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독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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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독서 프로젝트”
[인터뷰] KBS ‘TV책’ 조정훈 PD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6.06.13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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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바뀌었다. 국문과 교수나 문학평론가가 스튜디오에 나와서 이미 읽고 온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풍경은 사라지고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이웃의 시민들이 매주 한 권의 책을 읽어나간다. 시민들이 책을 읽는 곳은 각자의 삶터로 식당, 1인 미용실, 만화작업실, 회사 휴게실, 지하철 등 다양하다.

이렇듯 “그들의 책 읽기”에서 “나의 책 읽기”로의 변화는 개편된 <TV책>(KBS 1TV, 매주 화요일 밤 11시 40분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김창완’이라는 편안한 이미지의, 그러나 순간순간 삶에 대한 통찰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진행자가 매주 독립 서점을 찾아다니면서, 서점 주인들과 독서가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정겹다. 때때로 작가가 <TV책>을 통해 독자와 만나기도 한다. 최근 5월 10일과 17일 방송에서는 맨부커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그들이 아닌, 나의 책 읽기를 생각하는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이 어떤 사람일지. 기존의 책 프로그램과는 다른 새로운 포맷으로 <TV책>을 제작하고 있는 조정훈 PD를 지난 5월 3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 3월 개편을 통해 어떤 지점에 변화를 주고자 했나요? 

▲ KBS 의 조정훈 PD ⓒKBS

“뉴스를 보면 점점 독서량이 줄어든다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가득하잖아요. 하지만 책을 안 읽는다고 비판하는 시간에 ‘단 한 줄이라도 함께 읽어나가자’는 게 개편된 <TV책>의 핵심이에요. 예전에는 비평가들이 비평하는 방식이었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읽지 않은 책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물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전문가는 나와 어떻게 다르게 읽었을까’ 궁금해 하며 프로그램을 보겠지만, 사실 많은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 책을 읽지 않은 시청자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말들이 많죠.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것도 권력이라고 봐요. 제가 너무 삐딱한지 모르겠지만(웃음) 사실 이런 걱정은 ‘스스로 책으로 흥했던 집단들’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사실, 지금은 책 외에도 볼 매체들이 넘쳐나잖아요. 그래서 시대적으로 책이, 독서가 위기의 상황에 놓인 건 맞는 말입니다.

그럼 책의 시대는 끝난 걸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사실 책은 다양한 매체 중에서도 다양성을 소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체죠.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여전히 책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TV책>에서는 독서가 줄어든 시대를 우려하며 그들끼리 책에 대해 말하도록 하기 보단, 책을 가까이하던 때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어요.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책을 읽거나 서점에 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시청자의 몫이죠.”

- 조정훈 PD는 책을 많이 읽나요?

“아뇨, 저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에요. 학창시절엔 많이 읽었지만…(웃음) 그래서 더 시청자들에게도 ‘우리에게 책은 무엇이었나?’, ‘책을 읽던 나는 누구였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책을 안 읽어도 되는, 클립을 보면 책을 읽은 것 같아서 좋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TV책>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어요. 핵심은 독자가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요약 프로그램의 한계는 명확하지 않을까요?”

- 그래선지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tvN <비밀 독서단>이 교양의 예능화라면, <TV책>은 교양의 다큐화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TV책>은 책 읽는 자들의 다큐멘터리인거죠. 독서의 리얼리티 그 자체. 실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독서가로 출연하죠. 섭외도 자유롭게 하려고 해요. 그들이 책을 읽는 모습, 목소리, 책 읽는 공간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갖고 와서 책 그 자체가 아닌 ‘책의 2.0버전’으로 조합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어요.”

▲ 서울 상수동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세 명의 독서가가 책을 읽고 있다.(지난 4월 26일 방송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 - 400년 동안의 욕망'편) ⓒKBS

매회 5명 정도 등장하는 <TV책> ‘금주의 독서가’들은 다양하다. 라면가게를 운영하는 최병석씨, 증권사에 근무하는 김영한씨, 5년 전 대기업에서 정년퇴직 김경철씨, 연남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상진·고성애 부부, 도유진 간호사, 독서모임의 리더인 권인걸씨, 독서광이자 반찬가게 사장인 김순자씨, 식당을 운영하는 함순복씨, 고등학교 2학년인 최성운군, 최선미 교사, 김선웅 시사만화가, 이미경 헤어디자이너, 회계사 전만준씨 등 수많은 독서가들이 매회 등장한다.

또한 독서가가 또 다른 독서가를 자연스레 섭외하는 장면이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제작진이 직접 라면가게로 찾아가 젊은 사장을 섭외하면, 그가 자신의 이웃인 카페주인과 셰프에게 찾아가서 책을 권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책 권하기라니.

