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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여성혐오 범죄조차 ‘포르노’로 소비”

[현장]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김세옥 기자l승인2016.05.27 12: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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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는 그냥 살아있는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걸까.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많은 여성들은 이 사건을 ‘그녀’의 안타까운 일이 아닌 ‘나’와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지, 이 사건을 왜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 26일 저녁 서울시청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이 공동으로 개최한 ‘강남 ‘여성 살해’ 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에서도 35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강남 여성 살해 사건'의 20대 여성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뉴스1

인터넷에서 유머로 유통되는 여성혐오, 성폭력 범죄를 포르노로 소비하는 언론

여성 혐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고 있는 걸까.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그 중심에 ‘언론’의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이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선 그 수단으로 여성을 ‘차지’하고 ‘획득’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남성성을 수행하지 못한 이등 존재가 되는데, 이때 여성을 만나지 못한 책임을 한국 사회의 경쟁 시스템 등에 두지 않고 자신을 부인한 여성에게 두면서, 남성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켜 역차별을 말한다. 이런 문제를 격화시키고 심화시키는 게 바로 언론과 인터넷이다.

저널리즘은 어떤 의견이 중요하고 또 공공선과 공동체를 위해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봐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언론은 성 평등, 여성혐오와 관련한 사안을 동등한 주체 간의 갈등으로 보도하면서 양측의 의견이 동등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모두를 사실로 만든다. 의견이 언론을 통해 의견이 아닌 사실로 제기되면서 담론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언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네티즌의 의견을 항상 받아들이며 시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듯 내세우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여성혐오 세력을 키워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였다.”

대중문화웹진 <아이즈(ize)>의 최지은 선임기자는 한국 언론의 젠더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최 기자는 성폭력 사건 등에서조차 가해자인 남성이 아닌 피해자인 여성을 부각하는 ‘○○녀’ 표현과 함께 범행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제목을 뽑는 언론의 실태를 지적하며 “여성을 한 사람의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조차 기사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포르노로 소비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기자는 “이런 풍토 속에서 자극적이고 의도가 빤한 제목과 기사들로 여성혐오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도 마주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 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여성이 살해당함으로써 수많은 여성들이 공포와 분노에 떨고 있는 사건을 놓고 ’남성들이 위축된다‘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말조심‘이라는 표현으로 남성들을 자극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언론은 이런 식의 보도가 잘못이라는 걸 모를까. 최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정관에는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권고 기준,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 안에는 ‘언론은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는 내용의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여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성 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의 문제만 부각하지 말고 그 근본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등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원칙들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언론이 여성을 비롯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상시적으로 저지르는 2차 가해와 같다.”

여성 혐오를 하나의 유머로, 문화적으로 소비하는 풍토와 이를 가능케 하는 플랫폼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김수아 교수는 지적했다.

“지난해 ‘오! 빠따 뽑았다, 널 때리러 가(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라는 짤방이 인기를 끌었다. (이와 같은) 여성혐오 맥락이 포함된 유머가 온라인을 통해 오랜 시간 유통됐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여성혐오가 재밌다고 교육받은 것이다.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포함한 메시지가 ‘패러디’, ‘표현의 자유’, ‘유머’의 옷을 입고 재밌는데 뭐 어때, 라는 식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런 현실에 대해 페이스북코리아의 책임이 크다. 페이스북은 이용자들이 혐오와 차별을 중심에 둔 페이지를 개설해 논란이 발생해도 재미만 있다면 (대부분) 허용하고 문제의 페이지와 메시지를 삭제하지 않았다. 여성혐오를 유통하는 기반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성혐오 유머는 여성에 대한 공격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사소하게 하며,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그것을 실제의 폭력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 시민들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피해자를 추모하고자 강남역에서 침묵 추모 행진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뉴스1

혐오와 증오를 만드는 차별금지법 제정 시급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에 대해 증오범죄 혹은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정부와 언론조차 그렇다. 하지만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증오범죄법 또는 범죄학적 관점에서의 ‘증오범죄’ 개념만을 적용한다면 강남역 사건은 증오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발생 이후 벌어진 충격적인 사회적 반응과 그 맥락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전혀 삭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 직후 벌어진 사회적 반응은 진짜 ‘증오범죄’의 징후와 매우 유사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증오범죄의 판단 기준이 되는 지표는 바로 소속 구성원들이 해당 사건을 자신의 일로 느끼는지 여부다. 그 사람이 아닌 내가 속한 집단을 공격한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에 등장한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쪽지의 문구는 이 사건을 ‘증오범죄’로 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번 사건 이후 정부와 경찰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정신질환 범죄대책과 여성안심 화장실 확충, CCTV 확대 등을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정신질환 범죄대책 등은 정신질환자를 소외시키고 적대하는 반(反)인권의 방향으로 흐를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하며 “지금 더 중요한 건 차별금지법”이라고 강조했다.

“혐오표현금지법의 경우 표현을 금지하는 것인 만큼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나라에선 당연한 상식이고, 여성혐오 등 폭력과 범죄의 근간을 이루는 걸 규제하는 것인 만큼 가장 필요하고 우선해야 한다.”

이날 집담회에선 시민들도 적극 발언했다. 한 시민은 “‘슴만튀’(가슴을 만지고 튀는 행위), ‘엉만튀’(엉덩이를 만지고 튀는 행위) 등의 행위는 범죄인데도 일종의 유희처럼 표현된다. ‘몰카’ 역시 예능에서 쓰던 말을 여성에 대한 범죄에 그대로 적용하는 케이스인데, 이런 식의 ‘가해자의 말’을 언론이 받아쓰고 쉽게 사용해선 안 되는 게 아닌가. ‘강제촬영’ 등 명확한 언어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 이지원씨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쪽지들에서 여성들이 일상에서 피부로 겪은, 삶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여성혐오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가슴 깊이 느끼고 이에 대해 (함께) 얘기하기 위해 나서면서도 테러 당할까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충격이었다”며 이날 집담회 패널에 적힌 지난해 퀴어문화축제 당시 등장한 문구에 적극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음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것, 그리고 우리에 관해 계속 말하는 것이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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