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좀비보다 무서운 현재 진행형의 현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되감기] 연상호 감독 ‘서울역’

수 년 전 사진가인 선배가 종로3가 지하철역 앞에서 찍은 사진을 봤다. 길 가장자리에 앉은 한 할머니가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려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면서, 자신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불러 세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오른손엔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선배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할머니는 자신의 손에 비닐봉지를 씌웠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씻지 못한 할머니의 손에 얼굴을 찌푸렸을까, 어느 날 종로3가를 걸어가고 있을 때 그 할머니가 내 옷깃을 잡아끈다면 나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부산행>의 프리퀄로 알려진 <서울역>의 첫 장면. 피 흘리는 목을 감싸 쥔 한 노인이 서울역 광장을 비틀대며 걸어간다.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던 두 청년의 시선 안에 노인이 들어온다.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네가 어서 가서 도와드려”, 한 청년이 달려간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윽, 냄새” 곧바로 몸을 돌려 친구에게 돌아가면서 말한다. “에이, 노숙자야.”

▲ <서울역>(2016), 감독 연상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쓰러진 이 노숙자를 도우려는 이는 동료 노숙자밖에 없다. 동료 노숙자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중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진통제를 ‘사기’ 위해 들른 약국에서마저 약사는 약을 사러 온 노숙자에게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이고 재수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쓰러진 노숙자는 곧 숨이 끊어지고 좀비가 돼 다른 사람들을 덮친다. <부산행>에서의 노숙자가 ‘이 상황에서 이 목숨까지 살려야 하는지’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와 같은 존재로 기능했다면, <서울역>에서 ‘노숙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외면 받은 노숙자는 이 인근을 재앙에 빠트리는 최초의 좀비로 세상에 복수한다.

노숙자가 좀비로 변하고 있던 시간, 가출소녀 혜선(심은경)은 여관비를 벌어야 한다며 원조교제를 강요하는 남자친구 기웅(이준)과 다투고 잘 곳을 찾아 서울역으로 간다. 하지만 좀비가 된 노숙자의 공격으로 서울역 인근은 아수라장이 된다. 노숙자들은 서울역 인근 경찰 지구대로 피신해 상황을 설명하지만 경찰들은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조용하라고 윽박지르며 폭력시위가 일어났다고 상부에 보고한다. 결국 지구대의 경찰들과 이곳으로 피신했던 거의 모든 노숙자들은 좀비떼를 피하지 못했고, 혜선은 한 노숙자와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을 친다.

일단 서울역 주변을 벗어나야 한다며 지하의 선로를 걸으면서 혜선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고, 노숙자는 자신에겐 돌아갈 집이 없다고 운다. 울면서 도착한 다음 역사엔 이미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은 좀비들만 드글대고, 좀비가 없는 다른 장소를 찾아 다시 선로를 따라 걷는 혜선과 노숙자의 뒤로 펼쳐진 전광판에선 용산에 들어설 최고급 아파트 광고가 번쩍인다.

같은 시각, 혜선의 아빠 석규(류승용)는 기웅이 올린 원조교제 글을 보고 찾아왔지만 혜선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혜선과 연락이 닿은 기웅은 장소를 정하고 만나기로 하지만, 도착한 장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누구도 오도가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차벽이다. 앞서 개봉한 <부산행>에서 언론을 통해 거짓 정보-좀비의 습격이 아닌 폭력 시위라는-를 퍼트리던 정부는 <서울역>에선 직접 시민들을 때려잡는다.

살려달라는 아비규환의 목소리들 가운데 배경 음악처럼 들려오는, 나른하기까지 한 여경의 해산 경고-여러분들은 불법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는 너무도 평온해서 공포스럽다. 결국 재난(좀비)의 중심에 있는 시민들은 서로를 돕다가, 결국 서로에게 잡아먹힐 뿐이다. 그리고 운좋게 살아남은 이들을 기다리는 건 ‘폭력’을 처단하는 경찰의 발포다.

▲ <부산행>(2016), 감독 연상호

<부산행>의 고등학생들이 “내 친구들이 아직 못 탔어요”(진희‧안소희), “미안해, 나만 빼고 다 못 탔어”(영국‧최우식)라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2년 전 그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는 죄책감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면, <서울역>에선 국민의 우려를 ‘괴담’과 ‘선동’으로 몰아가고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는 권리 행사를 ‘폭력’으로 규정하며 물대포를 쏘길 주저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국가 권력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겹친다.

동일한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그리하여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 (실사) 영화인 <부산행>과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만듦새와 화법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작법의 두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민주화 이전 군사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잊을 만하면 반복하는 국가의 폭력과 세월호로 대표되는 현실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금도 진행형인, 그 현실을 말이다. 특히 <서울역>에서 연상호 감독은 그런 현실의 장면들을 연속해서 툭툭 던져 보인다. 현실의 모습들을 엮어 가상의 재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괜찮은 걸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