- 매주 다른 독립서점을 찾아가는 것도 그 공간과 문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주려 하는 건가요?

“최근 트렌드인 독립서점 문화를 응원하는 거라 볼 수 있죠. 독립서점에선 책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면서 동네 주민들과 교류를 해요. 이런 문화가 자발적으로 생기고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개인적으로도 서점 주인의 어떤 선구안이 돋보이는 책 편집숍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문화에 대한 취향도 높일 수 있는. 어떻게든 살아남길 바라고 있어요. 이런 서점이 각자의 삶 속에 들어온다면, 책을 읽고 접하는 빈도도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 같아요.”

- 진행을 김창완씨가 맡고 있어요. 보면 볼수록 저자, 서점 주인, 독서가, 시청자를 아우르는 진행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김창완 선생님과는 2013년 KBS <문화 책갈피> 연출 당시 알게 됐어요. 김창완 선생님은 무심한 듯 책의 핵심을 정확하게 찔러요. 깜짝깜짝 놀라 다시 돌아볼 때가 많죠. 특히 통찰력을 지닌 말도 부드럽게 말하다 보니 (시청자들에게도)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혹시 <TV책>에서 책을 읽는 모습과 책 내용 그 자체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출 상의 고민은 없나요?

“같은 책 구절을 다른 독서가들이 동시에 읽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한 권의 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우리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책에 반응하는 모습이 변주되는 걸 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책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하기도 해요. 어떻게 잘 드러낼지는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책을 읽는다는 건, 텔레비전이나 다른 매체들은 대신할 수 없는 행위죠. 독서란 근본적으로는 자기 삶을 찾기 위한 행위인데, 우리 프로그램은 “책을 읽자!”라고 불쑥 제안하는 거잖아요. 이런 제스처를 반복하다 보면 (책을 권하는 방식에 있어) 요령이 생기고, 그러면 시청자도 더 편하게 책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지난 5월 24일 방송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著' 편에서 대륙서점에 모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있다. ⓒKBS

현재까지 <TV책>에서는 ‘극락컴퍼니’(하라 고이치, 북로드, 2011), ‘공부중독’(엄기호·하지현, 2015),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부키, 2015),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기호, 2016, 마음산책), ‘가짜 팔로 하는 포옹’(김중혁, 문학동네, 2015), ‘느리게 걷는 즐거움’(다비드 르 브르통, 북라이프, 2014), ‘엄마, 사라지지 마’(한설희, 북노마드, 2015),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난다, 2013), ‘침묵의 기술’(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arte, 2016) 등을 함께 읽었다. 

-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할 때의 고민이 많을 듯해요.

“일단 미디어셀러를 배출하지 않으면 좋은 독서 프로그램이 아니다, 반대로 많이 팔리면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런 인식들이 있어요. 또 책을 선정할 때 마케팅, 유통의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게 사실이고요. 이런 부분들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항상 고민해요. 대형서점 매대에 한 번도 올라 있지 않았던 책을 (우리 방송을 통해) 시청자와 독자가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이기호의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다>도 올 상반기 KBS <TV, 책을 보다>(<TV책> 이전의 프로그램명)에서 소개한 후 1만 부 이상 팔렸던데요. 미디어셀러를 많이 배출하는 <비밀 독서단>과 같은 경쟁 책 프로그램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사실 이때까지 방송이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채널도 많아졌으니까, 우리도 역시 선택돼야 하는 것 같아요. 많이 보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게 일종의 형용 모순이 아닐까요. 이제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확보하면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 프로그램 제작 못지않게 시청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양한 SNS 계정으로 활발하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시청자들에게 <TV책>이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요?

“‘쉬운’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프로그램이면 좋겠어요. 시청자의 지지 속에서!(웃음) 그러려면 시청자와 호흡을 잘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TV책> 시청자들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편하게 <TV책>을 보면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특히 시청자들로부터 ‘금주의 독서가’로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은데,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것도 정말 감사해요.

더 나아가서는 서로에게 책을 권하는 과정을 프로그램화하면서 책 읽기를 작은 무브먼트(운동)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해요. 작금의 세상이 과연 매일 책을 한 줄씩,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는 삶을 제공하고 있나요? 우리의 삶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재편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초창기의 리얼리티를 살려서 정말 ‘금주의 독서가’들이 실제로 책을 읽는/읽을 수 있는 삶이 가능해져야 하죠!(웃음)

아마 곧, 상수동 근처에서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할 것 같아요. 점점 더 이런 모임이 많아진다면 그 골목 전체를 독서하는 골목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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