교통방해)는 ‘육로, 수로 또는 교량을 손괴 또는 불통하게 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동등한 법정형을 갖는 죄가 동법 제103조(전시군수계약불이행), 제115조(소요), 제121조(전시폭발물제조등), 제198조(아편등의 제조등), 제207조(통화의 위조등), 제251조(영아살해), 제330조(야간주거침입절도) 등이 있다. 이 같은 중범죄자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국민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바라봤다는 뜻이다.

수사당국은 2008년 촛불집회에서 1000여명이 넘는 시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집시법만으로는 현행범 체포가 어려워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했다. 검찰이 발간한 수사백서에 따르면 2008년 5월 2일부터 8월 15일까지 촛불집회・시위 건으로 1476명이 입건되고, 이 중 1050명을 약식기소하고 16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민변에 정식재판 사건의 변호를 의뢰한 사람은 858명에 이른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집회・시위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며 이후 집회・시위에 2008년 같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 지난 2009년 3월 25일 밤 이춘근 PD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시사교양국 PD들이 MBC에 모여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 ⓒPD저널

촛불 이후 언론 탄압 및 공영방송 장악 시작한 정부

이같이 ‘촛불민심=중범죄자’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정부는 민심을 탄압했고, 이와 함께 정부는 언론에 대한 탄압과 장악을 동시에 진행했다. 현재 언론이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언론인이 자기 검열에 나서게 된 것도 2008년을 기점으로 해서다.

정부의 <PD수첩> ‘광우병’ 편에 대한 정정보도를 시작으로 청와대는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PD수첩> 제작진을 고소했으며(2008년 5월 9일), 이후 2008년 5월 13일 ‘광우병’ 편 2부가 방송되자 검찰을 동원해 <PD수첩> 제작진을 압박했다.

<PD수첩>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공영방송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고 정연주 당시 KBS 사장 해임으로까지 번졌다. 이후 공영방송 KBS와 MBC는 물론이고 YTN 등 언론사에 ‘낙하산 사장’이 내려왔다. 정부를 비판한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이 잦아졌고, 이렇게 시작된 언론탄압은 YTN, MBC 등의 기자와 PD에 대한 해고 사태로 이어졌다. 해고되지 않은 언론인은 부당전보를 당하기도 했다. 사회고발성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현재 공영방송사에서는 ‘세월호’, ‘위안부’ 등의 아이템을 다루는 게 금기시되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 지난 2008년 8월 8일 KBS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들이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의결하기로 한 가운데, 100여명의 청원경찰들이 이사회장 문을 지키고 있고 이사회를 저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모인 KBS 직능단체협회장들을 비롯한 KBS노조 지역지부장 등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PD저널

언론의 공영방송 장악 및 탄압과 함께 지난 2011년 12월 정부여당의 비호 속에 탄생한 TV조선, 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은 노골적인 정부여당 편향 방송을 통해 표현의 자유 탄압에 함께 했다. 집회・시위 참가자들에게 ‘종북’, ‘빨갱이’, ‘불법’, ‘폭력’의 딱지를 붙였다. 이 역시 2008년 촛불집회로 나타난 그림자 중 하나다.

정은주 <한겨레21> 기자는 “지난해 민주언론상 시상식에 간 적이 있는데, 조능희 MBC PD(‘광우병’ 편 제작진 중 한 명)가 민주언론상을 줄 언론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만큼 언론보도가, 독립적이고 권력을 견제하는 보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들었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2008년 촛불 사건이 발발하는데 큰 영향을 줬던 <PD수첩>이 어떻게 당하는지 보여줬고, 각 언론사의 파업은 아픈 경험으로 끝났다. 그 안에 들어갔던 기자들이 결국 다른 곳에 발령이 나고 해고 되고, 끊임없이 탄압을 받고 있다. 이런 악순환이 쌓이면서 언론도, 기자들도 기사 쓰는데 약해졌다. 지난 8년간, 언론이 가장 큰 영향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 2016 세계 언론자유지수.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180개국 중 70위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국경없는기자회

8년이 흐른 지금 언론자유지수 사상 최악…표현의 자유는 ‘불법’으로 프레임

그렇다면 8년이 흐른 2016년 지금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한 발짝 나아갔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언론자유지수’를 통해 살펴보면 ‘악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 4월 20일 발표한 ‘2016 세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국인 180개 국가 중 70위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가 시작된 2002년 이래 가장 낮은 순위로,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 69위보다 한 단계 아래다.

집회・시위의 자유 역시 여전히 차벽에 가로막혀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침몰 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농민 백남기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얼굴과 상반신을 직격으로 맞아 쓰러진 후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다. 당시 취재하던 기자들도 물대포로 공격을 당했다. 언론도 표현의 자유를 두고 ‘불법폭력시위’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며 ‘공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정은주 기자는 “일부 언론 보도에서 집회는 불법이라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쓰니까 ‘집회=불법’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시민 강연희씨는 “가장 힘들게 살고 있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언론을 못 봤다”며 “지금 시점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해야 사회가 좀 더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오마이TV>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아직까지 의식 불명 상태인 농민 백남기(69)씨의 모습이 담긴 단독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전후 상황이 담겨 있다. 사진은 쓰러진 백씨의 모습. ⓒ화면캡처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성찰 필요한 시기

그러나 2008년이 ‘실패’의 기억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자’가 되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2008년 촛불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재판에 회부된 이들의 공판은 진행 중이고, 표현의 자유는 후퇴했다. 2008년 촛불에 대한 재성찰을 바탕으로 2016년 촛불을 생각해야 할 때다.

정은주 기자는 “왜 우리는 ‘촛불’을 실패의 기록으로 알고 있느냐, 분명 성공했고 50만, 100만명이 나와서 이루었다. 애초 5월 2일 나온 소녀들이 원했던 건 이뤘는데, (실패라고 인식된 데에) 주체 중 하나는 언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하게 2014년 7월 국회에서 세월호 국정조사를 굉장히 잘 했고 많은 사실이 발견됐다. 문제는 국회 세월호 국정감사 보고서가 안 나왔고, 기록이 없다보니 국정조사에서 많은 것을 발굴했음에도 아무 것도 발굴 안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2008년 촛불도 성공한 게 있는데, 무엇을 이뤘는지 명확하게 분석하지 못해 막연한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문화학자인 엄기호 박사는 “근대국가라면 사회를 활성화해서 통치해야 하는데, 한국은 사회를 억압해서 통치하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 언론・집회・시위의 자유를 통해 사회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세월호 때 수백만 명이 (집회에)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왜 안 나오는가가 너무 궁금해서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촛불시위 트라우마’가 있다. 촛불이 좋은 영향도 많이 미쳤지만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게 너무 열심인데 얻는 게 없었다는 식으로 촛불이 되었다. 촛불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제대로 반성하고 통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분기점으로 촛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엄 박사는 “‘팩트’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게 2008년 촛불이다. 광우병 사태 때도 정확한 사실을 통해 정부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데 음모론부터 시작해서 거기에 편승해서 가려는 게 있었다. 일이 잘못됐을 때, 종편 등에서 ‘팩트’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음모론(을 펼치며), (사람들이) 음모론만 믿게 되는, 다른 말로 말하면 신뢰가 붕괴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2008년 촛불 이후 집회・결사에 대해 사회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누구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언론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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