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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라고요? 로맨스라고요? 아니, 혐오입니다

[위클리포커스] 툭하면 여성 손목 잡아끌기, 애교 요구…성범죄 보도에선 ‘가해자’ 말을 사실처럼 김세옥 기자l승인2016.06.02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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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연재 중인 <캐셔로>라는 웹툰이 있다. 수중에 지니고 있는 돈만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인공이 우연히 얻은 그 힘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설정인데, 2부 16화(3월 20일)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길에서 싸우는 남녀를 목격하는데, 여성이 “나중에 얘기하자”며 대화를 끝내려 하자 흥분한 남성은 손목을 잡아챈다. 이 장면을 본 주인공이 여성을 돕기 위해 움직이는데, 그 순간 여성은 자신의 팔목을 잡은 남성을 뿌리치면서 “함부로 덥석덥석 잡아대지 말랬지. 드라마에서 하니까 나도 해도 되나보다 싶어?”라고 일갈한다. 남성은 아차 하며 사과하고 여성을 폭력에서 구할 준비를 하던 주인공은 남성의 사과 모습을 보고 자리를 떠난다.

네 개의 컷으로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문화 속 로맨스의 주인공인 남성이 멋짐의 상징처럼 사랑(격정)을 이유로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모습의 문제를, 로맨스가 아님 폭력일 뿐임을 지적하고 풍자한 장면이다.(▷링크)

▲ 웹툰 <캐셔로> 2부 16화 ⓒ다음

‘유머’의 옷을 입은 비하와 혐오, 논란 일면 “친한 사이라”

지난해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벌어진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 운동에 이어 최근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부산 동래 여성 폭행 사건 등을 목격한 여성들에겐 여성은 왜, 어쩌다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여성들이 더욱 주목하기 시작한 게 미디어다. 드라마와 예능 등에서 ‘재미’ 혹은 ‘로맨스’의 장치로 자리 잡은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코드들, 그리고 그 코드들이 부지불식간 비하와 혐오를 대수롭지 않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비하와 혐오를 웃음으로 소화하는 모습은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흔하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속 코너 ‘남자끼리’의 경우 여성이 유아적인 말투로 남자친구에게 비싼 선물을 요구하고 억지를 쓰는 상황을 펼쳐놓는다. 그러면 다른 남성들이 이 남성의 ‘위기’를 모면하게 도와주고 여성을 골탕 먹이는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여성 코미디언으로 하여금 “김치녀가 될 거야”, “오빠, 나 명품백 사줘, 신상으로. 아님 신상 구두” 등의 대사를 뱉도록 해 여성혐오라는 지적을 받았던 <개그콘서트>(KBS)는 지난 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공개한 ‘2015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 보고서에서 대표적인 성차별 프로그램으로 꼽히기도 했다.

토크쇼와 리얼 버라이어티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을 눈요기의 대상으로 취급하며 성적 대상화 하는 모습들도 있다. KBS 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머슬퀸 프로젝트>는 카메라로 여성 출연자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클로즈업하고, 또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하는 퍼포먼스 등을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지난해 <오늘 뭐 먹지?>(O'live)의 진행자 성시경은 출연자인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수영의 체형에 대해 언급하고, 수영과는 다른 체형의 여성 스태프를 지적하며 “여자분 나오면 되게 싫어하는 분”이라고 발언했다. 여성비하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은 성시경과 제작진의 친분을 강조하며 “여성비하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방송에서 성시경의 발언을 촉매삼아 수영과 여성 스태프, 즉 여성과 여성의 갈등 구도를 장난처럼 연출한 건 제작진이다.

