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럴 거면 ‘독자권익위원회’ 그냥 폐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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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양심불량’ 정정보도 기사, 언제까지 계속할 텐가

“사회적으로 관심 컸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치명적 오보를 냈다 … 충격적 사건에서 속보를 위해 오보하는 건 이해가 된다. 중요한 것은 정정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 기사에서 오보를 인정하고도 정정 기사는 내지 않았다. 며칠 후(6월 3일)에 정정 기사가 실렸는데 ‘유족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라고 마무리했다 … 이번 ‘바로잡습니다’는 신속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신문 1면에 냈어야 한다.”

<조선일보> 6월17일 29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다. “정정 보도는 신속히, 명확하게, 눈에 잘 띄게 내야”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독자권익위) 제8기 첫 정례회의 내용을 지상중계 하고 있다. 때문에 기사라기보다는 ‘회의록’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정정기사 곧바로 내보내지 않은 ‘조선일보’ 질타한 독자권익위원회

회의록을 지면에 이렇게 큼지막하게 지면을 통해 공개하는 이유가 뭘까. <조선일보> 보도 가운데 문제가 있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기사들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듣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일종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이런 제도가 없는 언론사가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 6월 17일 <조선일보> 29면

이날 <조선일보>에 실린 ‘독자권익위원회 회의록’을 주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5월31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수리공 통화’ 왜 숨겼나” 기사가 오보임을 지적하면서 곧바로 정정기사를 내보내지 않은 점을 질타했기 때문이다. ‘독자권익위원회’는 또 뒤늦게 지면을 통해 내보낸 정정기사에 대해서도 “왜 유족께만 사과하나. 독자와 국민 모두에게 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마디로 ‘독자권익위원회’는 △<조선일보>가 오보를 낸 다음날 사실상 오보를 인정하고도 정정기사를 내지 않은 점 △ 정정기사가 신속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았다는 점 △신문 1면에 내야 할 ‘정정기사’를 사회면에 작게 처리한 점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독자권익위원회’의 이 같은 지적은 <조선일보> 입장에서 뼈아플 수밖에 없다.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조선일보> 기사는 기사 자체에 상당히 문제가 많았으며 정정기사를 내기까지의 과정은 문제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계 안팎에서도 ‘구의역 스크린 도어 오보’와 관련해 <조선일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을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지면을 통해 사실상 대부분 인정하고 수용한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독자권익위원회 지적은 지적일 뿐? 조선일보 마음대로 하겠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신들의 치부일 수도 있는 오보를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고 사과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독자들에 대한 ‘다짐’ 아닐까?

그런데 <조선일보>에게 ‘독자권익위원회’는 그냥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 용일 뿐 내부 개선을 위한 장치는 아닌 것 같다. ‘독자권익위원회’의 매서운 질타가 실린 지 불과 며칠 뒤 ‘유사한 오보 사례’가 발생했지만 <조선일보>가 보인 행태는 ‘과거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6월22일자 12면 “‘난방비 갈등’ 김부선·아파트 소장, CCTV 보니…”에서 내용은 정정기사이지만 형식은 후속기사 형태의 ‘독자를 기만하는’ 기사를 또 다시 내보냈다. 독자권익위원회가 <조선일보>의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수리공 통화’ 왜 숨겼나”(5월31일자) 기사가 오보임을 지적하면서 곧바로 정정기사를 내보내지 않은 점을 질타한 것과 거의 유사한 행태가 또 발생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6월 22일자 기사에서 “(관리소장) 전씨의 고소장 내용을 취재해 3월 3일 자 A12면에 ‘난방비 갈등? 아파트 소장 급소 잡은 김부선’이란 기사로 보도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김(부선) 씨가 지난 2월 19일 관리소장 전씨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가져가려는 과정에서 전씨의 급소를 움켜쥐고 수차례 잡아당겼다는 내용이었지만 △<조선일보>가 21일 H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설치된 4대의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전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자신들의 지난 3월3일자 ‘단독’으로 보도한 “난방비 갈등? 아파트 소장 급소 잡은 김부선”이라는 기사가 오보라는 점을 인정하는 내용이었지만, ‘바로 잡습니다’가 아니라 ‘일반 기사’ 형태로 나갔다. 기사 내용 또한 자신들이 3월에 보도한 내용을 사실상 뒤집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22일 <조선일보>는 오보를 인정하지도, 정정기사를 내보내지도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의 3월3일자 기사는 김부선 씨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기사에 김씨의 반론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 3월3일 <조선일보> ‘오보’는 아직 인터넷에서 ‘단독’이란 타이틀을 단 채 검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초 <조선일보> 기사도 문제가 많지만, 후속기사 형식의 사실상 ‘정정기사’는 더 문제가 많다.

▲ <조선일보> 3월 3일 12면(왼쪽), 6월 22일 12면

‘김부선 오보’ 내고도 정정기사 내보내지 않은 조선일보

불과 며칠 전 “정정 보도는 신속히, 명확하게, 눈에 잘 띄게 내야”라는 제목으로 독자권익위원회 회의를 지면으로 ‘생중계’한 <조선일보>라면 이번 ‘김부선 오보’ 건은 독자권익위원회의 비판을 수용하는 차원에서라도 제대로 된 ‘정정기사’를 내보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식이라면 독자권익위원회가 <조선일보>에 어떤 강도 높은 비판을 한다고 한들, 독자들이 그 비판과 지적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정정 보도는 신속히, 명확하게, 눈에 잘 띄게 내야”라고 목소리를 내더라도 결국 <조선일보>는 예전의 행태 그대로 최소한의 사과는 물론 정정보도 형식도 갖추지 않은 ‘이상한 정정기사’를 계속 내보낼 가능성 높기 때문이다.

김부선 씨는 <조선일보>가 6월22일자에서 ‘이상한 정정기사’를 내보낸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등 신문, 조선일보의 정정기사”라며 “오보 쓴 언론사들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조선일보>는 김부선 씨의 경고에 대해서도 각오를 해야겠지만 독자권익위원회의 사전경고를 무시한 책임에 대해서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를 사실상 바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조선일보>에 이런 충고를 하나 해본다. 이럴 거면 굳이 ‘독자권익위원회’를 운영하지 말고 폐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진심으로 하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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