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기자답지 못하다면 왜 KBS에 존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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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0개 직능단체 등 자사 비판 기자 인사조치 규탄 성명…새노조, 21일 조합원 결의대회 열어

청와대의 보도통제 정황이 담긴 ‘이정현 녹취록’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KBS를 비판한 자사 기자에 대한 부당전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구성원들의 비판과 반발이 지역과 직종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기자, PD들에 이어 KBS 내 10개 직능단체도 해당 기자에 대한 인사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KBS PD협회, 기자협회, 방송기술인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0개 직능단체는 20일 공동성명을 내고 “당장 서슬 퍼런 칼날을 거두고 부당한 인사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가 틀린 것을 틀리다고 얘기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얘기해 인사 조치를 당했다”며 “이게 2016년 여름 공영방송이라는 탈을 쓴 한 언론사의 살풍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 단체는 “기자가 기자답지 못하고 방송인이 방송인답지 못하다면 우리는 왜 KBS에 존재하는가”라고 반문하며 “부당한 인사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로비에서 청와대의 보도개입 정황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자사 직원을 인사 조치한 것에 대해 규탄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앞서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에 근무 중인 7년차 정연욱 기자는 지난 13일 한국기자협회에서 발간하는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기사링크)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고 이른바 ‘이정현 녹취록’에 대한 보도를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KBS 보도국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판했다. 해당 글이 게시된 이틀 뒤인 지난 15일 정 기자는 제주방송총국으로 인사 발령이 났고, 이에 내부에서는 ‘부당전보’라는 비판과 함께 인사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38기 PD 23명 전원도 이날 연명성명을 내고 “KBS는 언론사”라고 강조하며 “부당한 인사를 철회하고 시청자 앞에 머리 숙여 지난 과오를 뉴스로 반성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는 오는 2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로비 민주광장에서 ‘사드 보도지침’ 및 ‘부당인사’ 논란을 규탄하는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다음은 성명 전문.

▶KBS 직능단체 공동성명

부당한 인사조치 즉각 철회하라!

야만의 시대다. 기자가 틀린 것을 틀리다고 얘기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인사 조치를 당했다. 심지어 어떤 해설위원은 옳다 그르다 얘기하지도 않았다고 해서 또 인사 조치를 당했다. 연차를 가리지 않고 이유도 따지지 않는 무차별적 테러에 공포심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게 2016년 여름 공영방송이라는 탈을 쓴 한 언론사의 살풍경한 모습이다. 보도본부만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KBS 전체를 감돌고 있는 분위기다.

지금 KBS 구성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공영방송 KBS가 할 수 있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말라고 한다. 기계처럼 살라고 한다. 권력이 시키는 대로 로봇이 되기를 바란다. 로봇이 싫어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자들에겐 어떤 식으로 보복을 가한다.

우리는 바라는 게 많지 않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나 KBS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그렇지 녹록치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누구든 최소한의 숨은 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 작은 숨통마저도 끊으려고 한다. 기자가 기자답지 못하고 방송인이 방송인답지 못하다면 우리는 왜 KBS에 존재하는가.

식상한 표현이지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새날이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야만의 시대는 물러갈 것이다. 당장 서슬 퍼런 칼날을 거두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2016년 7월 20일

KBS경영협회, 기자협회, 방송기술인협회, 방송그래픽협회, 아나운서협회, 여성협회, 전국기자협회, 촬영감독협회, 카메라감독협회, PD협회

▶KBS 38기 PD 성명

KBS의 원천기술을 팔지 마십시오.

KBS는 언론사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고 킬러 컨텐츠를 생산하고 제작비를 절감하고 협찬을 아무리 따와도 우리는 언론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사도 공장임을 잘 압니다. 공장이 어려우면 기계설비를 줄이고 내다 팔고 우수 인력이 유출돼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압니다.

입사 만 5년, 저희도 그 정도 사회화(정상화)는 다 됐습니다. 하지만 공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 팔아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원천기술입니다.

우리의 원천기술은 ‘양심’입니다. 이 공장은 결국 언론사이기 때문입니다.

비상경영을 외치는 경영진은 정작 무엇을 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던 찰나였습니다. 수신료를 인상하는 게 불가능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원천기술은 팔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얼마에 팔았을까요.

초등학생의 장난전화보다 질 떨어지는 전화를 받고도 쉬쉬했습니다. 그 사실이 만 천하에 공개됐는데 KBS 9시뉴스에서만 다루지 않으면 세상도 모를 것처럼 고개를 진흙에 파묻었습니다.

엉덩이를 쿡쿡 찌르며 ‘그거 아니예요’라고 말하는, 공장의 뛰어난 일꾼은 뒷발로 차버렸습니다. 양심이 ‘쪽팔림’ 앞에 고개 숙였고 양심이 ‘두려움’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원천기술을 팔아치운 우리의 지금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 참으로 우습고 안에서 보기에 참으로 처량하고 처참합니다.

이제라도 고개를 빼들고 공기를 마시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그 정도 사회화(정상화)는 경영진 된 도리로서 마땅한 불편함입니다. 일개 5년차 PD들이 이렇게 성명을 올리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저희는 KBS에 입사했고, 그 원천기술을 지금까지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론사입니다.

부당한 인사를 철회하고 시청자 앞에 머리 숙여 지난 과오를 뉴스로 반성하십시오.

지금부터의 모든 행동은 각자 영역의 PD로서가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기자 선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38기 PD 일동
강수연 길다영 김가람 김성민 김은곤 문지혜 박병길 박상욱 상은지 손성권 신수정 유일용 이승건 이승문 이원식 이정규 이창수 임효주 정재윤 정혜진 최승현 현인철 황승기(이상 23명 전원,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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