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해영도, 또 오해영도 결국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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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로멘틱 코미디의 여성상의 한계

tvN<또 오해영>이 인기다. 시청률 8%를 돌파한 데 이어 버즈량 지수도 앞선다. 드라마가 뜨겁게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연출, 대본, 연기자의 호흡 뿐 아니라 또 다른 흥행 포인트가 있다. 오해영(서현진 분)이 평범하지만 특별해서다. 오해영은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존감을 찾기 위해 애쓰고, 파혼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딛고, 누군가에게 다시금 마음을 내준다. 한 번에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숱한 오답을 찍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또 오해영>은 동명이인 ‘예쁜 오해영’과 ‘그냥 오해영’을 둘러싼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그냥 오해영’을 연기하는 배우 서현진은 ‘30대 싱글녀’에 최적화된 연기를 선보이면서 ‘신흥 로코퀸’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미디어에서는 ‘그냥 오해영’이 ‘현실 공감형 캐릭터’로 진화한 인물이라는 분석을 쏟아낼 정도로 ‘그냥 오해영’이 보여주는 캐릭터의 힘이 크다.

▲ tvN <또 오해영> ⓒtvN

기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남자로부터 보호를 받는 수동적인 인물 혹은 지고지순한 사랑만 갈구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다가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한 2000년대 로코물이 드라마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면서 여주인공도 변주됐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청담동 앨리스> 등에서 ‘캔디렐라’로 등장했다. 대부분의 로코물은 남녀주인공이 사랑의 결실을 맺으며 가부장적 질서에 통합되는 서사로 전개됐다.

물론 로코물 계보에서 변곡점을 만드는 여주인공도 있었다.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여성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압박감과 미혼이라면, 돈이나 사회적 지위를 지닌 ‘골드미스’로 거듭나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삼순이(MBC <내 이름은 김삼순>)는 평범한 독신 여성으로 등장했다. 삼순이는 ‘여성’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과감하게 부쉈다. 그는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성적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외모 지상주의’(평범한 육체성)와 ‘여성적인 행동거지’(거친 말투)에서 일탈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또 오해영>의 ‘그냥 오해영’도 또 다른 변곡점을 만든 인물이다. ‘그냥 오해영’은 학창시절 내내 동명이인 ‘예쁜 오해영’(전혜빈 분) 때문에 외모, 능력에서 늘 비교당하며 열등감에 시달렸다.(사실 ‘그냥 오해영’이라는 설정에 비해 ‘그냥 오해영’의 외모는 지극히 매력적이다.) ‘예쁜 오해영’이 재등장으로 ‘그냥 오해영’은 과거처럼 우물쭈물할까 싶었지만 그녀는 지난 세월만큼 성장했고, 강단도 생겼다.

예컨대 ‘그냥 오해영’은 더 이상 친구, 혹은 동료들의 비교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회사 상사가 술김에 ‘예쁜 오해영’과 ‘그냥 오해영’과 비슷한 스카프를 한 모습을 두고, ‘그냥 오해영’에게 스카프를 풀라고 명령조로 이야기할 때 ‘그냥 오해영’은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예쁜 오해영’이 스카프를 풀려고 하자, 단호하게 말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오해영은 더 이상 과거의 ‘그냥 오해영’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로코물 속 여주인공이 성장한 지점을 찾는 일은 흥미롭다. 하지만 로코물의 태생적 한계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남주인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주인공에 비해 늘 사회적 부와 지위를 누린 인물로 그려진다. 평범한 신분인 여주인공에 비하면, 남주인공 이건(<운명처럼 널 사랑해>), 김주원(<시크릿가든>)은 그룹 후계자이고, 차승조는 유통회사 최연소 회장(<청담동 앨리스>)이다. 그나마 현실적인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지성준은 패션잡지 부편집장이지만 동갑내기 김혜진은 잡지사 인턴으로 등장한다.

<또 오해영>에서 박도경(에릭 분)은 음향감독으로, 오해영은 식품회사의 대리로 둘 다 번듯한 직장인처럼 보이지만 곳곳에서 계급 차이는 재현된다.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을 좋아하는 자신을 타박하는 사람들에게 “(박도경은) 재벌도, 귀족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며 자존심을 세워보지만, “1급수 오해영은 1급수 남자를 만나고, 3급수인 나는 3급수 남자를 만났다. 나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그의 독백에서 계급이 갈린다.

▲ tvN <또 오해영> ⓒtvN

또한 <또 오해영> 속 여주인공들이 감내해야 할 난관이 많다. 두 오해영은 이전 로코물에 비해 자신의 욕망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의 주도권은 남주인공이 쥐고 있다. ‘예쁜 오해영’은 물불 가리지 않고 반대하는 시어머니의 반대를 감당하느라 박도경과의 결혼을 포기해야 했고, ‘그냥 오해영’은 “꼴 보기 싫다”는 말까지 들으며 파혼 당한 배경에 이미 좋아하게 된 박도경과 얽혀있다는 사실을 감내해야 한다.

로코물 계보에서 여주인공은 조금씩 진취적으로, 독립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면에서 종속적인 인물에 갇혀있다. 록산 게이는 책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일갈했다. “(공주와 왕자 스토리텔링의) 동화 속 이야기에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성들이다. 여성이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것. 그것이 희생의 본질인 걸까”라고. 이 부분에서만큼은 ‘그냥 오해영’도, ‘예쁜 오해영’도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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