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은 당신을 위한 보도자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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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은 당신을 위한 보도자료가 아닙니다
[편집국에서] 출처 없는 재가공, 기자로서 떳떳합니까
  • PD저널
  • 승인 2016.06.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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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질문할 수 있는” 권한 아닐까요. 당연히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질문을 기자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 질문을 해도 (보통의 경우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답을 할지 여부는 질문을 받은 이의 선택입니다. 때때로 왜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고 화를 버럭 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화를 내도, 대체 ‘네가’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따지진 않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예외는 말 그대로 예외죠.) 기자니까, 질문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D저널>의 기자들도, 기자이기 때문에 질문을 합니다. 궁금한(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상황이 보이면 질문을 합니다. 지난 10일 이혜승 기자가 작성한 (▷링크)‘기자수첩-14년 DJ 최양락을 대하는 MBC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라디오에 관심이 많은 이혜승 기자는 지난 5월 언제부턴가 줄어들기 시작해 이제 지상파 방송 3사 라디오 중 단 한 개의 시사풍자 프로그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기사(▷링크 ‘이명박근혜’ 8년, ‘시사풍자 라디오’가 사라졌다)를 작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그맨 최양락씨가 무려 14년 동안 DJ를 맡았던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MBC)가 5월 개편에서 폐지됐고, 그 과정에서 최양락씨가 청취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청취자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가 아무리 폐지를 앞두고 있었다고 해도 최양락씨가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폐지 2주 전 DJ석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이죠. 답을 듣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PD저널>이니, 그동안 취재 과정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취재원들이 귀띔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크로스 체크를 통해 확인한 결과 MBC 측에선 통상의 폐지 절차를 밟았으며, 또 적정한 시간을 두고 DJ에게 하차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양락씨에겐 일방적인 하차 통보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이혜승 기자는 ‘왜’ 최양락씨는 이를 일방적인 하차 통보로 들었던 걸까, 그 이유를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퇴짜를 맞고, 그런 과정을 거쳐 프로그램 폐지의 이유였던 ‘청취율 하락’이 어떤 맥락 속에서 발생한 결과인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의 취재를 거쳐, 시사풍자 라디오의 핵심인 ‘풍자’를 거세한 작금의 방송 환경과 그로 인한 청취율 하락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프로그램 폐지와 최양락씨의 하차가 최선인지 묻는 기자수첩을 작성 했습니다.

▲ 6월 10일 ‘14년 DJ 최양락을 대하는 MBC의 자세’ ⓒPD저널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최양락씨와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던 청취자들은 이혜승 기자의 기자수첩으로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폐지와 최양락 DJ의 하차 배경을 알게 됐다는 피드백을, 그리고 시사풍자 라디오가 사라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혜승 기자의 기자수첩을 <PD저널>에서 게재하고 하루 뒤, 일부 매체에서 최양락씨의 하차 배경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선 최양락씨가 아무런 말도 없이 마이크를 내려놓은 사실이 “알려졌다”며, “방송계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려 이혜승 기자가 오랜 시간 취재한 결과물을 재가공해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추가 취재가 있긴 했습니다. 최양락씨 측근 등 익명의 관계자 멘트 둘을 더해 최양락씨가 DJ 하차 건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하지만 <PD저널> 보도 이전 이 건에 대한 보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방송계에서 “알려진”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PD저널>은 ‘방송계’가 아닌 하나의 ‘매체’이며, <PD저널>에서 ‘기자수첩’을 통해 전달한 사실과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저 “알려진” 게 아니라, “취재”의 결과물입니다. <PD저널>에서 타 매체의 기사를 인용할 때 “신문업계에 따르면”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기본’을, 많은 언론들이 지키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체 그게 무슨 자존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매체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갈음하려는 모습을 보이거나, 아예 그조차도 하지 않는 모습도 종종 목격합니다. 인용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는 게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보다 창피한 일은 아닐 텐데 말이죠.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이혜승 기자의 메일을,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그저 ‘읽고’ 끝냈습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열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동종업계이기 때문에 짐작은 가능한 이유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해명 혹은 사과의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열흘은 충분한 시간이고, “왜” 그랬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답이겠죠.

<PD저널>이 지금 이런 문제제기를 해도 ‘관행’이란 이름으로 변명하고 있는 ‘무례’는 앞으로도 반복될 겁니다. 대단한 특종도, 단독도 아닌데 뭐 어때,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단한 특종이나 단독이 아니더라도 한 언론이 ‘질문’하며 ‘취재’한 결과인 ‘기사’를 마음대로 가져가 약간의 손질을 더해 자신이 ‘질문’한 결과인 양 내놓는 게 과연 옳은 행위일까요.

