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반대 너머 ‘광고의 그림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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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대기업·유통업체 ‘이익’과 언론사 ‘광고’의 관계

‘김영란법은 이렇게 우리 경제를 망가뜨린다’

5월11일자 <매일경제> 2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김영란법 시행 후폭풍’을 다룬 이 기사에서 <매일경제>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기 마련’이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기사는 ‘이런 저런’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우리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경제>에 이어 ‘김영란법’ 비판 주자로 나선 언론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5월12일자 1면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에서 ‘김영란법’에 맞춰 선물세트를 5만원으로 맞출 경우 어떻게 되는 지를 사진까지 동원하며 ‘친절히’ 설명했다.

조선·매경·한경 등 일부 언론이 ‘김영란법’에 맹공을 퍼붓는 이유

▲ <조선일보> 5월 12일자 기사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5만원짜리 한우등심 2.9Kg 선물세트가 578g 한덩어리’로 축소되고, ‘24만원짜리 굴비 10마리 선물세트 역시 굴비 2마리로 축소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물이나 경조사와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판매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경>과 <조선>의 바통을 넘겨받은 언론사는 <한국경제>였다. <한국경제>는 5월13일 5면 ‘성난 농심(農心)…“시장개방보다 충격 큰 김영란법, 농업인 벼랑 끝으로”’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경>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WTO 가입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보다 더 큰 충격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면서 “김영란법 금품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해달라”는 농협의 성명서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언론사마다 다를 수 있다. ‘김영란법’이 문제가 없는 완벽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세 신문이 지난 한 주 보도한 ‘김영란법’ 관련 기사는 단순히 우려를 전달하고 보완을 주문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김영란법’ 자체를 흔들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다는 얘기다.

<매경>은 지옥이라는 단어까지 등장시키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우리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정말 그럴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9일 입법 예고한 ‘김영란법’ 시행령은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해 받아서는 안 되는 금품을 식사대접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제한했다. 오는 9월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선물이나 접대비용 상한선이 제한된다는 얘기다.

이 정도 수준에서 선물이나 접대비용 상한선이 제한된다고 한 나라의 경제가 망가진다면 그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일까.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그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뇌물 공화국이란 말과 다름없고, 그렇다면 김영란법의 필요성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수가 직격탄을 받는 게 아니라 ‘뇌물·지하경제 시장’이 직격탄을 맞는 게 아닐까.

농협이 과연 농민들을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경제>의 지난 13일자 기사도 문제가 많다. <한경>은 ‘김영란법’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며 ‘성난 농심(農心)’의 목소리를 전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엄밀히 말해 ‘농심’을 대변한 기사가 아니라 농협을 대변한 기사였다. 기사의 대부분이 지난 12일 긴급 경영위원회를 개최한 농협중앙회가 발표한 성명서 위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의 입장이 전체 농민의 입장이 되는 걸까. 동의하기 어렵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고유의 명절에 정을 나누는 미풍양속은 사라져 버리고 저렴한 수입 농·축산물 선물세트가 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농협중앙회 주장 역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전경련이 대주주로 있는 <한국경제>는 농협중앙회의 성명만을 근거로 “김영란법으로 농업이 시장개방보다 큰 충격을 받고 있으며 농업인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농업 시장개방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던 <한국경제>가 이런 식의 보도를 하는 것도 ‘코미디’이지만, 주로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왔던 신문이 유독 ‘김영란법’과 관련해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려 나선 것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한우의 한숨과 굴비의 비명? 백화점의 한숨과 유통업체의 비명!

▲ 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 6동 공용브리핑실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보도 직후 논란이 된 <조선일보> ‘한우-굴비’ 기사와 관련해선 굳이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인터넷과 SNS 등의 반응을 보면 ‘기자들이 한우와 굴비세트를 그동안 많이 받아서 김영란법에 반대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해선 필자의 생각이 좀 다르다.

일부 언론의 ‘김영란법’에 대한 반대가 단순히(!) 그런 차원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백화점, 유통업체 ‘이익’과 언론사 ‘광고’는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우려가 ‘김영란법’에 대한 과도한 비판으로 연결됐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고급 한우세트와 굴비세트를 명절 때 선물할 수 있는 서민들이 얼마나 될까. 체불임금에 명절 보너스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일부언론이 강조하고 있는 ‘내수침체’ 우려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고급한우·굴비세트 구입자의 상당수가 ‘로비’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과 고위공무원 사회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급선물 세트는 한우·굴비농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백화점과 대기업 도와주는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백화점과 대형 유통업체 등이 ‘타격’을 입을 경우 언론사 광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김영란법’에 비판적인 기사를 낸 신문의 지면에서 대형 유통업체와 백화점 광고가 많이 실린 것도 흥미롭다. ‘한우의 한숨과 굴비의 비명’이란 기사 제목이 ‘백화점의 한숨과 유통업체의 비명’으로 보이는 게 과연 필자 혼자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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