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 아닌 ‘자화상’의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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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 아닌 ‘자화상’의 아이돌
[김교석의 티적티적] ‘프로듀스 101’부터 ‘걸스피릿’까지 짠내 깃든 아이돌 콘텐츠
  •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6.07.26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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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신화적 우상을 뜻하는 영어에서 따온 말이다. 케이팝(K-Pop)의 근간인 아이돌 시스템은 수많은 소녀 팬들을 등에 업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과 무대 퍼포먼스를 보는 것은 살아가는 한 가지 이유다. 그리고 오늘날의 아이돌들은 훗날 지금 30~40대들의 복고 열풍과 마찬가지로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을 공유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2016년, 우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기회의 감소가 가져온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회의, 흙수저와 금수저 등의 갈등이 만연하고 깊어진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은 더 이상 멋진 우상이 아니라 헬조선 청춘의 자화상의 모습을 띄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첫 방송을 한 JTBC <걸스피릿>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중소 기획사의 인지도 낮은 그룹의 이른바 ‘노바디 보컬’을 조명하는 경연 예능이다. 기본적으로 음악 예능이지만 기획 의도는 숨겨진 열정과 재능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데 있다.

▲ JTBC <걸스피릿> ‘러블리즈’ 케이 ⓒJTBC

이 프로그램은 올해 Mnet 최고의 히트 상품인 <프로듀스 101>과 묘하게 겹친다. 아이돌 연습생들의 생존기를 다룬 ‘서바이벌 쇼’로, 이미 데뷔한 아이돌 멤버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눈물겨운 고생기와 성공에 대한 절실함을 전시하는 면에선 별다른 바가 없다. 이른바 젊은 세대의 은어인 ‘짠내’가 깃든 아이돌 콘텐츠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을 것도 양껏 먹지 못한 채 열심히 노력하지만 기회를 못 잡은 청춘의 어려움과 좌절을 드러내고 부각하는 것은 화려한 아이돌의 기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고도 멀다. 7~9년씩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막상 데뷔는 했지만 그 다음 진로가 막막해서 점점 더 초조한 이들에게 반갑고도 절실한 기회다. 더 이상 실패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걸스피릿>은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돌 그룹 내에서도 가장 취약한 파트인 리드보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노래 지분은 많고 실력도 출중하지만 아이돌 특성 상 센터에 서지 못하는, 인지도가 낮은 멤버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접근은 아이돌 시스템에 반해서 이뤄졌다. <슈퍼스타 K>(Mnet)가 융성했던 시기는 시스템 때문에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소외된 실력 있는 재야의 고수들을 조명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스템 내·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확률의 이야기를 한다. 데뷔하기만 하면 성공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던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관문을 어렵게 통과해도 성공은 계속 요원하다. 취업도 어려운데 그 이후의 삶도 답이 안 나오는 우리네 현실의 판박이랄까.

▲ JTBC <걸스피릿> ‘레이디스 코드’ 소정 ⓒJTBC

그러자 아이돌들이 어느 순간 화려하고 신비한 우상으로 등장하지 않고 우리네와 똑같은 처지라는 공감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절망과 고생과 고난을 겪으면서 실력을 쌓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성공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혹은 다가갈 수 있다는) 자수성가 성장 스토리를 아이돌의 이미지에 덧입히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젊은 세대에서 힙합 스타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린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가서 성공을 쟁취했고,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는 포즈는 아이돌의 무대 퍼포먼스를 앞서는 진정성과 현실성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남자 그룹들은 기존의 아이돌이 그랬듯 로우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이돌 산업의 팽창에 일조하고 있는 삼촌팬들의 등장과 함께 아이돌들의 이미지와 위상의 변화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와 같은 오빠 부대를 끌고 다니는 팬덤과 또 다른 응원 정서가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이런 접근은 연약하고 귀여운 동생 같은 소녀들이 보여줄 때 더욱 폭발력을 갖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I.O.I 제작자도 밝혔듯 삼촌팬들의 증대한 롤리타 신드롬은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응원과 후원의 정서와 함께하면서 희석되고 떳떳해진다. 그래서 노력하는 소녀들을 동생같이 바라보는 삼촌팬들의 눈에는 그 노력이 가상하고 안쓰럽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이들을 또래로 여기는 집단의 눈에는 나 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위안이자, 나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대리만족인 셈이다.

꽃길을 걷고 싶다는 I.O.I나 '저희 진짜 잘돼야 하거든요'라고 말하는 ‘레이디스 코드’ 소정의 말은 이 시대 아이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메시지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사랑과 환호를 먹고 살던 아이돌이 더 이상 저 높은 곳에 위치한 화려한 무대의 우상이 아니라 보살펴주고 싶은 조카나 동생이거나 나와는 다른 영역에 취업 준비 중인 내 이웃의 청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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