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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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힘있으려면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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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가 살아남기 위한 경영혁신과 내부개혁에 한창이다. 조직을 30% 이상 축소하는 기구개편, 권한이양을 통한 일 중심체제구축, 대PD·대기자·대엔지니어를 지향할 전문직제도입 등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논의 과정과 도출된 결과물들을 접하면서 현안을 바라보고 해결할 우리의 시각과 감정이 외부의 그것과 상당한 간격이 있으며, 한계마저 있음을 느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 우리의 자세가 너무 안일하거나 아니면 외부의 변화요구(외부에 끌려간다는 뜻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개혁요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이 아니고는 개혁은 불가능한 게 아닌가’라는 한 당사자의 토로처럼, 고여 썩은 물을 맑은 물로 바꾸어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일 것이다. 그럼에도 개혁이 흐지부지되어 우리가 또다시 옛날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번쩍 다시 정신이 든다. 그렇다면 개혁이 힘을 받고, 그 힘으로 다시 개혁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방송가의 개혁논의를 보면 큰 틀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 개혁이란 의미가 없다. 아무리 현재가 중요하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 급선무라 할지라도 10년 뒤를 내다보는 비전없이는 곤란하다. 조직개편도, 전문직제도입도, 인력 및 제작비 삭감도 전체적 틀과 시스템 개선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냥 줄이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술연구나 인력개발 등 장기적 과제에 대한 고민 없이, 아니 제작현업중심체제는 구호일 뿐 여전히 각자의 부서이기주의에 빠져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전체제작시스템으로 접근해 제작현장의 자율성과 민주적이고 투명한 논의구조를 확보하고, 주먹구구식 제작관행을 바꾸기보다 한건주의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보이는 하나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전제적 틀을 바꾸는데 우리는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혁분위기는 잠시뿐, 결국 우리는 옛날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음을 곧 통감하고 또다시 좌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한편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치열함과 진지함이 부족해 보인다. 기구개편이든 전문직제도입이든 현재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토론, 연구 없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경험한 실패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과정을 보면 감상이나 감각에 치중, 제대로 된 현실진단과 대안마련에 소홀하다. 며칠 밤을 토론을 통해서라도, 외부에 연구를 의뢰해서라도 이번에는 올바른 원칙과 제도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또 하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이 소홀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제작현장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합의된 비전이나 현장과의 교감 없이 한사람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그런 관행을 변화시키지 못할 때 개혁은 무엇이고, 그 개혁이 또 어떤 추진력을 발휘할 것인가. 아무리 어려워도 논의 구조의 틀을 세우고 상대방을 설득시켜 함께 가려는 의지와 노력 없이는 개혁은 자칫 일회성 행사로 끝날지 모른다. 몇몇 사람 주도로 진행되는 논의구조와 예민하니 말을 아끼겠다는 무관심·냉소주의는 결국 일부에게만 책임을 지울 뿐 끝내 ‘거봐, 그럴 줄 알았어!’식의 집단내부의 갈등만 조장하게 될 것이다.개혁은 때로 무질서해 보이고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 와중에는 합리, 질서, 절차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변화와 개혁을 의도적으로 모면하려는 조직적 작용도 분명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혁이 큰 틀과 시스템에 대한 전체적 고찰 없이 이루어지거나, 동의와 참여를 구하는 진지하고도 투명한 논의구조·과정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어려울수록, 급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고뇌와 검증장치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개혁은 힘을 받고 개혁의 효과는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개혁과정과 결과물에 살아 숨쉬는 ‘정신’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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