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잡종’ 매거진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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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PD의 촌방촌설 村放寸說] MBC경남 ‘경남아 사랑해’

글의 제목을 이렇게 달고 나니 살짝 걱정이 앞선다. ‘웃기는’(?)이라는 단어와 ‘잡종’이라는 표현이 혹시 비하적인 느낌으로 비칠까 하는 염려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쩌랴 진짜 웃기는 잡종 방송이다.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매거진 프로그램이 여기 있어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쓴 웃음도 아니고 훈훈한 미소도 아닌 말 그대로 즐거운 함박 웃음을 짓게 만드는 방송이다. MBC경남이 2년여 이어오고 있는 데일리 매거진 생방송 <경남아 사랑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 방송사에서 데일리 매거진이라는 장르는 따분하거나 계몽적이거나 혹은 심심해 보이는 운명을 비켜갈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따라다닌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다보니 일관된 제작 흐름을 잡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며, 단시간 내에 정보 위주로 아이템을 처리해야하는 시간의 촉박함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방송 분량에 비해 제작인력이 늘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상도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 MBC경남 '경남아 사랑해' 진행자 남두용, 이다솔 ⓒ경남MBC

그런데 <경남아 사랑해>는 기존의 모든 선입관을 일거에 허무는 새로운 개념의 매거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정작 제작진 본인들은 새로운 매거진의 거대한 서막을 자신들이 열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시절의 장금이가 홍시 맛을 홍시 맛이라고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하고 의아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지금부터 <경남아 사랑해>가 저질러온(?) 몇 가지 성취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먼저 웃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빠듯한 방송인데도 아주 웃긴다. 그 웃음의 근원은 ENG꼭지와 스튜디오 모두에서 발원한다. 가히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상찬하고 싶다. 특히 ENG꼭지는 MBC경남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분야이다. MBC경남으로 통합되기 이전부터 마산MBC와 진주MBC는 서부경남만의 독특한 촬영과 재밌는 편집으로 방송계에 정평이 나있었다. 그 시작은 <얍 활력천국>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소재를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표현해내는 발칙한 웃음코드가 PD들의 DNA속에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런 전통과 노하우가 <경남아 사랑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빠른 편집과 절묘한 자막 그리고 PD의 적절한 현장 참여 등이 매거진의 전통을 전복시키는 힘의 근원이 되는 듯하다.

<경남아 사랑해>를 규정짓는 또 하나의 단어를 든다면 ‘잡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프로그램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장르의 통합 혹은 변용은 기존에도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교양과 예능이 결합하고 다큐와 드라마가 섞이기도 하는 상황이니 장르의 혼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남아 사랑해>는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잡종의 탄생을 보여준다. TV에 라디오의 개념을 장착한 것이다. 통념을 전복시키는 발칙함이 여기에서 발견된다.

▲ 경남 MBC <경남아 사랑해> 코너 '집안꼴' ⓒ경남MBC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TV생방송에서 60초 문자 사연 소개 코너를 매일 진행한다든지, 노래 신청을 받고 프로그램 말미에 신청곡을 들려주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라디오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진행 방식이지만 이런 형식을 TV생방송에 도입한 것은 지상파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실험인 듯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무작정 전화걸기를 시도하는 과감성까지 보여준다. 이른바 전화데이트라는 형식이 라디오 매체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관념을 통쾌하게 허물고 있는 것이다.

<경남아 사랑해>의 발랄하고도 발칙한 시도들은 뜨거운 시청자들의 호응으로 이어진다. 시청자 게시판을 채우는 지역민들의 관심은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지역방송이 가야할 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모두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나아갈 뿐인데 <경남아 사랑해>는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지역 뉴스가 지역민들에게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지역의 소식을 전한다는 단순한 메커니즘에 기반하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지역과 지역민의 소식이 전해진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뉴스의 힘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남아 사랑해>는 PD들이 만드는 대안 뉴스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듯하다. 보도자료에 의존해서 생산되는 죽은 뉴스에 식상한 지역민들에게 생생하면서도 소박한 소식을 전하는 <경남아 사랑해>는 새로운 동네뉴스의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다.

‘알랑가 몰라’와 ‘동네방네 빅뉴스’코너는 뉴스를 다루는 기자들이 파고들 수 없었던 미개척지를 보란 듯이 훌륭한 블루오션으로 탈바꿈시킨 참신한 기획이다. ‘알랑가 몰라’ 코너는 19개 시군의 잡다하고(?) 미지근한 뉴스거리들을 PD의 감각으로 재밌고 핫한 소식으로 탈바꿈시키는 성취를 보여준다. ‘동네방네 빅뉴스’도 비슷한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다. 기자들의 시각에서는 전혀 뉴스거리가 될 것 같지 않은 아이템이 동네 주민들에게는 빅뉴스거리로 변신하는 재밌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른바 하이퍼로컬리즘(극지역주의)의 성공적인 실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더 주목해야할 부분은 하이퍼로컬리티가 소규모의 방송 영역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으리라는 대다수의 편견을 허무는 역발상의 신선함이다. 경남 전체 권역을 아우르는 초대형 방송권역에서도 이런 시도가 먹혀든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지역 방송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 MBC 경남 <경남아 사랑해> 코너 '마실 형제' ⓒMBC 경남

2년여 동안 500회를 넘는 방송을 이어온 <경남아 사랑해>는 주옥같은 코너들을 지역 시청자들에게 선사해왔다. ‘경남의 맛있수다’ ‘마실형제’ ‘지리산의 선물, 둘레길 22구간’ ‘쑥대밭’ ‘백년의 유산’ ‘집안꼴’ ‘오데가노’ 등 이름만으로도 지역의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코너들이다. 이처럼 지역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은 곳곳에서 감지되는데 그 가운데서 경남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운 내레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사투리 내레이션이 요즘 심심찮게 지역방송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무척 바람직한 경향이리라 믿고 있다. 제작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제작진의 생각은 어떨까. 김용근PD가 이야기하는 사투리 해설의 즐거움을 소개해본다.

“‘오데가노’ 코너의 해설은 5일장 장돌뱅이 형님들의 '말텃새' 맛을 살리려했습니다. 사투리 해설은 '업계용어'를 해독해서 충실히 반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페이소스 묻은 보이스캐릭터 개발에 앞으로도 공을 들일 계획입니다”

제목에서 밝혔듯이 <경남아 사랑해>는 잡종이다. 그것도 보통 잡종이 아니라 발칙하면서도 내공 단단한 잡종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경남아 사랑해>는 어느 순간 가장 천진난만한 토종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유일 경남 편파방송’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경남 토종 방송의 성공을 이끈 견인차였을 것이다. 잡종과 토종을 오가는 방송, 하이퍼로컬리티와 대형 방송권역이 공존하는 방송은 이렇게 그 거대한 서막을 열고 있다. 시작이 이렇게 거대한데 그 끝은 얼마나 더 창대할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 미래는 세월과 지역시청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김용근 PD가 이야기하는 <경남아 사랑해>가 지향하는 힘이 불끈 들어간 구호를 여러분과 공유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역방송 PD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할 주옥같은 구호이리라 믿는다.

“세계 중심은 집 앞 골목이다!”

“별 표정 없이 스치는 바람도 아이템이다!”

“여러분의 희로애락, 하늘아래 첫 방송은 <경남아 사랑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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