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무해판정’, 정부는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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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BS ‘추적 60분-묻혀진 죽음의 진실, 독성시험은 말한다’

‘옥시’가 사과했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과 질환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이 이제라도 보상을 받는 듯 보였다. 하지만 1994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던 애경과 SK케미칼은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청자는 1282명에 육박함에도 현재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221명뿐이다.

여전히 한 가지 성분이 “정부에 의해 폐질환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생후 14개월 만에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부부도, 각각 폐섬유화증과 기흉 진단을 받은 6살 쌍둥이 자매도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로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옥시' 제품이 아닌, 애경의 ‘가습기메이트’ 제품을 사용했던 사람들이다.

25일 KBS <추적 60분>은 왜 정부가 2011년 독성시험에서 애경 '가습기메이트'의 CMIT/MIT 성분이 유해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그후 피해자가 속출하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바뀐 것이 없는지, 피해자들은 왜 아직도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 찾아 나섰다.

▲ KBS <추적 60분> ‘묻혀진 죽음의 진실, 독성시험은 말한다’ (5월 25일 방송). ⓒ화면캡처

현재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총 네 가지다. ‘옥시싹싹’ 성분인 PHMG, ‘세퓨’ 성분인 PGH, ‘가습기메이트’ 성분인 CMIT/MIT 등이다. 이중 PHMG와 PGH 성분 계열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인정을 받고 있지만, CMIT/MIT 성분의 애경 ‘가습기메이트’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판매사 애경은 “우리는 완제품을 판매한 것일 뿐, 책임은 제조사인 SK케미칼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SK케미칼은 "2011년 정부의 독성시험 결과 CMIT/MIT 성분은 문제가 없었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1995년 SK케미칼의 자체 실험에서는 이미 해당 성분이 유해하다고 판단된 바 있다.

그렇다면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도대체 왜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까. 연구진이 따랐다고 적혀 있는 EU의 독성시험은 세 가지 농도로 연구를 진행했다. CMIT/MIT의 경우 가장 고농도인 2.64㎎/㎡ 일 때 ‘흡입시 경미한 독성’이 나타난다고 나왔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는 1.83㎎/㎡ 한 가지 농도로만 시험한 결과 유해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오게 됐다.

박영철 대구가톨릭대학교 GLP센터장은 “독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독성이 나타날 수 있는 최대 용량을 투여해야 한다”며 “독성도 일어나지 않는 용량을 갖다가 동물에게 투여해놓고 폐 독성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원인적 연관성을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성시험이 아니고 무독성시험인 것”이라며 황당해했다.

▲ KBS <추적 60분> ‘묻혀진 죽음의 진실, 독성시험은 말한다’ (5월 25일 방송). ⓒ화면캡처

당시 피해백서는 “추가 유해성 시험이 필요하다”고 첨언하고 있지만 그 후 한국에서 추가시험은 벌어지지 않았다. 2011년 12월 <추적 60분> 방송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독성시험을 다시 실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관이 질병관리본부에서 환경부로 넘어가면서 지금까지도 추가 독성시험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이후 추가 시험이 실행되지 않으면서 CMIT/MIT 성분 제품은 강제 수거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결과 추가 사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것은 자명하다.

검찰은 정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PHMG와 PGH 성분 계열의 가습기 살균제만 조사하고 있을 뿐, CMIT/MIT 성분의 제품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만약에 과학자들이 검사를 해서 (CMIT/MIT가) 독성이 있다고 나오면, 고발을 하면, 그 부분에 대해 집중해서 수사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 KBS <추적 60분> ‘묻혀진 죽음의 진실, 독성시험은 말한다’ (5월 25일 방송). ⓒ화면캡처

게다가 CMIT/MIT 성분은 폐 이외의 장기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폐손상 위험성에만 초점을 맞춰온 것이 드러났다. 임종한 폐손상조사위원회 위원은 “CMIT/MIT는 폐손상도 일으키지만 그 외에 상기도 쪽이나 비점막, 후두 쪽에 염증을 일으키면서 관련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관련 성분이 혈관을 따라 움직일 소지가 있어 임산부의 경우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폐 이외의 장기 손상 피해와 태아의 피해는 구제받지 못하고 있다. 2년 사이 둘째를 유산하고, 셋째는 출산 직후 떠나보내야 했던 박지원(가명) 씨의 아이들은 임신 30주 무렵부터 심장 등의 장기가 하얗게 굳어갔다. 하지만 둘째는 피해 판정 불가, 셋째는 관련이 거의 없다는 4등급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정부에) 제 아이의 죽음을 나라에서 밝혀주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제가 해야 하는 방법은 같은 제품을 사서 흡입을 하고 다시 임신하는 게 마지막 방법이다, 도와달라, 읍소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고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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