다른 매체의, 특히 <PD저널>과 같은 작은 규모의, 전문지들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내놓은 결과들을 당신들을 위한 ‘보도자료’로 마음편히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덧. 사실 이런 일은 <PD저널>에서 처음 겪는 게 아닙니다. 지난 2015년 11월에 <PD저널> 페이스북 페이지에 ‘경고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경고문을 이번엔 <PD저널>에 다시 한 번 게재합니다.

안녕하세요. <PD저널> 편집국입니다. 그동안 <PD저널>에서 취재하고 쓴 기사들을 좀 더 많은 누리꾼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 이용했던 SNS에서 오늘은 조금 다른 얘기를 할까 합니다.

비단 <PD저널>의 일만은 아닐 겁니다. 다른 매체 비평지와 규모가 작은 전문지들에 있어 그리 드문 경험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험일까요? 때때로 ‘도둑들’을 만나는 경험입니다. 어떤 도둑이냐고요? 네.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아마 <PD저널>과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기자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 한 번 보인 일이 없는 매체의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나온 발언들을 직접 인용 표시(“ ”)까지 사용하며 기사화하는 일들이 때때로 발생하고 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요.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들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위를 바로 ‘도둑질’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경고인 만큼 지금 당장은 하나하나의 케이스를 거론하진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 정도는 사례를 들어야겠죠.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를 엽니다. 그리고 격주 목요일 오후 3시께엔 전체회의를 열죠. 방심위 회의, 특히 방송소위를 취재하는 매체는 많아도 10개 이하입니다. 사실 10개 정도의 매체가 취재하는 건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예외 상황이고요. 통상 1~3개 정도로 <PD저널>과 <미디어오늘>, <미디어스>가 바로 그 매체들입니다. 때때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그리고 방송심의 대상이 된 방송사의 기자들이 취재를 오죠. 아, 최근 들어 ‘우파’를 자처하는 매체의 기자도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치‧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되는 사안들과 관련 있는 방송에 대한 심의 결과를 전하는-회의 과정에서 나온 말들을 직접 인용을 하며 전하는-매체는 훨씬 더 많습니다. 일간신문(온라인판 포함)부터 연예매체까지 예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요. 지난 3월 25일 여고생 간의 키스 장면을 방송한 JTBC <선암여고탐정단>에 대해 첫 심의가 진행된 이후 거의 모든 매체들에서 심의와 관련한 기사가 쏟아졌지만, 정작 이날 방송소위를 취재한 건 4개의 매체뿐이었습니다.

현재 방심위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이날 방송소위 회의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날 방청인은 총 10인이었고, 이 중 매체는 <PD저널>과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MBC 등 총 네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포털을 검색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심의 내용을 얼마나 많은 매체들에서 보도를 했는지, 그리고 인용 표시 하나 없는지를 말이죠.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이라는 그 말을 넣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물론 인용 표시를 하고 ctrl c+v를 하는 모습도 정당하진 않지만요.)

이런 일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현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PD저널>의 경우 올해 초 온라인 개편 이후 ‘심의 On Air’ 코너를 통해 심의 과정을 100%는 아니지만 거의 그대로 중계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의 안건으로 1시간 이상 심의하는 경우도 있기에 반복되는 질문과 답변 등은 제외할 때도 있습니다.) 심의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현실 속에서 심의가 어떤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판단을 돕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심의 On Air’로 심의 현장을 ‘중계’하기 시작한 이후 어떤 매체들은 <PD저널>의 해당 코너를 결과적으로 취재에 게으른 자신들을 위한 ‘보도자료’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이더군요. 인용표시? 당연히 대부분은 없습니다. 저마다 이유는 있겠죠. 하지만 이런 행위는 ‘도둑질’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심의를 대표 사례로 언급했지만, 사실 전문지들에서 좀 더 고민한 결과물인 ‘기획’ 기사들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 ‘자신의’ 아이디어인 양 기사화하는 기자들도 종종 마주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작은 매체의, 전문지의 기사들이 누군가를 위한 ‘아이디어 웹하드’는 아니라는 사실을 제발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소송으로, 중재위로 가느냐의 문제를 떠나 그건 바로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우리들의 양심, 그리고 ‘직업윤리’의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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