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의 노동 차별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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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MBC 연봉·업무직 노동자 차별의 부당함을 인정한 판결을 보며

MBC(사장 안광한) 업무직(상시계약직) 및 연봉직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 차별의 부당함을 인정한 판결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판결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 않은 한국 사회 노동의 문제에 더해, 언론으로서 이런 문제들-고용 형태에 근거한 차별을 당연시하며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들-을 지적하면서도 정작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은 방송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MBC는 과연 법원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언론으로서 보인 사회 의식과 지적들을 스스로 행하는 모범을 보여주면서 이 같은 아이러니를 해결할 수 있을까.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언론노조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부장판사 김도현)는 지난 10일 MBC 업무직・연봉직 노동자 97명이 MBC를 상대로 낸 주택・가족수당과 식대 등 임금(기본수당) 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업무직 보수규정 부분과 근로계약 부분이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처우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는 것이다.

업무직・연봉직 노동자들은 광고영업부, 드라마운영부, 미술부, 자산관리부, 제작기술부, 시사제작국 시사제작운영팀 등 각 분야에서 ‘일반직’이라 불리는 근로자들과 보수규정만 달리 적용받고 있을 뿐, 동일한 취업규칙, 직제규정, 인사규정을 적용받고 있다. 업무의 구체적 내용 또한 업무직・연봉직과 일반직 노동자 모두 동일한 상황이다. 또 업무의 양과 질, 난이도, MBC에 대한 기여도 역시 낮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MBC는 그간 업무직・연봉직과 일반직을 나눠 대우했다.

사실 이 같은 일은 MBC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방송사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뿐 아니라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상시계약직, 계약직, 하청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가 혼재돼 일하고 있다.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이름표를 달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은 ‘열정’으로 포장된 ‘노동’을 방송사에 지불하고 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2015년 4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 행사장을 둘러보다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직종합대책을 풍자하는 참가자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1

방송사라는 장소를 바꾸면 ‘비정규’라는 이름을 단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대우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 수리 중 사망한 노동자 역시 정규직과 정규직 아닌 노동자로 나뉘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노동시스템 속에서 나온 피해자다. 부당한 노동환경을 ‘열정’과 ‘관행’으로 포장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스템이 만든 희생자다.

MBC 업무직・연봉직 근로자들에 대한 판결은 정규직 아닌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부당함이 더 이상 관행이나 열정으로 포장될 수 없음을 지적한 판결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노동 사각지대, 우리 사회 불편・부당을 짚어내고 지적하는 방송사의 사각지대를 비췄다는 데 있다.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방송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순, 그리고 해당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과연 MBC를 비롯한 많은 방송사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리고 그 판단은 방송사의 모순을 해결하는 시작이 될까, 아니면 또 한 번 해묵은 과제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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