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위 강제 배정 추혜선과 야권의 언론개혁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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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상임위 정수 조정 요구들, 발뺌하는 제1야당

20대 국회 개원 이튿날인 지난 14일 국회 로텐더홀 빨간 카펫 위에 농성장이 차려졌다. 언론운동 20년 경력의, 언론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의 농성장이다. 추 의원은 국회 개원 첫 날이었던 지난 13일 방송‧언론 관련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가 아닌 외교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로 배정됐는데, 이대로라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국회의장에게 미방위로의 재배정을 요청하기 위해 농성을 시작했다.

추 의원의 농성을 놓고 일각에선 유난스럽다는 시선도 보낸다. 모든 국회의원이 원하는 상임위에 배정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인데 미방위 배정을 위해 농성까지 하는 건 이기주의 아니냐는 시선이다. 맞다. 모든 국회의원이 원하는 상임위로 갈 순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극단의 가정이지만 주택과 도로 등 사회 전반의 SOC(사회간접자본)를 담당하는, 그래서 지역구 예산을 끌어오기 쉬운 국토교통위원회(이하 국토위) 등의 ‘알짜’ 상임위들만 국회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국회의원이 원하는 상임위로 갈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미방위로의 재배정을 요구하면서 농성을 벌이는 추 의원을 유난스럽다고 말하긴 어렵다. 왜 그럴까.

▲ 추혜선 정의당 의원(왼쪽 두번째)이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비례대표 상임위 재배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열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인 추 의원은 미디어 분야 전문가로 정의당에 영입 돼 국회 미방위원에 지원했으나 상임위 배분 결과 외통위로 배정받았다. ⓒ뉴스1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선 국회가 어떻게 상임위 정수 조정을 하는지부터 얘기해야 한다. 국회가 개원하면 20인 이상의 소속 의원이 있는 교섭단체들끼리 협상을 통해 각 상임위를 여야 몇 명으로 구성할지 등 정수 조정에 나선다. 이때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의 경우 이렇게 조정한 의원 정수에 따라 당 내부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이 저마다의 전문성과 희망에 따라 써낸 상임위를 고려해 내부 조율을 거쳐 원내대표가 적임자를 각각 배치한다. 하지만 무소속과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소수당의 경우 국회의장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추 의원이 1순위로 배정을 희망한 미방위의 정수는 24인으로 비교섭단체 몫은 1인이다. 정치적으로는 중요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지만 방송‧언론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탓에 여야의 이해 대립이 크고 그만큼 갈등도 많은 미방위는 사실 인기 상임위가 아니다. 하지만 언론운동가 출신의, 언론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추 의원에겐 미방위 배정이 당연히 중요했고, 다행히 비교섭단체에서 추 의원 외엔 미방위를 1순위로 희망한 이도 없었다. 그런데 정세균 국회의장은 추 의원이 아닌 현대차 울산공장 노동자 출신의 윤종오 무소속 의원을 미방위로 배정했다.

이런 배경엔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구성이 있다. 정수 16인의 환노위에서 비교섭단체 몫은 1인이다. 이 한 자리를 놓고 정의당의 이정미 의원과 현재 미방위를 배정받은 윤종오 의원이 경합을 했는데, 결국 이정미 의원이 환노위를 배정받고 윤종오 의원은 2지망이었던 미방위로 결정이 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다 보니 추 의원은 희망했던 미방위가 아닌 외통위로 강제 발령이 나게 됐다.

이 상황을 놓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환노위에 지망한 의원이 16인밖에 없는데, 이런 비인기 상임위에 비교섭단체 의원 한 명이 더 지원한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거대 여야 정당들이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상임위 위원 정수를 정하고 배정을 하다 보니, 소수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비교섭단체 몫의 몇 안 되는 의석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결과 전문성과 소신에 따라 상임위를 지망했음에도 엉뚱한 곳에 배정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추혜선 의원처럼 말이다.

사실 교섭단체 중심의 상임위 위원 정수 조정과 배정은 새롭게 국회를 구성할 때마다 제기되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거대 정당들의 의견에 따라 상임위 위원 정수를 조정하고 배정하다 보니 소수당과 무소속 의원들은 남는 자리에 본인의 의사나 전문성과 무관하게 배정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상임위원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운영해야 할 상임위가 비전문가들로, 지역구에서의 유불리 등을 따져 채워지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런 노력 없이는 국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비례대표 취지도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법 개정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때문에 현재 필요한 건 상임위 정수 조정이다. 전례도 있다. 지난 19대 국회 후반기 심상정 정의당 당시 원내대표는 환노위를 희망했지만 여야 교섭단체들의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소수정당은 환노위 배정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17대 국회 이후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환노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여야 교섭단체들은 환노위 정수를 재조정했다. 그 결과 심상정 의원의 환노위 배정이 가능했다.

그리고 20대 국회의 교섭단체 중 하나인 국민의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추 의원의 농성장을 방문해 “이것(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현재의 상임위 배정)은 명백하게 잘못된 일로, 이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추 의원이 농성에 들어가고 하루 반 이상 이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작금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만 표시하며 “상임위 정수 조정은 본회의에서 재의결 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입장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링크) 더불어민주당의 이 같은 태도와 입장은 20대 국회 개원 이전부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해직언론인 문제 해결 등 방송정상화를 위해 다른 야당들과 적극 공조하겠다고 강조했던 모습을 떠올릴 때 여러 의문을 낳을 수밖에 없다.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미방위원장을 새누리당에 ‘선뜻’ 내줬던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게, 본질을 확인할 때 봐야 하는 건 ‘말’이 아닌 ’행동’이라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어떤 선택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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