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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프로그램, ‘아직은’ 절반의 다문화

[위클리포커스] 늘어나는 다문화 아동 출연…백인 중심 캐스팅 탈피 ‘숙제’ 김세옥 기자l승인2016.05.03 21: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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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다문화 인구 통계에 따르면 현재(2014년 기준) 전체 출생에서 다문화 출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4.9%다. 100명의 아이가 태어날 때 5명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얘기다. 국토연구원은 ‘그랜드비전 2050 연구보고서’에서 2050년이면 전체 인구의 10%, 즉 10명 중 1명은 다문화 인구일 거라고 예측했다. 다문화 가정을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닌, 말 그대로 다양한 가정의 형태임을 보편의 인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에 접어든 상황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어린이 교육 목적의 프로그램에선 최근 몇 년 사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주요 출연자로 발탁하며 다문화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인종차별철폐조약에 관한 보고서(2007년)에서 “한국이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건 서로 다른 민족‧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다민족 성격을 인정하라고 권고했던 때와 비교할 때 현실은 조금씩 진보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문화’의 의미를 온전히 실현하고 있다고 하기엔 하얀 피부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중심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 EBS <딩동댕 유치원>의 진행을 맡았던 링컨 ⓒEBS 화면캡처

공영방송 어린이 프로그램, 다문화 어린이 발탁 노력 ‘의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로버트 할리(미국), 이다도시(프랑스), 이참(독일) 등 한국인과 결혼한 귀화 한국인들이 드라마와 예능 등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KBS <미녀들의 수다>)과 외국인 엄마 또는 아빠를 두고 있는 아이들이 드라마와 예능, 심지어 영화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 아동으로 <스타골든벨>(KBS, 2009년)의 ‘정답소녀’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김수정은 영화 <챔프>(2011년)에서 주인공인 차태현의 딸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드라마와 예능에서 활동 중이다. 또 링컨, 가브리엘, 크리스티나, 알레이나 등도 <리얼키즈스토리 레인보우>(tvN, 2011년)에서 이름을 알린 후 현재 아역 스타로서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공영방송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주요 출연자로 등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KBS의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인 <TV유치원>은 지난해 7월 개편에서 네 명의 어린이 출연자 중 두 명(올리비아, 칼라)을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캐스팅했다. EBS의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인 <딩동댕 유치원>도 지난해 4월 개편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 링컨을 진행자로 참여시켰고, 지난 4월 개편을 통해 일라이다(동동)을 새로운 진행자로 발탁했다.

EBS의 또 다른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봉구야 말해줘> 시즌1에선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 나영이가 출연했으며, 지난 3월 시작한 시즌2에서도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 민준이가 출연 중이다. 또한 EBS의 어린이 영어교육 프로그램인 <미션 잉글리시>에도 다문화 가정 아동인 대니얼이 출연하고 있다.

<봉구야 말해줘> 시즌2를 연출 중인 고현미 PD는 “시즌1부터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인공을 맡기고 있다”며 “자연스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드러내고, 그 아이들이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알게 되는 다른 문화와 가치 등을 접하게 함으로써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즌1에선 나영이가 엄마의 고향인 브라질에 방문해 새로운 문화와 자연 등을 수용하는 모습 등을 방송했다.

고현미 PD는 “(이른바 주류 문화권이라는) 영미권을 배제하고 다른 다양한 문화권의 출연자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시즌2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릭터 구축 단계에 있지만, 앞으로 민준이가 러시아인인 엄마,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한국에선 여전히 낯선 측면이 있는) 엄마의 나라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 KBS 에 출연한 칼라 ⓒKBS 화면캡처

