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를 다루는 언론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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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창룡 인제대 교수

‘전관예우’라는 시대착오적 언어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변함없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구경조차 하기 힘든 변호사 수임료 50억, 100억 이야기가 예사로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부장판사,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전관예우’를 이용해서 무혐의나 불기소처분으로 혹은 징역형을 벌금으로, 실형을 집행유예로 둔갑시킨다는 내용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해외원정도박사건을 둘러싸고 전관예우에 빛나는 부장판사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체포되고 검사장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는 현 상황은 기가 막힌다.

더 놀라운 일은 이런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구태의연한 법조비리에 칼날을 들이대야 할 언론이 ‘동정론’ 등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대변인 역할보다는 비리의혹 변호사를 동정하며 법조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보도 관점이 특이하다.

▲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비리 의혹과 각종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네이처리퍼블릭 본사를 압수수색 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대표적인 예가 <조선일보>(2016년 5월 11일자)의 “엘리트 여성 법조인과 정운호의 잘못된 만남?...최유정 변호사 누구?”라는 제목의 기사다. 부제로 “성격 좋고 감수성 풍부한 엘리트 여성 부장 판사가 갑자기 변호사 개업을 하더니 의혹 사건의 중심인물로 지목돼 긴급 체포까지···.”를 앞세워 법조계의 안타까움과 동정론을 전했다.

이 기사는 특히 정 변호사가 ‘감수성이 풍부한 엘리트 여성 법조인’으로 법원 문예상 수상 경력까지 소개했다. 최 변호사가 ‘법원사람들 2014년 2월호’에 쓴 칼럼 “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네가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마라”의 한 토막까지 소개했다. 직접 인용해본다.

“세상에는 한 번 보는 것이, 한 번 말하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많다. 하나님이 네게 자랑할 만한 부모님이나 많은 돈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네가 이렇게 말썽을 부려도 지켜봐 주시는 보호자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건강한 몸을 주셨다. 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네가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너는 부자다.”

전관예우로 한 번 수임에 50억원을 받은 최 변호사의 ‘아름다운 글’과 현실은 너무나 큰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기사는 비판은커녕 글솜씨가 뛰어났으며 법원 문예상 대상까지 받았다고 칭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시종일관 최 변호사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며 심지어 희생양이 된 듯한 동정론으로 이어갔다.

이 기사는 “법원 주변에선 최 변호사가 개인 사무실을 낸 직후 법조 브로커들의 검은 유혹에 당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는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물론 기사말미에 “법원의 항소심 감형 비율이 평균 30% 수준인데 비해 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의 감형율은 60%를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2심에서 벌금형이 되고, 실형이 집행유예가 되는 식이다.”라는 내용도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최 변호사가 항소심 감형 비율 30% 평균치 두 배를 뛰어넘는 60%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경향신문 5월 11일자 '[단독]최 변호사의 ‘전관 파워’…항소심 성공률 70%, 평균의 2배' 참조).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대중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법조비리의 대명사 ‘전관예우’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법과 제도를 유린하며 거액을 챙기려한 부도덕한 전관 변호사를 동정하고 심지어 우호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세월호 사건으로 졸지에 희생자가 된 학생들과 그 유가족들에게도 비슷한 동정의 시각을 보낼 수는 없었을까. 진상조사를 위한 세월호 특위에 대해서 온갖 태클을 걸고 왜곡된 보도를 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는가. 전관예우를 악용하여 거액의 돈을 챙기고 법조비리의 전통을 이어가며 한국의 사법신뢰를 OECD 회원국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주범들에 대해 비판은커녕 동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언론인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법조비리는 현재의 검찰제도로는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는 점이 입증됐다.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여 판사출신, 검사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를 근절시키고 제도적 개선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언론의 빗나간 안타까움 속에 이 사건도 이대로 곧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이맘 때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전관예우의 법조비리는 한국의 법치문화를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전관예우에 따른 법조비리의 가장 큰 희생자는 사법부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판사, 검사, 변호사로 구체화 된다. 이들 앞에 서야하는 국민의 좌절감과 불신은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다. 언론마저 사회적 강자에게 동정하고 약자를 짓밟는 세상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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