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하나뿐인 지구-가습기 살균제 대참사> / 6월 10일 오후 8시 50분
1994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놀라운 것이 만들어졌다. 2006년과 2008년,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학계에 보고된다. 2011년이 되어서야 밝혀진 병의 원인. 그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화학물질이었다. 피해자 1848명, 사망자 266명에 달하는 “참혹하고 절망적인 인재(人災)”. 어머니는 아이가 죽던 날을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대로 숨 쉴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가족들은 “내가 죽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사상 최악의 환경 재앙,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 도대체 누가, 이들을 아프게 만든 것인가.
딸을 앗아가고 아내를 아프게 한 살인 물질
대전에 사는 장동만 씨(51) · 이혜영 씨(47) 부부는 딸이 죽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2010년 봄, 한 달 넘게 감기 증세를 보이던 예영이를 데리고 부부는 응급실을 찾았다. 숨을 잘 쉬지 못하던 예영이. 아이는 병원에 간 지 하루 만에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났다. 병명은 ‘원인미상 폐렴’.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1년 후 같은 증상으로 쓰러진 엄마 혜영 씨. 죽음의 문턱 앞에서 혜영 씨는 기적적으로 폐 이식을 받고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밝혀졌다. 소중한 딸을 위해 매일같이 넣어 줬던 ‘가습기 살균제’였다.
살아남았지만 제대로 숨 쉴 수 없는 사람들
열네 살 성준이에게 책가방보다 중요한 건 산소통이다. 한 살 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고 중환자실에서 11개월을 보낸 성준이. 다행히 목숨은 살렸지만 목에는 산소 공급 호스를 달아야만 했다. 지금은 목에 연결되어 있던 호스를 코로 옮겼지만 여전히 산소통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 2002년부터 투병해 온 윤정애 씨(45)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10m만 걸어도 숨이 차고 외출 시 휴대용 산소통은 필수. 살아있어도 숨 쉴 수 없는 고통. 그냥 ‘숨 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은 더 이상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끝까지 싸워야만 하는 이유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산모와 아이들을 사망케 한 원인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안성우 씨(40)는 생각했다. “내가 죽였구나.”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태아를 잃은 성우 씨. 엄마가 보고 싶은 아들 재상이(9)는 종종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성우 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같이 찾아보자’ 뿐. 아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설명해줄 수 없었던 아버지는 결국 홀로 싸우는 길을 택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성우 씨.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자신이 살인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그래서 아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오늘도 아버지는 외롭게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