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 농성, 경찰이 뺏은 건 ‘은박 깔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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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권력이 가져간 집회·시위·표현의 자유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강탈(?)이 화제가 된 두 사건이 있다. 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경찰병력 5000명 동원해 ‘커피믹스 2박스’ 체포”(<데일리안> 2013년 12월 23일), “‘은박 깔개 쟁탈전’, 세월호 유가족 은박 깔개 뺏어 달아난 경찰”(<오마이뉴스> 2016년 6월 27일). 2013년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 과정에서 ‘커피믹스’를 몰래 가져간 경찰, 그리고 지난 6월 27일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장에서 사용하려고 준비한 은박 깔개를 갖고 질주한 경찰에 대한 기사 제목이다. 강탈당한 건 단순히 커피믹스와 은박 깔개가 아니다. 진짜 강탈당한 건 시민의 권리와 자유다.

[오마이뉴스 기사 바로가기] 세월호 유가족 물품 빼앗아 도망가는 경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참사 원인의 규명은커녕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선체 인양 작업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규명할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종료를 통보했고, 결국 유가족들은 지난 6월 25일부터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한 보장 등을 요구하며 다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촬영한 영상을 살펴보면 노숙농성 사흘째였던 지난 6월 27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장에서 사용할 은박 깔개를 택시에서 내리려 하자 경찰이 이를 빼앗았다. <오마이뉴스> 영상에서 경찰은 은박 깔개를 빼앗은 뒤 전력 질주했다. 동영상에서 경찰은 은박 깔개를 든 다른 경찰에서 “멀리가! 멀리가”라고 외쳤다. 유가족의 항의에도 경찰은 신고하지 않은 물품을 일시 보관하기 위함이라며 은박 깔개를 가져갔다.

▲ 지난 26일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를 위한 범국민 문화제'에서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깃발이 정부서울청사 건물을 뒤로 한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4.16 가족협의회는 이날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특조위 강제종료 저지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한다. ⓒ뉴스1

농민 백남기씨 사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농민 백남기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얼굴과 상반신을 직격으로 맞아 쓰러진 후 중태에 빠졌다.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이후에도 약 15초간 물대포를 조준해 쐈다. 그렇게 백남기씨는 생명의 권리와 자유를 공권력에 의해 빼앗겼다. 경찰은 시민들뿐 아니라 취재진을 향해서도 물대포 공격을 했다. 명백한 취재 방해다.

이런 현실을 돌아볼 때 과연 철도노조 집행부가, 세월호 유가족이 빼앗긴 게 고작 커피믹스와 은박 깔개뿐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단지 소소한 물품을 빼앗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철도노조 사무실에 진입하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몸싸움을 벌였을까? 백남기씨가 사경을 헤매는 건 그가 폭력시위에 가담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경찰이 철도노조와 세월호 유가족, 백남기씨와 언론에게서 뺏은 건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헌법에도 명시된 그들의 ‘권리’와 ‘자유’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권리를 가진 국민은 헌법 제21조 제1항에 따라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또 동조 제2항에 의해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헌법적 가치가 지켜지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일례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9일 발표한 ‘집회시위 신청 및 불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5월 30일부터 2016년 5월 30일까지 3년간 어버이연합은 총 3580회 집회 신고를 했는데 이에 대해 금지통고(불허)는 ‘0회’다. 반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신고 61건은 모두 불허됐다. 정부에 반하는 국민의 자유는 강탈되고,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민의 자유는 정부에 의해 보장된다.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헌법은 유명무실한, 그저 하나의 문장에 불과하다. 그 어디에도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없다. 커피믹스와 은박 깔개로 대변되는 헌법 상의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공권력에 강탈당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에서 표현・집회・시위・언론의 자유를 명시하고, 국가가 이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헌법 제1조 제2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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