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1.19 월 12:32

범죄피의자 얼굴 공개, 언론의 원칙은 무엇인가

경찰 안산 토막살인 피의자 신상 공개, 언론 ‘너도나도’ 보도…“범죄의 본질을 따질 수 있어야 해” 최영주 기자l승인2016.05.10 09:46:1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옆집 총각 같은데…악마였다’(5월 9일 <조선일보>), ‘안산토막사건 조○○ 얼굴 공개 멀쩡해서 소름’(5월 8일 <국민일보>), ‘“멀쩡해서 더 충격”…얼굴 드러난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범’(5월 7일 <연합뉴스>), ‘네티즌들 “정말 멀쩡(?)한 얼굴이네…그래서 더 충격”’(5월 9일 <헤럴드경제>). ‘토막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피의자 조모씨(30)에 대해 경찰이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후 나온 기사의 제목이다.

신상공개 결정과 보도 이후 국민은 물론 언론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신상공개 이후 벌어진 2차 피해와 각종 논란으로 인해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그렇다면 경찰의 공개 결정에 따라 조씨의 신상을 공개한 언론은 어떨까. 반복되는 강력범 신상공개 논란을 두고 또다시 언론의 원칙과 역할을 묻는 원론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조씨가 10일 현장검증을 위해 살해 및 시신훼손 장소인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원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경찰,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 이후 대다수 언론도 그대로 보도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지난 5일 살인사건 피의자 조모씨를 긴급 체포한 후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하고,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조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따른 것으로, 경찰은 조씨의 범행 수법이 잔인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공개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결정 이후 해당 정보를 국민들이 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언론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조씨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진을 비롯한 얼굴 사진을 보도했다. 조씨의 사건이 알려진 이후 얼마나 잔인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등을 보도하던 언론은 신상공개 이후에는 조씨의 얼굴과 과거 행적, 네티즌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멀쩡’하고 ‘평범’한 조씨의 얼굴 생김새를 제목으로 하는 보도도 제법 나왔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조씨의 신상정보를 바탕으로 인터넷과 SNS 등에 이번 사건과는 무관한 조씨의 과거 행적이 낱낱이 퍼져나갔다. 더불어 조씨의 가족과 옛 여자친구 등에 대한 정보도 함께 알려졌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비난성 댓글 등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2차 피해’다.

2차 피해 속출에 경찰, 뒤늦게 수습 나서

이처럼 2차 피해가 확산되자 경찰은 지난 9일 조씨의 가족이나 지인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거나 모욕적인 글을 인터넷 등에 게시할 경우 명예훼손과 모욕죄 혐의를 적용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차 피해와 함께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아직 (피의자) 얼굴 공개와 관련한 사례가 많이 쌓여있지 않기 때문에 혼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흉악·강력범죄 신상 공개의 범위와 방법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근거는 지난 2010년 4월부터 시행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었다. 문제는 특례법에서 말하는 요건들이 과잉금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2012년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학생 성폭행 사건, 2015년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 역시 흉악범죄지만 신상은 공개되지 않은 것처럼 신상공개 여부는 수사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질 뿐이다.

또 신상공개는 헌법상에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조씨는 아직 피고인도 아니고 피의자 신분이다. 그것도 이미 긴급 체포된 피의자였다.

▲ 지난 5월 7일 경찰이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한 후 관련 보도를 방송한 MBC <뉴스데스크>(화면 위)와 SBS <8뉴스>. ⓒ화면캡처

경찰 보도 받아쓴 언론은 책임 없나

결국 이번 신상공개 이후 경찰의 후속조치는 이번 신상공개가 성급했음을, 그리고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경찰의 신상공개에 따라 피의자인 조씨의 얼굴 등을 보도한 언론에는 책임이 없을까.

