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 파문’과 보수·진보 언론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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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어버이연합’을 비판하기 전에 갖춰야 할 조건

“어버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며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이긴 하나, 2006년 설립 초기에는 무시해도 될만한 존재였다. 비합리적이고 과격한 구호를 외쳐대는 어버이연합의 투박함은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부터 슬그머니 힘을 얻어갔다. 조금만 바른 소리를 해도 빨갱이 종북으로 몰고 가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종편은 이들의 목소리를 키웠고 어버이연합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사복 입은 경찰서장을 때리고 막무가내로 서울시의회 방청석에 난입하더니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투쟁을 모욕했다.”

<한국일보> 정상원 사회부 차장이 4월30일자에 쓴 칼럼 ‘누가 어버이를 괴물로 만들었나’ 가운데 일부다. 일부 방송사를 제외하고 현재 대다수 언론이 어버이연합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상원 기자는 지금의 어버이연합을 ‘이렇게’ 만든 책임에서 언론 역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도 넘은 행위는 침묵 … ‘보수의 목소리’로 키운 보수언론들

▲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4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앞에서 시사저널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어버이연합은 '청와대가 보수집회를 지시했다'고 시사저널이 보도한 내용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명백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뉴스1

그동안 어버이연합이 과격한 집회 등으로 적지 않게 논란을 빚었지만 언론의 비판 강도는 약했다. 특히 조중동과 종편은 비판보다는 이들을 ‘보수의 목소리’로 등장시켰다. 지난달 27일 발행된 <미디어오늘>은 “(어버이연합이)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등 극우적 성격을 띄었지만 언론이 이들을 보수단체로 포장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영향력이 커졌고 정치·자본 권력과 결탁해 여론을 왜곡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어버이연합 회원이 혜화경찰서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역사교과서 태스크포스(TF)를 두고 야당 국회의원들과 경찰의 대치가 진행된 가운데 해당 집회를 열던 어버이연합 회원이 혜화경찰서장을 폭행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지만 일부 언론만이 이를 비판했다.

만약 민주노총이나 진보적인 시민단체에서 경찰서장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조중동과 종편 등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이들 단체들을 향해 융단폭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현재의 ‘어버이연합 파문’에는 언론의 책임이 있다. 아니 상당히 크다. 어버이연합의 과도한 폭력성을 비롯해 여러 의혹이 제기됐을 때 언론이 이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현재와 같은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버이연합 뒤에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들을 활용하려한 ‘세력들’이 가장 큰 문제지만, 언론이 제때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면 ‘보수단체’와 ‘정치·자본권력’이 결탁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조중동을 비롯해 종편의 ‘침묵과 외면’이 현재의 어버이연합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어버이연합 파문’과 관련해 ‘진보언론’의 책임은 없는 걸까

▲ 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뉴스1

보수언론에 비해 나름 ‘진보언론’은 어버이연합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지만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진보 언론’은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경험(언론경력)을 바탕으로 반성 차원에서 평가를 해본다면, ‘진보언론’에게 어버이연합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는 ‘무시하고픈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원 <한국일보> 기자가 지적했듯이 어버이연합은 “사복 입은 경찰서장을 때리고 막무가내로 서울시의회 방청석에 난입”했다. 거기에다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투쟁을 모욕”하는데 앞장서 왔다. ‘모든 진보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어버이연합의 ‘이런 몰상식한 행동’을 기사를 통해 비판했을 경우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나치다고 생각되면 기사를 통해 비판도 했지만 ‘단발성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어른신들’이 왜 그런 집회에 나서게 됐는지,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주장은 무엇언지, 왜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래 그런 분들’이라는 ‘상식의 편견’에 묻어가려고 했던 건 아닐까 – 반성해 본다.

이른바 ‘어버이연합과 전경련·청와대 의혹’이 불거진 뒤 많은 언론이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어버이연합이 보여준 그동안의 ‘불미스런 행태’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고, 파헤쳐야 할 의혹 역시 많다. 하지만 그동안 어버이연합에 대해 사실상 침묵·방관 모드로 일관한 많은 언론이 태도를 돌변해 ‘비판 모드’로 나서는 데에는 통쾌함보다는 불편함이 앞선다.

지난 주 어버이연합을 취재한 <국민 TV> 취재진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데, 어버이연합 집회에 오는 어른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냥 이웃이나 노인정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른들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이 그동안 이분들을 외면하고 방치해 온 것도 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어른신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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