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당신, 김.종.학!- 좋은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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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종학 PD 3주기 추모사 ①] 오명환 전 여수 MBC 사장

고(故) 김종학 PD 3주기 추모식이 2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진행된다. 고 김종학 PD은 <인간시장>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양사신기> 등을 연출하며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고 김종학 PD은 드라마 <신의>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 고소돼 2013년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주기 추모식을 맞아 고인의 MBC 선배인 오명환 전 여수MBC 사장과 김승수 전 한국PD연합회장이 <PD저널> 편집국에 추모사를 보내왔다. 오명환 전 사장은 그를 ‘김종학과 그의 드라마를 사랑한 사람’이라며 “고인이 살아서 전설이 되고 떠나서 역사가 된 당신의 63년 세월은 여전히 크고 깊게 남아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다음은 오명환 전 사장의 추모사다.  <편집자>

드라마 현장에서 피고 진, 그래서 들꽃 같은 당신-김.종.학!

오늘 당신 가신지 석 삼년, 1000여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머나 먼 하늘나라에서 그 동안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지금도 믿기지 않는 당신의 빈자리에 망연할 뿐, 이제 억울함과 분함 그리고 회한을 다 떠나 보내십시오,

이제 못 다한 몫은 남은 자들에 있습니다.

당신이 혼신을 쏟았던 <여명의 눈동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최대치의 대사는 당신의 마지막 절규가 되어 가슴에 맴돕니다.

홀로 살아남은 장하림에 ‘자네가 걱정이야, 앞으로 살날이 많을 텐데, 제대로 살려면 어려울 텐데...’라고 슬퍼합니다.

‘너무 힘 들 텐데, 무거운 짐 당신 어깨에 얹혀 주고...’

당신은 마지막 편지에서 아내에게 그처럼 똑같이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남은 유족들은 어렵고 힘들지만 제대로 살기 위해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고 우리들만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무거운 세월을 이겨낼 수 있음으로...’

장하림의 이 마지막 독백처럼 살아남은 자에게는 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 이유는 살아가는 희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2014년 7월 23일 故 김종학 PD의 1주기 추모식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한 꽃들 사이 사진 속 김종학 PD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렇습니다. 산 자들은 당신의 말씀대로 희망을 가지고 제대로 살겠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용기와 힘을 주고 떠났습니다.

당신은 삶과 작품을 통해서 항상 혼(魂)을 앞세웠습니다. 일장입혼(一場入魂)의 정신으로 혼신을 다하여 연출했고 영혼이 살아 있는 연기와 작업을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장면마다에 당신의 맥과 혼이 살아 숨 쉬는 명품 드라마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해방과 전쟁, 숱한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점철된 우리의 지난 반세기, 그 현대사의 뒤안길에 스러진 인간상과 영상 발굴에 천착해 온 당신, 당대의 역사와 사회에 뿌리를 두지 않은 드라마는 드라마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던 당신, 그래서 정면으로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중후한 교훈과 감동을 전한 작가정신은 오늘까지 긴 울림을 주고 우리 드라마에 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믿음과 의리’를 가장 중요한 실천 덕목으로 꼽았고 또한 그렇게 솔선했습니다. 그래서 앞 뒤 없이 남의 말을 잘 믿어주고 남의 뜻을 잘 보듬어 주는 순박한 성격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분신 <모래시계>의 주인공 박태수는 최후 순간을 앞두고 이렇게 스스로 두려워합니다. ‘나 떨고 있니? 내가 떨고 있을까 봐 그게 겁나!...’

그 모습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나의 진실이 통하지 않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당신의 모습으로 환치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남은 자들에게 믿음과 의리가 없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오버랩 되어 보입니다.

우리는 그 신의를 저버린 사람들이 생길까봐, 또한 명예를 훼손하여 당신 뜻과 전혀 달리 포장되거나 변질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지막지함을 잘 감싸주어 우리 가족 힘들지 않게 해 줘....’

당신의 마지막 부탁은 우리들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버팀목이자 커다란 힘이 되어준 가족은 ‘세상의 무지막지함’에서 마땅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민정, 민주, 두 딸의 바보 아빠, 당신은 가셨지만 우린 당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힘들지만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당신의 순수하고 진실한 투혼을 상기합니다.

살아서 전설이 되고 떠나서 역사가 된 당신의 63년 세월은 여전히 크고 깊게 남아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들꽃, 당신, 김.종.학!- 부디 좋은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 2016년 7월23일,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서. 김종학과 그의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 오 명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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