홍보가 목적이든 예방이 목적이든 흉악범이라 해도 법에 따라, 법에 규정된 형벌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의 의미다. 언론의 섣부른 신상공개가 논란이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자칫 ‘여론재판’을 통한 사회적 처벌을 받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의 본질적 문제와 예방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대중의 관심을 돌릴 수도 있다. 이번 경우처럼 잔혹한 살해방법과 반대되는 평범한 외모의 범죄자라는, 자극적이고 대중의 호기심을 건드는 언론 소재로 전락할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떤 기준에서 조씨의 얼굴을 공개했을까. 조씨의 얼굴을 공개한 한 언론사의 기자는 조씨의 얼굴 공개와 관련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 경찰에서 공개하기로 한 거니까,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 역시 “경찰이 다 공개한 거니까 공개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의 기자는 “기준과 원칙이 있다고 해도 과연…”이라며 말을 흐렸다.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사실 이게(강력범죄 보도) 사안마다 춤을 추는 경향이 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고 사안마다 어떻게 접근할지 (데스크와) 상의해서 보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씨의 경우는 이미 체포가 됐고 사회적으로도 격리가 돼서 사실상 처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공개를 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대중들이 손가락질 하고 화를 내고 분풀이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재범 방지 등 사회적 실익은 없이, 주변인 신상털기 등 불필요한 논란만 야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내부에서도 기준이 없어서 (공개 여부에) 고심했다고 말한다”며 “이전에 몇 번 이에 대해 논의가 된 적은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일관된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과 일관성 없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경찰과 ‘경찰이 공개하니까’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공개를 결정했다는 언론들이 존재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결정은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내린 판단일 뿐, 언론이 이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보도 여부를 결정하는 건 결국 편집권의 문제이며, 언론사마다 가치 판단은 다르기 때문이다.

2009년 강호순 사건 때에 이어 2016년 조씨 사건에서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한겨레>는 비공개 이유에 대해 내부 원칙을 이유로 들었다. <한겨레> 김영희 사회에디터는 “보도준칙에 흉악범이더라도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기소나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됐을 경우는 실명을 언급하지만, 그 전에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내부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며 “이번 옥시 사건의 경우에도 서울대 교수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판단 근거가 부재한 가운데 흉악・강력범의 신상공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언론이 내세우는 이유에는 범죄예방과 국민의 알권리가 있다. 2009년 <조선일보>에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이 첫 공개된 이후 다수의 언론이 이를 따라 강씨의 얼굴을 공개했을 때에도 ‘범죄예방’과 ‘국민의 알권리’가 이유였다.

하지만 과연 ‘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는지, 국민의 알권리가 충족되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에도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 이후 언론과 네티즌의 관심사는 조씨의 얼굴과 개인사라는 ‘호기심’으로 옮겨갔다. 늘어가는 흉악・강력범죄의 원인이 어디에 있고, 실제 신상공개가 범죄예방 효과로 이어졌는지, 범죄 발생과 사회시스템 간 상관관계 등 실질적으로 범죄를 진단하고 예방할 보도는 보이지 않는다.

▲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당시 <한겨레>가 내세운 원칙. ⓒ아이서퍼

언론, 스스로 가치 판단해야

이처럼 흉악・강력범의 신상공개 여부가 이야기될 때마다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직 해당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는커녕 진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기준과 근거가 제대로 서지 않은 가운데 논란은 계속되고, 이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피의자 조씨의 신상공개와 이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언론의 보도에 대해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받아쓰기’ 언론의 문제가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윤 사무처장은 “공개의 이유가 분명치 않고, 기본적으로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는 게 범죄 예방과 관련해 큰 실익이 없다. 그리고 그동안 흉악범죄가 계속 있어왔음에도 이번에 전격 공개한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충분치 않다”며 “경찰이 공개했다고 언론도 피의자의 얼굴을 그대로 공개하는 모습에서 왜 언론은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사무처장은 “흉악범죄 예방과 관련해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언론은 한 개인의 문제로만 계속 바라본다. 범죄예방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심층보도도 보이지 않는다”며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범죄를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범죄 예방 환경을 어떻게 만드는지 언론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신상공개 이유로 ‘국민의 알권리’를 언급하는 건 신성한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하는 말이다. 국민의 알권리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권리가 국민의 알권리”라며 “국민들이 냉정하게, 범죄의 본질과 문제점에 대해 따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영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923-5번지 한국방송회관 10층l대표전화 : 02-3219-5613~5619l구독문의 : 02-3219-5618l팩스 : 02-2643-6416
등록번호: 서울, 아00331l등록일: 2007년 3월 5일l발행인: 류지열l편집인: 이은미l청소년보호책임자: 류지열
PD저널 편집국 : 02-3219-5613l광고 문의(PD연합회 사무국 · 광고국) : 02-3219-5611~2l사업제등록번호 : 117-82-60995l대표자 : 류지열
Copyright © 2018 피디저널(PD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