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역 3번 출구 포장마차골목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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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역 3번 출구 포장마차골목 블루스
[시론] 전규찬 한예종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6.08.19 10:4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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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우선 이렇게 떡 붙입니다. 그리고는 아까 그곳에서 마음먹은 대로 글을 써재끼려 합니다. 김 기자, 저 오늘 좀 횡설수설할 겁니다. 네, 말복이 지났어도 미칠 듯이 더운 이 여름날 떡하니 대낮 막걸리도 한 통 걸쳤습니다. 냉커피 한 잔하고 냉수로 속을 씻어내도, 여전히 좀 알딸딸합니다. 그런 꼴로 글 쓰는 게 지면에 무례고 독자들에게 실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아냐 그냥 아까 들었던 생각을 날 것으로 옮기는 게 맞아.’ 되는 대로 계속 적어보겠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공덕역 언론연대 사무실로 향합니다. 이 무더위 꽤 긴 여행 다녀온 대표가 남은 두 활동가들에게 미안해 리트비아에서 산 초콜릿을 주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 저는 긴급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마포구청이 용역을 동원해 아현동 포장마차 골목을 철거하고 있다는 급한 소식입니다. 아, 젠장, 또 지랄 같은 일이 벌어졌군요. 마음이 급해집니다. 어쩌겠습니까. 초콜릿이 녹건 먼저 쫒아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지랖이 아니라도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저와 같은 심경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직접 가 본다고 과연 무슨 뾰족한 도움이 되겠습니까. 제가 오늘 그곳에서 할 게 대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야 늘 이런 식으로 대충 사태가 정리되어갈 때 그때서야 겸연쩍게 모습을 드러내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그런 게으른 존재들이 아닙니까. 제가 현장에 막 도착했을 때 이미 상황은 다 끝나 있었습니다. 한 40~50미터 학교 담벼락에 주르륵 붙어있던 포장마차, 아니 컨테이너들은 다 뜯겨나간 상태였습니다. 그곳에는 대신 큼지막한 화분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들어차 있었습니다. 환경미화, 그렇다고 합니다.

경찰차를 위시해 여러 대의 차량들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몇몇 주민이 웅성대며 지켜보고 서 있습니다. 이게 평화인가요? 철거에 맞서던 포장마차 주인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연두색 경광복 입으신 청소부 아저씨들이 열심히 도로를 물청소합니다. 살수차가 거리를 깨끗이 씻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큼한 음식 쓰레기 냄새가 말끔히 가시지는 않습니다. 아, 김 기자, 이건 결코 오물이 아닙니다. 가실 수 없는 과거의 자취가 오롯이 냄새로 남습니다. 왈칵 슬픔을 토하게 하는 과거의 자국, 기억의 흔적입니다.

▲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거리에 대한 강제철거가 이뤄지고 있다. ⓒ페이스북 ‘아현포차지킴이’ 갈무리

급히 청소 중인 현장에는 이제 다수의 구청 직원들과 용역들만 남아 있습니다. 이곳저곳 꾸역꾸역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모여 상황 종료의 박수를 치기에 바쁩니다. 묘한 승리의 감격을 저는 저들의 얼굴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대체 뭘 이뤘다는 걸까요? 누구를 패배시킨 것이죠? 그 승리의 의미는 과연 뭘까요? 우르르 대기 중이던 전세관광버스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부르릉 저들이 떠나고, 이제 횅하니 빈 거리에 차만 쌩쌩 다닙니다. 아니, 전기시설 고치는 한전직원과 풀 뽑는 취로사업 참여자 몇 분이 주변에 남아 있군요.

김 기자, 이제는 저도 슬그머니 현장을 떠나야 할까요? 기자 한 명, 카메라 하나 없는 이곳을 말입니다. 아뇨, 그럴 수 없습니다. 저렇게 쫓겨나고 이렇게 떠나가도, 저는 도무지 발길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어보고, 아무에게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뭐가 이렇듯 저를 붙드는 것일까요? 대체 오늘 여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뜯겨나간 이들은 누구며, 다들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누가 뭐 때문에 이 사람들을 쫒아내나요? 이 아현동 포장마차골목이란 데는 과연 어떤 곳이었나요?

