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영’ ‘공심이’ 그녀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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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영’ ‘공심이’ 그녀들이 사는 세상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갑갑한 현실과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6.05.24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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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드라마가 한 물 갔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에 나왔던 일이다. 비슷비슷한 삼각 사각 구도의 남녀관계나 어찌 어찌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신데렐라 이야기들은 시청자들을 식상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이미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드라마가 비추는 직장생활 역시 그리 달달한 건 아니었다. <미생>이나 <송곳> 적어도 <욱씨남정기> 같은 처절함이 직장생활에서도 신데렐라를 꿈꾸던 멜로드라마의 판타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그러니 그저 그런 통상적인 문법을 반복하는 멜로드라마가 설 자리가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최근 멜로드라마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작년 MBC <그녀는 예뻤다>가 무려 18%의 시청률을 찍고 화제성에서도 최고의 관심을 받으며 종영한 이래, 최근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들은 새로운 흥행 공식을 알게 되었다. 예쁨과 평범함, 스펙과 진심, 태생과 노력으로 대분되는 두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녀들이 일과 사랑 양편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결국은 그 평범 속에 예쁨을, 스펙이 아닌 진심을, 태생이 아닌 노력을 바라봐주는 남성과의 사랑에 골인하는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스토리 공식이다.

▲ tvN <또 오해영> ⓒtvN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또 오해영>이나 SBS <미녀 공심이>는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시청률에 있어서도 화제성에 있어서도 연일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다. <또 오해영>은 이른바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그냥 오해영(서현진)이 끝없이 비교되고, <미녀 공심이>에서는 직업도 외모도 모두 가진 공미(서효림)와 모든 게 부족해 보이는 공심(민아)이 비교된다. 일반적인 사회적 시선에서 보면 예쁜 오해영과 공미가 멋진 남자를 만날 확률도 높고 또 일에 있어서 성공할 확률도 높아 보인다. 이것은 드라마 속 그냥 오해영과 공심이도 모두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드라마는 실제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주목할 것 같지 않은 그녀들에게 시선을 던진다. 그냥 오해영은 보면 볼수록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랑스런 인물이고, 공심은 사심이 전혀 없는 순수하디 순수한 인물이다. 드라마는 그녀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그녀들과 대척점에 있는 ‘예쁜 척’ 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예쁜 오해영이나 공미와 비교되며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드라마 속에서는 ‘예쁜 척’ 하는 그녀들에 남성들의 시선이 집중되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반대쪽에 있는 소외된 오해영과 공심이에게 시선이 간다.

멜로드라마가 이처럼 사랑과 일 양편에서 극과 극의 캐릭터를 비교점으로 세워놓은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가진 자들은 다 가지고 못 가진 자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하는 ‘승자 독식 구조’의 시스템 속에서 사랑도 일도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결정되어 버린다. 그러니 드라마는 일터에서의 행복과 성공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사랑에 있어서 그녀들의 판타지를 이뤄주려 한다. <또 오해영>에서 도경(에릭)은 자꾸 거부하려 해도 그냥 오해영에게 마음이 가는 자신을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동정처럼 여겨졌다가 차츰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것. 이것은 <미녀 공심이>에서 공심이 자꾸만 귀엽게 느껴지는 안단태(남궁민)와 비슷한 그림이다.

▲ SBS <미녀 공심이> ⓒSBS

하지만 이들 멜로드라마들 속 그녀들이 사랑에 있어서 성공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지는 몰라도 일에 있어서는 거의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또 오해영>의 해영은 직장생활이 생계수단 정도이지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일터는 아니다. 이것은 <미녀 공심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비서실에 들어가게 된 공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저 일자리가 필요했을 뿐, 비서라는 직업에 대한 꿈 따위는 애초에 없다.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또 오해영>과 <미녀 공심이>이 그리는 일터의 세계는 그저 치러야할 생존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들어가 있지 않다. 다만 이 드라마들이 관심이 있는 건 사적인 사랑이라는 판타지다. 그래서 이들 드라마는 마치 공적인 현실이 만들어내는 팍팍한 삶을 사적인 사랑이라는 판타지로 잠시 잊고자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 공고한 시스템에서 태생을 거스르는 성공신화는 믿기 어려운 판타지가 되었다. 그러니 실현 가능한 소소한 사랑의 판타지로 귀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오해영>과 <미녀 공심이>의 그녀들은 더 이상 갑갑한 현실과 싸우지 않는다. 대신 현실에서 돌아와 사적인 공간에서의 사랑을 꿈꾼다. 이것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을 살아내는 이들의 새로운 생존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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