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기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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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시론] 김창룡 인제대 교수
  • 김창룡 인제대 교수
  • 승인 2016.07.2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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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기자를 키우는 힘”

청와대 민정수석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것은 마치 검찰총장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것과 같습니다. 검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최고 윗선에 위치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 소송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청와대에서는 이미 다른 민정수석 후보 서류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청와대의 홍보수석이 KBS 사장과 보도국장에게 ‘세월호’ 관련 보도통제를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방송의 공정보도, 독립보도를 규정한 방송법 위반 논란을 가져온 중대사항이지요. KBS에 가해진 외부의 부당한 압력, 즉 청와대의 불법 개입 의혹인 존재한다는 건 KBS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분노를 느낄 사항입니다. 이들은 KBS의 신뢰와 중립성을 의심케 하는 어떤 시도나 압력도 거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청와대 수석들의 일탈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과 맞물려 어지러운 시국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KBS가 ‘KBS의 녹취록의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것은 사장을 비롯한 한 줌의 경영진’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장과 경영진도 갑자기 제주도로 발령난 정연욱 기자보다 오래 KBS에 머물지 못합니다. 난세에는 자리를 차지하는 건 ‘영광이 아닌 수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연욱 기자에게 지금의 시련과 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고 현재의 수치를 기억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PD저널>(▷링크)에 따르면, 청와대의 보도 통제 정황이 담긴 ‘이정현 녹취록’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KBS 모습을 언론 기고를 통해 비판한 후 제주지역총국으로 발령받은 정연욱 기자는 최근 언론노조 KBS본부 주최로 열린 결의대회에 참석해 “언론사가 언론인에게 이런 짓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언론사가 인사권을 남용하여 언론인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식치고는 참 거칠고 치졸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KBS 사측은 원칙에 따른 인사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일은 제주도에 가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 기자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고자 합니다.

▲ KBS의 ‘이정현 녹취록’ 무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한 후 제주방송총국으로 발령 받은 정연욱 KBS 기자가 지난 21일 정오 언론노조 KBS본부 주최로 열린 결의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언론노조

첫째, 도전과 발전의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KBS 본사에서 부당하게 제주지사로 발령났다는 분한 마음보다는 지방에서 좀 더 공부하고 노력하도록 배려했다고 생각하세요. 저널리즘의 세계에선 무난한 기자보다 곡절을 거친 기자가 더 성장하는 법입니다.

두 번째, 지금보다 나은 KBS를 내가 앞장서서 만들겠다고 다짐하세요.

KBS와 같은 언론사는 언론의 자유를 내부 구성원들에게 먼저 부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장 등 경영자가 되면 내부의 비판을 듣기 싫어하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정치 권력에 거슬리는 일은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공영방송의 독립성, 중립성이 그냥 지켜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 기자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지 못하는 기자는 진정한 기자가 아닙니다.

세 번째, 정치권을 탓하기 전에 KBS 내부를 둘러보세요.

‘언론사가 언론인에게 못할 짓을 하는 사람’은 낙하산이 아닌 바로 KBS 선배 출신 사장입니다. 이게 아니더라도 ‘낙하산보다 더한 낙하산 역할’을 하는 선배 언론인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선거철에 뛰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것입니다. KBS를 명실공히 공영방송으로 지켜줄 첫 번째 임무는 방송통신위원회도, KBS 이사회에 부여된 것도 아닙니다. 바로 건강한 KBS 내부 구성원들의 몫입니다. 길환영 전 사장도 고대영 현 사장도 모두 KBS 선배들 아닙니까.

앞으로도 내부에서 정치권에 줄을 서서 사장 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그런 선배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언론행동강령이나 보도준칙 등 다양한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뒀지만 무용지물이 된 것은 누구탓인가요.

KBS에 정 기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언론인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공영방송 바로 세우기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할 말을 하는 기자’는 앞으로도 할 말을 할 것입니다. 지금도 침묵하는 기자는 앞으로도 입을 다물 것입니다.

정치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정치에 무관심해지면 “자신보다 저급한 수준의 인간들에게 지배를 받게 된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입니다. KBS 정 기자의 좌절의 오늘이 희망의 내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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