아, 그때입니다. 이런 생각을 잠시하며 주변을 휘둘러보고 있을 때, 김 기자, 저는 보고 말았습니다. 담벼락 아래, 줄지어 선 화분들 사이, 사라져버린 20년 일터이자 삶터 바로 그곳에 우뚝 서, 34도의 폭염 아래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한 아주머니의 망연자실한 얼굴입니다. 아무 저항의 몸짓도, 어떤 오열의 일그러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의 뺨을 따라 주르륵 비 아닌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제대로 소리 지르지 못하고, 쉽게 원망도 표하지도 못하는 나약한 아낙의 너무나 깊은 슬픔입니다. 찢어질 설움의 눈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억울함이 그렇게 절로 터져 나옵니다. 호남, 충청 변방에서 뿌리 뽑힌 이방인들. 서울바닥에 바득바득 터 잡으려 애써왔지만 아직도 이리저리 내 팽개쳐지기만 하는 이 땅의 약한 존재들. 저 미소한 벌레들의 속내는 이렇게밖에 표시되지 않습니다. 꺼이꺼이 통곡도 이제는 아닙니다. 김 기자, 이와사부로 코소는 뉴욕과 거리, 지구에 관한 자신의 에세이 책자 제목을 <죽음의 도시, 생명의 거리>로 뽑았더군요, 아닙니다. 서울이라는 난개발,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의 왕국에서 거리에는 온통 죽음과 추방, 우울과 절망이 가득합니다.

▲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거리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한 상인이 주저앉아 울고 있다. ⓒ페이스북 ‘아현포차지킴이’ 갈무리

김 기자, 이런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저는 아직은 살아남은 반대편 담벼락의 후진 술집을 찾았습니다. 풍년집. 곱창볶음, 오징어볶음, 돼지껍데기 같은 안주를 3000원씩에 내놓는, 허리 꺾인 전라도 할미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식당입니다. 막걸리를 시킵니다. 매콤한 냉면이 안주입니다. 요리하면서, 가끔은 밖을 내다보거나 이웃을 맞이하면서도, 자꾸만 푸푸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온데 그래사쬬?” “못난 놈은 개미새끼보다 더…” 기웃대는 주민들의 입에서 ‘지랄’과 같은 욕설이 연신 쏟아집니다. 그래서 이들은 못된 욕쟁일까요?

딸깍. 컨테이너 식당의 전기가 나가버립니다. 호박 넝쿨 타고 오른 전선을 정비하다 누가 어딜 잘못 건드린 모양입니다. 철거의 후유증인가요? 수상한 징후입니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두려운 힘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철거 공권력, 재개발 자본은 언젠가 이쪽으로도 승리의 진격을 재개하지 않을까요? 그때 이 풍년집 늙은 주인장은 뭘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눈물의 설움만 남기게 될까요? 누가 그녀에게 귀 기울여 줄까요? 꼬부랑 할미의 푸푸 한숨은 기약할 수 없는 공포의 미래, 가늠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을 내포하는 게 아닐까요?

아, 제가 그녀를 위해 할 일은 뭘까요? 아현동 후미진 거리의 서글픈 사정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아현동이 뭐 특별한 곳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곳의 사정이 전국 온 데의 정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이곳의 일은 여러분이나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막걸리 걸친 제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기분이 처지고 마음은 우울합니다. 그래도 이제 언론연대로 가 사랑하는 운동장 식구들과 초콜릿을 나눠먹고 무엇보다 이 갑갑한 심경을 글로 바로 적어놔야 하겠습니다. 엉터리 글이 되더라도, 김 기자, 봐주겠지요?

풍년집을 나선 저는 이제 뙤약볕 아래 아현역 3번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 사이 늘어선 컨테이너 가게들로 마지막 눈길을 보냅니다. 남은 고물들의 인상을 기억에 남깁니다. 거기엔 간판조차 없습니다. 에덴화원. Sale옷. 만물. 자연식품. 생활용품 DC점. 오징어떡볶이. 커피토스트. “번데기 냉장고에 있습니다.” 바퀴발레 완전박멸. 고추장 된장 간장 쌈장. 이런 경고문도 붙어있습니다. “현재 장소의 토지는 마포구 소유입니다. 누구든지 관할관청의 허가 없이 간이 벽을 훼손하고 출입 시 관계법에 의거 고발 조치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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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07 14:03:40
정신차리셈 아무 살길을 안주고 저사람들을 쓸어버렸다는게 글의 요지고 그래서 비난받아야하는거지 님들아 ㅋㅋㅋㅋ

애효 2016-08-23 12:13:16
아현초 학부모입니다. 아현포차는 아현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어 불법으로 수십년간 술 팔아왔어요. 교수님 아이가 아현초 다니고, 아현초의 현실을 목도하셨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불법 포차편만 드실 수 있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그리고 아현초에는 아파트에 안사는 아이들이 대다수입니다.

2016-08-20 16:17:50
감성돋는글 잘봤습니다.
에휴.. 여론이란게 이렇게 무섭네요

ㅋㅋㅋ 2016-08-20 10:24:23
교수님. 그렇게 마음이 아프면 본인이 사시는 아파트안에서 저분들 장사 하게끔 좌판을 만들어 주심이 어떨까요? 국공유지 불법점거 40년 하신분들 옹호하는 방법도 아주 가지가지네요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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