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을 위한 제작비,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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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위한 제작비,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기고]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장
  •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장
  • 승인 2016.07.0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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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PD협회와 독립제작사협회가 지난 6월 29일 표준계약서 의무화에 합의하고 이를 각 협회 회원과 회원사에 공지했다. 누군가는 방송계의 최대 ‘갑(甲)’인 방송사가 빠진 ‘을(乙)’과 ‘병(丙)’의 ‘이 빠진’ 합의에 무슨 큰 의미가 있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제작사협회의 표준계약서 의무화 적극 추진은 한국 방송 산업의 취약점을 개선하고자하는 의지의 확고함을 드러내는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 그럴까. 현실을 보자. 해마다 물가는 상승하지만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비는 삭감한다는 소리만 들린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외주제작사들이 아무리 인건비를 깎고 연출비를 삭감하며 지출을 줄여도, 이대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턱없이 낮아진 제작비에 맞추느라 낮은 연차의 PD와 작가만을 찾아 인건비를 줄이다보니 매끄럽게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재촬영하기 일쑤다. 종편(종합편집)과 녹음은 두 세 번씩 하는 게 보통이다. 한 마디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현실이 표준계약서 의무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 ⓒpixabay

그렇다면 표준계약서 의무화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확언할 순 없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표준계약서 의무화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작을 여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표준계약서는 합리적인 제작비 규모를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조건이다. 즉, 합리적인 표준계약서라는 토대가 있어야 표준제작비의 기준 또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도 현실에선 표준제작비를 책정해 방송을 제작한다. PD들이 새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표준제작비를 책정한다. 하지만 인건비와 진행비용, 출연료 등 항목별로 줄이고 줄여서 책정한 금액을 제출하면 윗선에선 항상 “야, 좀 더 줄여봐”라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한 끝에 제작비를 책정하고 제작 단계에 들어가면, 당연하게 제작비는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없는 제작비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대체 어떤 근거와 기준으로 표준제작비를 책정하고 있는 거지? 제작을 위한 제작비용이 맞긴 한가?

반면 광고업계의 경우, 한국광고영상제작사협회에서 2년마다 한 번씩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광고회사와의 합의를 거쳐 ‘KCU제작기준단가표’를 발표하는데, 업계에선 이 단가표에 따라 광고제작 견적서를 만든다. 외국은 어떨까. 한국 방송계에서 늘 ‘모범’으로, 닮아야 하는 모델로 꼽는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은 방송사에서 1회, 또는 재방하는데 적절한 프로그램 제작비를 표준제작비(Indicative Tariffs)로 정의하고, 방송사가 장르별 표준계약비를 물가 상승을 고려해 2년마다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커뮤니케이션법 제285조 제6항 제C항) 실제로 또 영국의 외주전문 채널인 채널4는 표준제작비 산출을 위해 2년 간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모든 회계 자료를 분석한 사례도 있다. 특정 장르의 프로그램이 편성시간대에 따라 제작비가 얼마나 소요되고 수익은 어느 정도에 이르고 있으며, 이후의 유통을 통해 발생하는 부가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를 몇 해 동안 투명하게 축적된 데이터에 근거하여 표준제작비 개념을 정착시켰다.

표준제작비는 그 이름이 갖는 뉘앙스와는 달리 개별 프로그램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프로그램 제작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배분을 고려하여 방송사가 방영권만을 가질 경우 제작사에 지급할 제작비를 축적된 데이터에 근거해 산출한 것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표준제작비는 방송사와 외주사의 공정한 거래를 담보할 기준점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정착과 미래형 외주제작 시장, 이만제 원광대 교수(신문방송학과), ‘트렌드&인사이트(2015.10.11.)’)

이렇듯 영국에서 표준제작비는 합리적인 제작비 산출과 권리배분을 위한 기준으로 역할하고 있다. 권리배분까지 고려하다니, 현재의 한국에선 도저히 상상조차 어려운 일일지만, 사실 변화를 위해선 우리 모두 이런 상상부터 밥 먹듯 해야 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더 이상 유능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표준제작비 현실화와 표준계약서 의무상용화가 정착될 때, 다른 분야로 흩어졌던 유능한 신규 인력들은 방송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꿈꾸는 뜨거운 마음으로, 지금, 표준계약서의 정착을 위해 모두가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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