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보도 통제’ 녹취록 무보도 KBS와 반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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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고개 숙인 언론’ 미래의 반성만큼 중요한 현재

단 한 줄의 뉴스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 보도에 항의하고 “대통령이 KBS를 봤다”며 기사를 빼거나 내용을 바꿔달라고 편집에 개입하는 모습을 담은 녹취록이 6월 30일 공개됐지만, 당일 KBS의 메인뉴스인 <뉴스9>에선 단 한 줄의 관련 보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노조 등 7개 언론단체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 21일과 30일 있었던 이 전 수석과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전 수석은 4월 21일 KBS <뉴스9>의 해경 비판 리포트 7건에 대해 “의도가 있어 보인다”며 잘못은 해경이 아닌 선장과 선원에 있다는 취지의 문제제기와 항의를 했다. 또 4월 30일 KBS <뉴스9>의 해경 비판 리포트 8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하필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라며 심야 뉴스인 <뉴스라인>에선 <뉴스9>에서 보도한 리포트 중 하나를 빼주거나 단어를 바꾸기 위한 녹음을 한 번 더 해 달라고, 대놓고 아이템 교체를 요구했다.

▲ 언론노조 등이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21일과 30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과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언론노조

사실 이 전 수석의 KBS 보도 개입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2014년 5월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로 관련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 인해 KBS 안팎에선 길환영 당시 KBS 사장 해임과 청와대 보도개입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왔고, 결국 KBS이사회에선 길환영 사장의 사태 수습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며 해임을 결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언론노조와 언론노조 KBS본부는 길 전 사장과 이 전 수석을 방송법 제4조 2항(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도 6월 27일 이 둘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즉, 어제(6월 30일)의 녹취록 공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당사자들의 육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뉴스의 가치가 없나? 아니, 그렇지 않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곤 하나, 청와대의 핵심 권력이 어떤 식으로 공영방송의 보도책임자에게 압박을 하고, 그 보도 책임자가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나”라며 항변을 하는, 즉 이전부터 이와 유사한 통제가 일상적으로 행해졌음을 드러낸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녹취록 공개 기자회견에 함께 했던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한예종 교수)도 “언론학 교재 속에 텍스트로 적혀 있던, 국가 권력이 여론을 어떻게 조작하는 지에 대한 실제의 사례가 확인됐다”고 의미를 짚었다. 또한 보도 순서와 분량 등에선 차이를 보였지만 MBC와 SBS, JTBC 등에서도 메인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KBS는 메인뉴스에서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보도‧제작의 자유가 존재하고 어떤 뉴스를 넣고 뺄지 여부는 해당 방송사의 보도책임자가 결정할 문제인 만큼, 전하지 않은 그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되진 않아도,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남는다. 그 책임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 6월 30일 KBS <뉴스9> 리포트 목록 ⓒKBS

과거 KBS의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는 모습이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후 석 달이 흐른 뒤,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 논란 속 길환영 당시 사장이 해고되고, 남은 KBS의 구성원들은 방송을 통해 사과를 했다. 대표 사례가 바로 2014년 7월 24일과 25일 연속으로 방송한 <KBS 파노라마>다. <KBS 파노라마>는 특히 7월 25일에 방송한 ‘고개 숙인 언론’ 편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통해 민낯이 드러난 언론, 그 중에서도 세월호 참사 보도로 “사장 해임” 사태까지 맞은 KBS의 문제를 끄집어내며 반성을 말했다. 앞서도 KBS는 정연주 사장 시절 <한국 사회를 말한다>, <미디어포커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정치권과 법원, 그리고 언론 등이 장기간의 군사독재 시절 속 어떻게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발목 잡았는지 등을 고발하며 KBS 내부의 문제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사실 스스로를 반성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물며 자성의 목소리를 외부로 표출하는 건 더욱 어렵다. 누군가의 처절한 자성과 그 고백 앞에서 마음을 풀고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다. 사람들이 과거 KBS를 ‘땡전뉴스’라고 조롱하고도, 어느 순간 ‘고봉순’이란 별명까지 붙이며 애정을 드러냈던 것도 결국 KBS 내부에 이런 반성과 고백, 다짐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KBS엔 ‘김비서’라는 불명예의 별명이 붙어 있고, 어제의 녹취록은 이 별명이 붙음직한 KBS의 현실을 확인한다. 하지만 2년 전 ‘보도통제’ 사장을 해임시킬 만큼의 힘을 보였던 내부의 들끓는 여론은 여전히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그 여론은 어느 순간 터져 나와 변화를 견인할 거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KBS에선 또 다시 처절한 반성과 고백, 다짐의 시간들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 반성과 자기 고백, 다짐이 습관처럼 느껴지면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지금의 부끄러움과 분노는 어느 미래를 기약하는 게 아닌, 변화를 만들어 가는 현재의 동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게 무엇일지, 또 실현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녹취록을 공개한 언론단체들은 대통령을 중심에 둔 현재의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변화를, 이 변화를 가능케 할 동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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