▲ 2013년 9월 4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당시 ‘카라’의 멤버였던 강지영이 진행자들로부터 애교를 요구받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MBC

토크쇼에 출연한 아이돌, 특히 걸그룹 멤버들이 섹시댄스와 애교 등을 요구받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황금어장-라디오스타>(MBC)에서 당시 걸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강지영이 진행자들의 거듭된 애교 요구에 눈물을 보였지만 많은 언론들은 “‘라스(라디오스타)’ MC들, 걸그룹 트라우마 생길라”, “카라, 농담에 울려면 ‘라스’엔 왜 나왔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라디오스타> 진행자들은 이후 ‘셀프디스’처럼 당시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걸그룹 멤버를 비롯한 여성 연예인들에게 애교와 섹시댄스 요구를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에선 멋진, 현실에선 무서운

현실에선 여성들이 위협을 느끼는 상황임에도 드라마에선 남자주인공의 ‘멋짐’을 부각하거나 로맨스의 장치로 활용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남성이 여성의 팔을 잡아채는 장면은 이미 클리셰처럼 자리잡았고, 강제 키스도 마찬가지다.

2013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상속자들>(SBS)에서 김탄(이민호)은 학교폭력의 두려움에 옥상에서 홀로 울고 있는 차은상(박신혜)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감추지 못하고 강제로 입을 맞춘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던 남녀 주인공의 첫 키스이자 본격 로맨스를 알리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지만, 현실에선 성추행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지적하는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사랑이었다”고 주장하며 상황을 호도하는 경우로 몰고 갈 수도 있다.

6년 전인 2010년 방송된 <시크릿가든>(SBS)에서 여주인공인 길라임(하지원)이 속한 액션스쿨 MT에 따라간 김주원(현빈)은 단 둘이 리조트에 남게 된 상황에서 함께 잠을 잘 것을 요구했다. 길라임은 거부하며 방문을 닫았지만 김주원은 속임수를 사용해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쓰러뜨려 눕히고, 계속 거부하는 길라임을 힘으로 제압했다. 여성의 명백한 거부 의사에도 이를 완력으로 제압하는 남성의 모습은 현실이라면 공포다. 실제로 이 방송이 나간 직후 일부 언론에선 해당 드라마가 성폭력을 부추긴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링크)

▲ 2010년 12월 25일 방송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SBS)의 장면 ⓒSBS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현실이라면 여성이 일상에서 공포를 느낄 폭력의 상황들을 로맨스로 포장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현재(6월 2일 기준) 3회까지 방송된 드라마 <운빨 로맨스>(MBC)에선 혼자 사는 여주인공 심보늬(황정음)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최건욱(이수혁)이 옆집으로 이사를 오고선 둘이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이웃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이웃으로서 친분을 쌓는 과정 속 최건욱은 현관문을 닫으려는 심보늬를 힘으로 막는다. 남자주인공인 제수호(류준열) 또한 막무가내로 심보늬의 집에 찾아오고 문을 닫으려는 걸 힘으로 막아선다.

TV칼럼니스트 안인용씨는 지난 5월 28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링크)에서 <운빨 로맨스> 등의 드라마에서 보이고 있는 이 같은 장면들의 문제를 짚으며 “여성 인물들이 드라마 속에서 마주하는 공포와 폭력의 현장을 로맨스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 현장에선 여성 캐릭터가 그것을 공포라고, 폭력이라고 말하고 거부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를 강간 등 성범죄의 피해자로 그려 극적 갈등의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는 종종 등장하지만, 폭력이라고 제대로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례로 높은 시청률 속에 최근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KBS)에서 빼어난 미모와 말솜씨로 병원의 간판스타가 된 강모연(송혜교)은 병원 이사장에게 호출돼 호텔방에서 성추행 상황에 놓였음에도 핸드백으로 때리고 넘어간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사장이 강모연에게 해외 봉사를 떠맡기지만 강모연은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리고 강모연은 해외 봉사 목적지에 도착해 이사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소리 한 번 지르고 사표를 내겠다고 선언한다.

