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동자 ‘길 위의 분향소’ 침묵하는 지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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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농성 돌입 일주일간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 단신조차 없어

권리 위에 깨어 있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이름 ‘노동자’. 현대차그룹과 현대차 협력사인 유성기업의 부당 노동행위를 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한광호씨. 그러나 노동자들은 고인에 대한 추모는 물론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항의조차 할 수 없다. 기업은 공권력을 투입해 그들의 입을 막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7일 숨진 채 발견된 한광호씨. 한씨가 죽기 전까지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고소당한 것만도 11차례. 죽음 직전인 3월 14일에도 회사는 한씨에게 징계위원회 개최를 위한 사전조사를 통보했다. 이미 지난 2011년 이후 지속된 노조파괴와 현장탄압을 겪어온 그였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에 따르면 사측은 노조원들을 상대로 약 1300여 건의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진행했다. 전형적인 노조 탄압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유성기업 민주노조파괴를 위한 지배개입 증거(일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한씨의 죽음 이전인 지난 1월 28일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성기업지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가 유성기업, ‘노조 파괴 시나리오’로 유명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유성기업지회를 파괴하려 한 정황을 알렸다. 이에 따르면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유성노조(기업별 노조이자 제2노조) 확대방안 계획을 요구하고,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파괴 현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지도했다. 그리고 유성기업은 유성기업지회 파괴 및 유성노조(기업노조) 확대 현황을 수시로 현대차에 보고했다.

이처럼 지난 2011년부터 계속된 노조탄압과 그에 대한 추가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한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노조는 지난 17일부터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상징석 앞에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정몽구 회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뒤인 지난 18일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27명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는가 하면, 지난 21일 노조와 민주노총 등 76개 단체로 구성된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의 범국민대회 과정에서 경찰이 분향소 조문을 하려고 했던 참가자들을 막아섰고, 상주를 비롯한 참가자 18명이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됐다.

오는 6월 24일 한씨의 죽음 100일째를 맞아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현대차가 집회신고용 알바생을 고용해 365일 집회신고를 하는 등 유성기업지회와 범대위 등의 집회를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18일 정몽구 현대차 회장 면담을 요구하는 ‘현대차 집중투쟁 선포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경찰과 현대자동차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둘러싸고 있다. ⓒ금속노동조합

이처럼 한 노동자가 죽음을 통해 외친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항의, 그리고 이를 기리는 추모, 지난 6년 간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자행된 노조탄압 행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고 이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 메인뉴스에서는 이에 침묵하고 있다. 유성기업지회가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에서는 단 한 건의 보도조차 나오지 않았다. 단신조차 없었다.

어떤 뉴스를 보도할지에 대한 선택권은 물론 방송사에 있다. 방송사는 내・외부의 간섭이나 압력 없이 공정하게 뉴스 아이템을 선정하고 또 보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철강회사의 '화장실 앞 근무'라는 인사 보복 논란에 대해서는 보도(5월 22일)한 SBS <8뉴스>가 왜 현대차-유성기업 사태는 침묵하는 걸까.

도심 한복판에서 대기업에 의한 노동 탄압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음을 외면하는 현실. 그렇게 6년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고립된 전쟁터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이에 노동자들은 죽음에 몰렸다. 지상파의 뉴스 선택지 속에 ‘노동자’라는 이름 석 자가 포함돼 있긴 한 건지, 6년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 과연 언론의 책임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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