여전히 하얀 피부 다문화 아이들이 다수…현실적 한계도 존재

이미 10년 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단일민족 국가 이미지 극복을 권고했을 만큼 한국 사회도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를 시작한지 오래지만, 공영방송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주요하게 캐스팅하기까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린이 교육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고 주역으로서 방송을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출연자를 찾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TV유치원>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주요 캐릭터로 처음 캐스팅하는 데 역할을 했던 김범수 KBS PD는 “연출 입장에선 어쨌든 주인공으로서 방송을 책임 있게 이끌어갈 수 있는 아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세대인 만큼, 시청자인 어린이들이 어떤 편견도 없이 다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공영방송 PD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해 노력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로 성인 외국인이 출연하는 기존의 방송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사실 공영방송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주요 출연자 대부분은 하얀 피부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TV유치원>에 출연한 검은 피부의 다문화 가정 아이인 칼라가 특히 눈에 띄었던 이유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과 드라마 등에서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출연이 드물지 않지만, 일본으로 귀화한 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일본인 모델 야노시호의 딸 사랑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하얀 피부의 아이들이다.

4살 아이를 둔 이상옥씨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선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 그 중에서도 백인에 대한 긍정의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라며 “아직 어떤 편견도 없는 아이들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종을 자연스레 수용할 수 있는 계기로 방송이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옥씨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아이들이 TV에 출연할 경우, 자녀와 함께 방송을 시청하는 부모들 역시 TV 속 아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자연스럽게 편견을 허물 수도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제작진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고 토로한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한 PD는 “중국‧동남아 계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은 만큼 (캐스팅을) 당연히 고려하고 있고, 제작진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피부색이나 부모의 출신국가가 아닌 아이의 끼와 매력”이라면서도 “코시안 아이 등은 거주 지역이나 부모가 아이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등에서 물리적 제약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 PD도 “오디션을 통해 출연자를 선정하지만 에이전시를 통해 지원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압도적으로 백인(혼혈) 아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시안 다문화 아동의 경우 화면상 한국인 부모를 둔 아동과 구분되기 어려운 점도 고민이다. 김범수 PD는 “(<TV유치원> 개편 당시) 칼라뿐 아니라 동남아 출신 부모의 아이 중에도 출연자를 고르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움을 전한 뒤 “앞으로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들이 (방송 전반에서)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 BBC 유아전문채널 CBeebies ‘Charlie and Lola’ ⓒCBeebies

BBC, 제작가이드라인에서 어린이 프로그램 출연자 소수 인종 비율 등 규정  

다문화의 구현을 제작진 개인의 고민과 노력으로만 남겨둬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작진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사회의 인식과 시청률에서 자유롭지 않은 방송제작 환경 등 개인의 의지만으론 뛰어넘긴 어려운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진 KBS PD는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에 기고한 논문에서 자신의 경험과 동료 제작진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미디어 생산자인 방송 제작진들 역시 인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프레이밍(Framing)된 미디어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시청률 무한경쟁의 제작 환경 속 성공의 선례들(백인 출연자 아이템의 높은 시청률 경험)을 답습하는 경향 속, 유색인종을 긍정적으로 재현하고 이들을 주류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시도는 일련의 방송 산업 매커니즘 앞에서 흔들리기 쉽다고 꼬집었다.(나는 왜 백인 출연자를 선택하는가?: 어느 TV 제작진의 자기민속지학적 연구(2015.9))

다문화를 섬세하게 구현하기 위한 제작진 개인의 고민과 노력을 알게 모르게 흔들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적으로,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꼽히는 영국의 BBC 또한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BBC는 제도를 보완했다. 제작가이드라인을 다듬어 3인 이상의 어린이가 출연할 경우 반드시 소수인종의 어린이를 포함하도록 하고 남녀 성비도 동등하게 맞추도록 했다. 또한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에 대해서도 인종 비율을 맞추도록 했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1969년부터 방영하고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흑백 갈등이 극심했던 시기 백인과 흑인 캐릭터를 함께 등장시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 히스패닉,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를 늘려갔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제작자인 조앤 간츠 쿠니(Joan ganz cooney)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세서미 스트리트>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한국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들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며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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