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기획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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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기획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배기형 PD의 글로벌 프로듀싱]
  • 배기형 KBS 월드사업부 PD
  • 승인 2016.05.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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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우승은 우크라이나가 차지했다. 지난 5월 14일 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우승 트로피는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인종 청소 만행을 비판하고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했던 이슬람 소수 민족 타타르족의 고통을 한스럽게 토해낸 우크라이나의 재즈 가수 자말라에게 돌아간 것이다.

그녀가 부른 ‘1944’는 1944년 구소련 스탈린 정권에 의해 크림반도로부터 추방된 이들의 고통을 다룬 곡이다. 타타르족 출신인 그녀는 증조모가 겪은 경험담을 노랫말에 담았다. 국제관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이 곡을 통해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 자밀라는 결선에 앞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 노래 ‘1944’는 1944년은 물론 2014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비극적인 사건은 그녀 인생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고, 만약 우승한다면 유럽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고 같이 아파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Of course it’s about 2014 as well. These two years have added so much sadness to my life..., (If I win) it will mean that modern European people are not indifferent, and are ready to hear about the pain of other people and are ready to sympathise”

이런 이유로 러시아 측에서 ‘1944’가 “정치성을 띤 노래”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주관하는 EBU(유럽방송연맹)는 문제 될 게 없다고 일축했다. 결국 자밀라는 우승을 성취해 내었고 그녀는 “노래로 진실을 전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 지난 5월 14일 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우승 트로피는 우크라이나의 재즈 가수 자말라에게 돌아갔다. ⓒ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한편, 호주 대표로 참가해 ‘Sound of Silence’를 부른 임다미는 아깝게 2위에 머물렀다. 임다미는 한국계로서 호주의 인기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X-Factor)>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경력을 바탕으로 올해 이 대회에 참가했으며, MBC <복면가왕>에도 출연한 바 있다. 비록 호주는 EBU의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준회원 자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 공영방송 SBS가 이 대회를 생중계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유러피언(European)이 아니라 유로비전(Eurovision) 회원사의 가요 축제인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KBS도 EBU의 준회원사로서 매년 적지 않은 회비를 부담하고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각 참가국에서 균등하게 선정된 심사위원의 점수(Jury Vote)와 시청자들의 전화로 수집한 인기 점수(Popular Vote)를 각각 50%의 비율로 합산해서 최종 우승자를 결정한다. 호주 대표로 선정된 그녀는 먼저 발표된 참가국별 심사위원단 점수에서는 단연 1위를 기록해 우승이 기대됐으나 이후 시청자 인기 점수에서 밀려 막판에 역전을 당했다. 유럽의 시청자들이 보다 유럽적인 맥락을 통해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담은 우크라이나의 자밀라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유럽방송연맹(EBU)이 주관하는 세계 최대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다. 1956년 시작돼 올해로 61회를 맞았다. 이날 본선에는 42개 참가국 중 예선을 통과한 26개국 대표가 출연해 경쟁을 펼쳤고 약 2억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는 유럽 전역과 중국, 카자흐스탄, 뉴질랜드,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미국에 생중계됐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는 TV쇼 프로그램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비전’이라는 이름은 1950년 설립된 이래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사업을 펼치는 국제방송기구인 유럽방송연맹(EBU)의 텔레비전 활동을 통칭하는 유로비전(Eurovision)에서 따왔다. 유로비전의 프로그램 사업 가운데 대표적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1955년 유럽방송연맹 회원 방송사들이 모나코에 모여 합의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공동의 이벤트를 개최해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이 이벤트를 모든 참가 방송사의 채널을 통해 방송하자”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산레모 가요제를 모델로 삼아 노래와 춤 등의 퍼포먼스 경연을 벌이고 이 행사를 생방송으로 회원사에 중계하자는 것이었는데, 당시로는 위성 채널이 존재하지 않을 때였으므로 지상파의 마이크로웨이브 통신망을 통한 실험적인 생방송 중계였다. 이 계획은 현실로 옮겨져 다음 해인 1956년 스위스 루가노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이란 이름으로 탄생하게 됐다.

