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포스트잇은 테러도 범죄도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동안 겪어온 비참함과 힘듦이 한 장 한 장 모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라 하지 마세요.”(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 중)
지난 5월 17일 새벽, 강남 한 복판이라 할 수 있는 서초동 상가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무슨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고 살해당했다. 이후 남녀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시민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죽은 이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1004개의 포스트잇. 1004개의 메시지는 단지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어두운 단면에 대한 메시지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은 포스트잇 철거 직전인 지난 5월 22일 밤 현장에 찾아가 1004개의 포스트잇을 일일이 촬영했고, 이후 메시지들을 정리해 기사화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모아 책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획・채록/나무연필)으로 펴냈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추모’였다. ‘고인’(273번)의 ‘명복’(281번)을 ‘빕니다’(288번). 이를 포함해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메시지가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말이 다음으로 많은 메시지였는데, 해당 메시지 속에는 부채 의식과 함께 여성이라면, 약자라면 누구라도 어디서든 언제든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뜻과 함께 이 사회의 부조리함과 시스템 부재 등 여러 말이 함축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경찰에서는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로 사건을 정리했지만 시민들은 달랐다. ‘여성 혐오’(116번・‘여혐’ 포함)라는 표현이 직접 불거져 나왔다.
“이는 절대 ‘묻지마’ 살인 사건이 아니라 여성 혐오 살인 사건입니다.”
“명백한 여성 혐오로 살인이 일어났다. 단지 만만해 보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혐오를 멈춰주세요. 공감할 수 없다면 침묵이라도 해주세요.”
“당신의 죽음이 결코 또 다른 ‘한 여자’의 죽음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싸우겠다.”
‘여성 혐오’가 아니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다. 한 여성의 죽음에 추모나 애도가 아닌 메시지를 던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한 여성’의 희생으로 깨닫게 된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불안’과 ‘부재’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1004개의 시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