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녹취록’ 나왔지만 ‘방송장악 청문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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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진 “청문회, 미방위 소관 아니다”…국민의당 일부에선 “홍보수석이 할 수 있는 일” 발언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에선 ‘방송장악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30일 언론노조 등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 비판 보도에 항의하고 특정 보도를 빼 달라고 요청하는 등의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한 이후, 야당과 언론단체에선 방송 관련 상임위인 미방위를 중심으로 ‘방송장악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청문회 개최 여부는 불투명하다.

새누리 미방위원들, ‘이정현 녹취록’ 청문회 거부

미방위 구성만 놓고 보면 청문회 개최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미방위의 재적 의원은 총 24인으로, 구성의 자세한 내용을 보면, 신상진 미방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 10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인, 국민의당 3인, 무소속 1인이다.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의 동의로 청문회 개최가 가능하고, 현재의 구성이 여야 10대 14인 만큼 야당이 함께 ‘마음만 먹으면’ 청문회는 열 수 있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반발이 크다는 점이다. 6일 미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이정현 녹취록’ 등 청와대의 보도통제 의혹에 대한 현안 질의를 하자고 새누리당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들은 이날 공동으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정현 전 수석의 행동은 공영방송의 편집권을 보장하는 현행 방송법 제4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새누리당은 현안질의건 청문회건 미방위 회의 개최에 응해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 재임 당시 2014년 KBS의 세월호 참사 보도에 개입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새누리당은 꿈쩍도 않는 모양새다. 당장 회의 소집과 취소, 안건 상정 등의 권한을 쥐고 있는 신상진 미방위원장은 지난 5일 오후 YTN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인터뷰 바로가기)해 “이 부분(보도통제 논란)의 쟁점은 홍보수석의 통상 업무냐 아니냐에 있다”며 “홍보수석의 얘기를 KBS 보도국장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강압이나 외압으로 느꼈는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검찰 차원의 조사로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진 미방위원장의 이 발언은 같은 날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상황은 아니나, 홍보수석으로서 협조를 요청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보도개입’ 논란에 대한 여권의 ‘감싸기’ 입장을 고수하는 동시에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은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신상진 위원장은 미방위에서 ‘이정현 녹취록’ 관련 청문회를 개최할 이유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홍보수석에 관련한 내용인데 미방위에서 청와대를 상대로 청문회가 가능한가”라고 반문하며 “소관이 그렇다”고 말했다. 또 “운영위에서 이미 (녹취록 논란에 대해) 다뤘고 이후 특별히 새로운 사실이 나온 게 없다”며 “야당이 요구하려면 상임위 차원이 아닌, 여야 원내 지도부 합의를 통해 국회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할 일이지, 미방위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론상 야당이 주장하면 청문회가 가능하지 않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신 위원장은 “간사 협의를 통해 상임위를 운영하는 기본이 있다”며 “국회는 오래 전부터 청문회 개최, 상임위 일정 조정, 안건 상정 등을 다수의 문제로 풀지 않고 여야 간사 협의를 바탕으로 상임위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18~19대 국회 당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탄생의 근거가 된 미디어법과 KBS 수신료 인상안 등을 다수당이었던 여당 미방위원들끼리 일방 상정‧처리했던 모습과 맞지 않다. 신 위원장은 “(청문회와 관련해) 아직 (여야 간사들에게) 특별히 보고받은 게 없다”고 덧붙였다.

캐스팅보트 국민의당 “청문회는…” 신중론에 ‘불협화음’도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도 청문회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물론 언론단체들이 ‘이정현 녹취록’을 공개한 직후부터 국민의당에선 대변인 논평 등을 통해 정권의 보도 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초반부터 ‘방송장악 청문회’를 말했던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국민의당은 청문회 주장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관행이란 미명하에 지금도 보도지침을 내리는 건 있을 수 없다”며 “정상적인 홍보업무라고 하면 대한민국이 언론탄압 국가임을 인정하는 것인 만큼,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7월 6일 <경향신문> 5면)고 강조하면서도 서별관 회의 의혹이나 어버이연합,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법조비리 등과 달리 방송개입 문제를 청문회를 ‘꼭’ 열어야 할 사안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6일 야당 미방위원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여당의 미방위 개최 거부 사실을 알리고 이를 비판했지만 “현안질의건 청문회건 미방위 회의 개최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 미방위 청문회로 범위를 한정하지 않았다.

또 지난 5일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미방위와 함께 언론 관련 사안을 소관하는 상임위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위원장인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중견지역언론인모임인 세종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권에 유리하게 언론에 협조를 구하는 건 어느 정권이나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그런 역할을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는 이정현 전 수석 등 정권의 방송 보도 외압을 두둔한다고 읽힐 수 있는 발언으로, 방송장악 청문회에 대한 국민의당 내부의 인식에 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은 물론 다른 야당들과도 온도 차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국회 미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KBS 김시곤 보도국장의 녹취록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원들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행동은 공영방송의 편집권을 보장하는 현행 방송법 4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공영방송을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려는 반민주적 행태다"며 "새누리당이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뉴스1

그러나 현업 언론인들과 언론단체 등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의 과제를 20대 국회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정현 녹취록’은 물론 앞서 불거진 ‘백종문 녹취록’ 등에서 언급된 정권의 방송 개입과 공영방송 길들이기 등의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선 청문회 개최는 필수라고 주장한다.

당장 지난 5일 언론‧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녹취록을 들어보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이 이정현 수석에게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KBS 보도국장이 (정권의 개입에)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다” 등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의 독립을 위한 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청문회 개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밖에도 언론계 안팎에선 현재 청와대와 여당에서 ‘이정현 녹취록’에 대해 “홍보수석으로서 업무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모습 자체를 문제로 지적하며 “일상적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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