직장 내 권력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성관계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여주인공에게 보복 인사를 했음에도 ‘강단 있는’ 성격으로 설정된 여주인공이 소리 한 번 지르고 사표까지 내주겠다고 하는 모습에 일부 누리꾼들은 “직장 내 성범죄는 심각한 문제임에도 여주인공이 지나치게 쿨한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링크)

서구의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의 일련의 장면들에 대해 ‘폭력’으로 인식하며 불편함을 토로하지만(▷링크) 국내에선 이 같은 문제제기와 불편함 토로가 여전히 ‘일부’에 그치는 모습인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규제 기관인 방심위에서조차 한 쪽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으로 데이트 강간 논란을 빚은 드라마에 대해 최소한의 토론도 없이 ‘문제없음’ 결론을 내고(▷링크), 여성을 눈요깃거리로 성적 대상화를 한 프로그램에 대해 제재를 한 방심위원이 “개인적으로 눈요기는 되더라”는 발언을 할 정도다.(▷링크)

성폭력 가능한 구조 짚지 않고 ‘그들’만 조심하라? 

뉴스 보도가 현실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대장내시경녀’(헤럴드경제)로, 살인사건의 피해 여성을 ‘가방녀’(SBS)로 묘사하는 등 언론에서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며 인터넷에서 여성을 부정적 측면에서 일반화하며 낙인찍는 용도 등으로 흔히 사용하는 ‘○○녀’ 표현을 고민 없이 수용하는 모습은 독자들의 항의와 문제제기에도 여전히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다. (▷링크)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며 객관적인 ‘원인’과 ‘사실’로 수용자(독자‧시청자)로 하여금 인식하게 만드는 상황 또한 반복된다. 최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가해자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말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는 다수였고 ‘매슬로우 4단계 요구설’까지 근거로 들며(연합뉴스) 인정욕구에 목마른 피의자의 심리를 애써 설명하는 기사도 있었다.

언론의 일련의 모습에 대해 대중문화웹진 <아이즈(ize)>의 최지은 선임기자는 한국 언론의 젠더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최 기자는 지난 5월 26일 여성단체들이 주최한 집담회에서 성폭력 사건 등에서조차 가해자인 남성이 아닌 피해자인 여성을 부각하는 ‘○○녀’ 표현과 함께 범행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제목을 뽑는 언론의 실태를 지적하며 “여성을 한 사람의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조차 기사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포르노로 소비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기자는 “이런 풍토 속에서 자극적이고 의도가 빤한 제목과 기사들로 여성혐오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도 마주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 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여성이 살해당함으로써 수많은 여성들이 공포와 분노에 떨고 있는 사건을 놓고 ’남성들이 위축된다‘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말조심‘이라는 표현으로 남성들을 자극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 지난 5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강남 여성 살해 사건'의 20대 여성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뉴스1

언론은 여성 등 소수자와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발생할 때 가해자를 특수한 개인으로 한정하는 모습도 반복한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서도 언론은 여성을 기다려 살해한 가해자의 문제보단 “조현병”에 집중했고, 김길태, 오원춘 사건 등에서도 “툭하면 거짓말 하던 외톨이”(조선일보, 2010년 3월 12일), “오원춘, 시신 훼손 중에도 음란물 봤다”(조선일보, 2012년 4월 27일) 등 범죄의 가해자들을 가난한 소외계층, 음란물 중독 등의 ‘특수한’ 상황의 존재로 묘사했다.

하지만 언론의 이 같은 재현 방식은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종별적 존재로 정형화해 일반인들과 분리함으로써 성폭력의 근본 원인인 젠더 불평등에 따른 권력 관계, 남성중심의 성문화 등에 대한 논의를 정치적으로 차단하고, 병리적인 일탈자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이로 인해 다양한 성폭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성폭력의 실제를 비가시화 할 우려가 있다.(김은경‧이나영, ‘성폭력, 누구에 대한 어떤 공포인가: 언론의 성폭력 재현과 젠더질서의 재생산(2015.6))

성폭력 등에 대한 보도에 있어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언론은 이미 알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만든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링크)은 언론으로 하여금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 일부 개인의 정신적 병리 현상이나 절제할 수 없는 성 욕구에 있는 게 아니라, 잘못된 성 인식과 양성불평등문화 등 사회문화적 구조에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며, 가해자의 일방 주장이 확정된 진실인 것처럼 오인하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설사 그게 수사기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라 하더라도 공개의 적절성을 판단해 신중한 보도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알지만 시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부터 언론 내부의 논의가 필요하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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