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칠거지악’의 끝판왕 ‘잘 먹는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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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JTBC ‘잘 먹는 소녀들’, 소녀들은 먹는 것도 잘 먹고 예뻐야 한다?

‘칠거지악(七去之惡)’.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등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조건을 이르는 말로, 전통사회의 여성들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내용이다. 현대사회의 걸그룹에게도 ‘신(新) 칠거지악’이 있다. 격렬한 춤을 추는 와중에도 ‘예뻐야’ 하고, 망가져도 ‘예뻐야’ 하고, 날씬하면서도 ‘예뻐야’ 하고…. 그리고 요즘은 하나 더 늘었다. 먹으면서도 ‘예뻐야’ 하고 높은 ‘점수’를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먹는 것조차 불편한 본분이 된 JTBC 신(新)예능 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이다.

▲ 지난 6월 29일 방송한 JTBC <잘 먹는 소녀들>. ⓒ화면캡처

일단, ‘잘’ 먹는 게 나쁜 건 절대 아니다.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좋다. 문제는 인간이 가진 즐거움 중에 하나인 ‘먹는다’라는 행위가 ‘게임’ 형식이 됐고, 그것도 ‘소녀들’이라고 지칭되는 걸그룹의 먹는 모습을 수많은 대중들이 바라보고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먹으면서도 걸그룹으로서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맛있게 잘 먹되 예뻐야 하고, 예쁘지만 가식 없이 털털하게 먹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전제 속에서 말이다.

인터넷 생방송 당시부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고문’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JTBC <잘 먹는 소녀들>이 지난 29일 첫 방송을 선보였다. 걸그룹 멤버가 나와 토너먼트 형식으로 1대1 ‘먹방’을 겨뤄 승자를 뽑는 방식이다. 스튜디오 판정단 점수와 네티즌 점수가 합산이 돼 해당 ‘먹방’에 우승자는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 이 모든 게 4시간 동안 이뤄진다.

▲ 지난 6월 29일 방송한 JTBC <잘 먹는 소녀들>. ⓒ화면캡처

<잘 먹는 소녀들>의 기획 의도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배고픔에 잠 못 이루는 밤! 그런 당신에게 넘버 원 야식 메뉴를 선사할 ‘잘 먹는 소녀들’이 떴다! 매일 밤 야식의 유혹에 시달리는 당신을 위해 걸 그룹! 최고의 ‘야식 요정’이 오늘 당신의 <야식 메뉴>를 직접 추천한다! 우리의 야식 고민을 덜어 줄 소녀는 누구?”

여성 아이돌, 이른바 ‘걸그룹’은 엄격한 잣대 위에 놓여 있다. 마치 ‘칠거지악’과도 같이 걸그룹은 이러이러 해야 하며, 어떠어떠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면 관심 밖으로 내쫓긴다. 그리고 해야 하며,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의 전제에는 ‘걸그룹은 예뻐야 한다’다. 그러면서도 예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똑똑해야 하고, 실수를 해서도 안 되며, 살이 쪄서도 안 된다. 역사적 상식을 모르는 걸그룹은 ‘매국’이라 비판받고, “천황폐하만세”를 외친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는 ‘저럴 줄 알았어’ 식의 반응이다.

앞서도 걸그룹에 대한 가학적 잣대로 시청자의 비난을 받은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2월 10일 방송된 KBS 설 특집 <본분 금메달>은 상식테스트를 한다며 출연자들에게 바퀴벌레 다리 개수를 질문한 뒤 갑자기 출연자의 몸에 바퀴벌레 모형을 올려놓고, 깜짝 놀란 상황에서도 여성 아이돌이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지 등을 카메라에 담은 뒤, 가장 덜 망가진 얼굴의 아이돌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프로그램이 말하고자 한 건 걸그룹으로서의 ‘본분’, 다시 말해 ‘걸그룹 칠거지악’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 먹는 소녀들>은 마치 걸그룹 ‘칠거지악’의 끝판왕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먹는 것이 더 이상의 즐거움이 아닌, 걸그룹의 새로운 ‘본분’이 된 것이다. 그것도 잘 먹어야 한다. 어떤 ‘잘’인지는 불명확하다. 그저 먹는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먹는 모습을 빤히 지켜볼 뿐이다. 걸그룹이 먹방을 하는 사이 MC와 출연자들이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먹방에 대한 관음증 같은 방송 속에 한 MC는 “어머, 인형이 밥을 먹네” 등의 멘트를 날릴 뿐이다.

▲ JTBC <잘 먹는 소녀들> 홈페이지 메인 화면. ⓒ화면캡처

프로그램 줄임말은 <잘먹소>지만 과연 잘 먹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굳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야식 메뉴를 골라야 하는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가학적이다 못해 ‘고문’이라는 비난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토할 것 같다”, “변태적 프로그램”이라는 반응도 있다.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야식 메뉴를 고르라는 것은 무슨 기획의도인 것일까. 앞서 방송된 인터넷 생방송에서 비난을 받았음에도 방송은 이를 의식치 않은 듯 보인다. 본방송 후에도 계속되는 시청자의 비난을 보면 말이다.

왜 걸그룹은 먹는 모습조차 소비되어야 하는 걸까. 소녀들이 ‘잘’ 먹길 바란다면 모든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쳐다보고 카메라로 클로즈업하고 예쁘게 먹길 요구하지 말길 바란다. 먹는 모습에마저 점수를 매기고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룰을 적용하지 말길 바란다. 정말로 소녀들이 ‘잘’ 먹고 건강하길 바란다면 언제 어디서건, 무엇을 하든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들이댈 것이 아니다. 소녀들이 건강하게 행복하고, 그래서 그 행복을 팬들에게 돌려줄 수 있길 원한다면 방송은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부터 재고해야 한다. 걸그룹에게 본분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영상들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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