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재단 논란보다 중요한 ‘날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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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위안부 재단 관련 보도 ‘0건’

오는 28일 예정된 ‘일본인 위안부 재단(화해·치유 재단)’ 설립에 대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물론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와 야당 등에서 반발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엔 관련 소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한국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면, 일본이 10억엔 규모의 지원금을 출연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바 있다. 당시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구체적인 사과도 담겨있지 않고, 배상금이 아닌 지원금 형태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지만, 정부는 “한일 위안부 문제 극적 타결”이라고 자평하며 합의를 끝마쳤다.

그리고 7개월 여의 시간이 흐른 뒤 지난 24일, 당사자들의 반발에도 한일 양국 정부에서 합의한 위안부 재단이 오는 28일 설립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리고 다음 날인 25일 오전 김복동, 이옥선,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등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재단 설립 진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만하고 일방적인 화해와치유재단 설립 강행하는 한국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울분을 토하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이날 들려온 얘기는 할머니 등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외교부와 여성가족부 등에서 일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전화를 걸어 재단 설립 행사 참여를 종용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28일에 점심 식사를 대접하겠다’, ‘28일에 오면 돈을 드리겠다’ 등의 말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재단 발족식에 참석을 유도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정대협 측에 문의한 할머니들은 재단 발족식과 관련한 행사라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다수의 언론 매체를 통해 해당 논란이 불거지며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할머니들의 재단 발족식 참석 여부를 알아본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를 제외한 다른 언론에선 관련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일례로 JTBC는 지난 25일 메인뉴스인 <뉴스룸> 1부와 2부 첫 번째, 두 번째 꼭지로 위안부 재단 관련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관련뉴스 : '식사·돈' 내세워 재단 발족식 참석 종용?…의혹 논란)

JTBC와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오는 28일 재단 출범을 앞두고 아직까지도 일본 측이 구체적으로 언제 재단 출연금을 내놓을 것인지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임을 꼬집었다. 이는 사실상 지난해 협상 당시 ‘소녀상 철거에 대해 시민단체와 협의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합의가 선행되기 전에는 일본이 재단 지원금을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26일 언론을 통해 'NHK가 일본 정부가 다음 달 위안부 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외교부도 정례브리핑에서 “재단이 설립되면 약속한 자금이 바로 거출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지급 날짜를 명시하지 않아 ‘소녀상 철거’와 ‘출연금 지급’이 연관된 게 아니냐는 의문은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 25일 JTBC 메인뉴스 보도 ''식사·돈' 내세워 재단 발족식 참석 종용?…의혹 논란' ⓒJTBC

이처럼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에선 논란이 처음 불거진 지난 25일은 물론 26일까지 이와 관련한 그 어떤 소식도 찾아볼 수 없다. 외교부와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재단 발족식 참석 종용 논란과 일본의 출연금 지급 지연에 대한 보도는 물론, 위안부 재단 설립을 둘러싼 문제제기 등 논란 자체에 대한 보도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위안부 재단에 대한 정부 입장까지 포함해 어떠한 소식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 '무보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뉴스를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언론사의 자유다. 하지만 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는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사안이다. 즉, 설립 예정인 위안부 재단은 그저 하나의 단체가 설립을 앞두고 있다며 유야무야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외교부와 여성가족부의 재단 발족식 참석 종용 논란을 두고 ‘일제 치하 당시 일본이 돈을 벌게 해준다고,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고 하고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간 행위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에서 여전히 이 논란을 관심 밖이다. 이런 가운데 수신료를 받는 대표 공영방송인 KBS는 관련 논란이 가장 불거진 25일 메인뉴스에서 ‘폭염’ 관련 보도만 다섯 꼭지를 전했다. JTBC가 위안부 재단 관련 소식을 네 꼭지 전한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물론 폭염은 많은 국민에게 불편과 우려를 낳고 있는 사안인 만큼 보도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다섯 개에 이르는 폭염 관련 뉴스 속 단 하나의 자리도 차지할 수 없을 만큼, 위안부 재단 설립 논란이 하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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