당시 참가국은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와 이탈리아 등 7개국이었고 각국에서 2팀이 출전하여 우승을 겨루었다. 이후 오스트리아, 덴마크, 영국 등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참가국 수가 늘어나서 1980년대에 이르면서 그리스, 터키, 키프로스 등 지중해 주변국까지 참여하는 명실상부 유럽 전체의 음악 제전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스위스 루가노 첫 대회부터 성공적이었으며 지금까지 대중적인 관심을 듬뿍 받으며 유럽 음악의 산실로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매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이집트, 홍콩, 미국, 뉴질랜드 등 전 세계에서 약 2억 명의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스포츠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행사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참가국 모두가 이 대회를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매년 그해 대회에서 우승자를 낸 나라에서 다음해 행사를 개최하는 형식으로 열린다. 예를 들어 프랑스 가수가 그해 우승하면 다음 대회 개최권을 프랑스가 갖는 방식이다. 2015년 대회에서 스웨덴의 몬스 셀멜뢰브가 ‘Heroes’로 우승함에 따라 이번 2016년 대회는 스웨덴 공영방송 SVT의 주관으로 스웨덴에서 개최되게 된 것이다. 이제 2017년 대회는 자밀라의 조국 우크라이나에서 개최되게 된다.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의 성공으로 인하여 이 대회의 청소년 버전인 ‘주니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도 2003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린 것을 기점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첫 대회인 코펜하겐 대회부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노르웨이, 벨기에, 루마니아, 네덜란드, 키프러스, 우크라이나 등 유럽을 순회하며 매년 유럽의 청소년 음악도들에게 꿈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배출한 가장 큰 스타중 하나인 아바(ABBA)는 원래 1973년에 ‘Ring ring’으로 스웨덴 예선에 참가했지만, 3위를 차지해 본선 무대엔 오르지 못하다가 이듬해에 ‘Waterloo’로 재도전해 마침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후 아바는 스웨덴을 넘어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그룹으로 비상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또 하나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스타는 셀린 디옹이다. 1988년도 대회에서 캐나다 출신의 셀린 디옹은 프랑스어로 된 노랫말인 ‘Ne partez pas sans moi’로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자라는 지명도를 이용하여 이후 1991년 영어 앨범을 내면서 세계적인 가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처럼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은 유럽 출신의 음악 연주자들에게 신인의 등용문이자 일거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꿈의 무대인 것이다. 그동안 60년 가까이 유럽의 인기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으로 방송되면서 1000여 곡 이상의 노래가 피처링(featuring)되었고 무엇보다 단순히 노래뿐만 아니라 유럽 내 국가 간의 문화 교류와 아울러 정치와 사회 이슈가 될 만큼 영향력 있는 페스티벌이 되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운영 방식은 매우 복잡하나 요약하자면, 국가별 콘테스트 방식으로 회원 방송사들이 각기 국내 대회를 주관하여 참가자를 뽑고,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26개팀을 최종 선정하게 된다. 즉 두 개의 예선 리그에서 각각 10개국을 뽑고 주최국과 ‘BIG 5’를 합쳐서 26개국이 되는 셈이다. UN에서 강대국들이 상임이사국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듯이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도 ‘BIG 5’ 라고 불리는 5개국은 결승에 자동 진출한다. 이들은 EBU에 회비를 많이 내는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이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국가 간 경쟁으로 치러지다 보니, 시청자들의 애국적 성향으로 흥행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정치적인 이슈에 휘말린 적이 많았다. 1975년 터키가 처음으로 참가하자 앙숙인 그리스는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을 비난하며 불참했다. 또 1978년 최초로 비유럽권인 이스라엘이 우승하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방송으로 중계하던 아랍 권 국가들이 반발해 중계를 중단하고 2위 팀인 벨기에를 우승국으로 보도하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4년 대회에서는 시청자들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정책에 대한 집단 항의 표시로 영국 대표에게 표를 던지지 않기로 한다. 결국 영국 대표는 결승에 참가한 26개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원래 참가국 시청자들의 투표로만 우승자가 결정되던 방식에서 영국의 강력한 의의 제기로 채점 방식이 시청자 투표와 심사위원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 지난 5월 14일 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자들이 다함께 열창을 하고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시청자들의 관심이 큰 만큼 음반사들의 물밑 로비 또한 치열하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은 1974년 이 대회에 출전했다. 왜 호주 출신의 그녀가 굳이 영국 대표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한 것일까? 이때 올리비아는 그녀의 대표곡 ‘Let me be there’로 미국 대중음악계를 노크하던 중이었다. 즉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통해 유럽과 미국 시장 공략을 추진했던 음반사 EMI의 기획이 그녀의 참가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비록 올리비아가 수상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세계 음악시장 내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이후 그녀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신 가수란 이름을 최대한 이용하여, 이후 세계적인 팝가수로 자리매김한다.

국내에서도 1980년대까지 녹화방송으로 TV에서 소개되어 국내 음악 애호가들은 나름대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통해 유럽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며, 한 때 라디오에서 유럽의 유행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단골 메뉴로 소개되었다. 그 당시를 지낸 기성세대라면 어쩌면 가수 전영이 부른 '작은 평화'라는 번안곡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독일 출신의 니콜(Nicole)에게 1972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그랑프리를 안겨준 'Ein bisschen frieden'이 그 원곡이다. 우리에겐 그 영어 버전 'A little peace'로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생일 축하곡으로 자주 등장하는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의 'Congratulations' 역시 1968년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발표된 곡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대표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그널 뮤직도 1966년 그랑프리곡인 벨기에 우도 위르겐스(Udo Jurgens)가 부른 'Merci, Cherie'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필자가 기억하건대, 서울 강남의 ‘월 팝’이나 신촌의 ‘우산 속’ 등 당시 유행했던 ‘디스코 텍’에서 나름대로 유럽의 대중음악이 흘러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수상곡들은 유럽 유행음악을 소개할 때 대표적으로 틀어 주던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후 국내 음반시장이 기획사의 매니지먼트 중심으로 움직이고 방송의 음악 관련 프로그램도 기획사의 마케팅에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음반 기획사들의 판촉 우선순위에서 밀린 유럽의 대중가요는 방송 편성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그 결과 유럽 가요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대한 한국 시청자들의 관심은 예전에 비해 많이 식었지만 세계 최대의 가요축제인 '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은 유럽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으며 꾸준히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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