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다, 그래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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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다, 그래서 미안했다
[제작기] EBS ‘다큐프라임-공부의 배신 3부작’
  • 김지원 EBS 교육다큐부 PD
  • 승인 2016.05.25 08:1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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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큐프라임-공부의 배신> ⓒEBS

울었다. 얘기하면서 아이들은 자꾸 눈물을 터트렸다. 아픈 질문을 특별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팠다. 꾹꾹 참고 있었다. 하나같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어떤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아픈 시간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은 때론 자신에 가해졌던 냉정한 평가 기준을 받아들였다. “다른 방법이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눈물을 닦아내고 애써 차가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의 배신>은 지금 이 땅의 십 대와 이십 대가 눈물로 살아내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잔인한 정글에서 벌어지는 생존기다.

대학을 떠난 지 십여 년 정도 되었다. 나 역시 대입과 취업이라는 관문을 결코 쉽지 않게 통과했다. 하지만 잊었다. 그건 지난 일이니까. 나는 돌아보지 않고 십여 년을 보냈다. 관심을 두게 된 건 주변에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자녀를 둔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예전과 달랐다. 꽤 충격을 받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나온 대학을 진학할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10개월 동안 200여 명의 학생을 만났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어디에서 누구를 붙잡고 취재를 시작해야 하는지, 그 시작이 쉽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교사나 전문가나 제도의 입장은 어느 정도 공부할 수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십대와 이십대가 정작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담아내는 것이 처음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부터의 목표였다.

▲ EBS <다큐프라임-공부의 배신> ⓒEBS

만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만남이 이루어지고 난 후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아니, 토해냈다. 일상에서 부딪치며 켜켜이 쌓여온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던가…. 방송에 미처 다 쓰지 못할 만큼 귀중한 인터뷰가 많았다. 소위 말하는 ‘센’ 장면이나 인터뷰는 오히려 쓰지 않았다. 전하기만 해도 될 거로 생각했다. 어디서도 듣지 못한, 솔직한 이야기니까. 그게 역할이라 생각했다.

2부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를 만들면서 특히 괴로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써야 할 반성문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우리 사회가 손에 쥔 성적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같은 반 옆자리 친구와 경쟁한다. 학교에서는 심화반이라는 이름으로 한 줄을 세운다. 성적순으로 혜택을 주고, 특별하게 관리한다. 아이들은 성적이 나올 때마다 자신의 등급을 확인받는다. 그리고 등급에 따라 달라지는 혜택을 경험한다. 이런 시스템에 의한 구분 짓기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자라나는 동안 계속된다. 경쟁력과 수월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다름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경쟁과 수월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당연히 발생하는 결과일 뿐이다. 아이들을 내몬 어른들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일이다.

차별이나 서열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놓고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 그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방패막이 되기도 한다. 생존 전략 같은 것이다. 그것을 버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런 방패막이 전혀 없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다. 나 또한 학벌이라는 방패 뒤에서 어느 정도 몸을 숨겨 왔으니까. 그 구분이 미세하게 나뉘는 것은 분명히 다른 현상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습도 아니다. 다만, 무서운 것은 아이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는 이 무시무시한 경쟁사회가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아이들도 그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도, 배려하기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는 낙오할 수밖에 없으니까.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과연 옆 친구를 배려하라고,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워서 같이 뛰라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 EBS <다큐프라임-공부의 배신> ⓒEBS

방송이 나간 후 약간의 절망감을 느꼈다. 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현실이 바뀌지 않으니 당연한 반응인 것일까? 결국 살아남는 방법 밖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이 없는 걸까?

<공부의 배신>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십 대와 이십 대가 버텨내고 있는 전쟁 같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와중에 귀한 시간을 빌려준 한국의 10대와 20대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고마울 뿐이다. 아이들의 절규가 닿기를. 아이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이 울음이 와 닿기를. 이번이 안 된다면, 앞으로 계속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되지 않는가.

P.S. 꼭 첨언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공부의 배신>을 에피소드로,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이 이야기는 우리 교육과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현상과 결과는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다. ‘요즘 아이들은….’이라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그 손가락질은 바로 나 자신, 우리 모두에게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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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 2016-06-02 13:51:10
2부 청년들에게 특히 미안하단 말씀을 하시네요.그러나 이 과정에서 벌어진 오해와 고통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는 한 사실 당신의 미안하단 말은 역겹게 들립니다. 물론 김지원 피디님이 파헤친 이 현상이 피해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없는 현상인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현상을 거대한 실체인양 보이게끔 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또한 그에 대한 책임과 사죄 역시 제대로 지시구요.

Irene 2016-06-02 13:48:47
2부 청년들에게 특히 미안하단 말씀을 하시네요. 피디님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20대가 아닌 타자가 바라보는 20대가 분명 불쌍해 보일수 밖엔 없겠죠. 저 역시 지금의 현상이 없는 현상이라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이 결과가 과연 아름다운 과정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메시지를 뽑는 과정에서 상대하는 취재원들이 그 메시지를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피디님이 접한 것도 날 것 그대로였을지도 모르

hello 2016-05-25 09:28:08
공감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다큐프라임 제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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