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로’ 막는 언론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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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 막는 언론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인터뷰] ‘사드 보도지침 논란’ 징계 절차 항의 ‘본사행’ 동참한 KBS 지역총국 기자 A씨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6.08.20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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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감사를 받는 동안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열 편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회사에 안기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아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대구방송총국 기자들이 이번에 한 일은, 그나마 추락해가던 KBS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부당한) 취재 지시에 대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2년 전 세월호 사건 때처럼 왜곡된 보도가 계속될 거다.”

KBS대구방송총국의 이하늬 기자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 광장에서 열린 KBS 전국기자협회 비상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기자는 지난 7월 ‘성주 사드 반대 시위에 외부인사 확인’이라는 본사의 취재 지시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특별감사를 받은 4인 중 한 명이다.

앞서 전국기자협회는 7월 20일 ‘취재 현장 무시한 사드 공안몰이 거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기자협회는 당시 성명에서 현장 기자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사드 배치 반대 시위와 관련해 본사에서 ‘외부세력 개입’에 대한 리포트를 제작하라고 하는 등 ‘부당한 취재 지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KBS 사측은 해당 성명 내용과 관련 있는 기자들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KBS 전국기자협회가 13년 만에 비상총회 개최를 결정하고 기자들이 폭염 속에서도 이날 ‘본사행‘을 선택한 이유다.

전국기자협회는 100여 명이 모인 이날 비상총회에서 사측의 ‘부당 징계’ 시도 철회를 요구했고, 이 자리엔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회장, 언론노조 대구MBC 지부장 등도 참석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PD저널>은 이날 비상총회에 참석한 KBS 전국기자협회 소속 기자 A씨를 통해 현재 KBS지역총국 기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느끼는 밑바닥 정서에 대해 들어 봤다.   

▲ 20일 오후 KBS 지역총국 기자들로 구성된 전국기자협회가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개념광장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사드 보도지침 논란’ 관련해 KBS 회사 측에서 진행 중인 기자들에 대한 징계절차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PD저널

- 기자들은 부당한 취재지시가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회사 측에선 이를 부인하고 있다. 보도지침 같은 건 없었다는 건데, 기자들은 이를 믿을 수 없다는 건가.

“지역기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황(사실)을 보자. 지난 7월 16일, 성주를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를 향해 달걀과 물병 등이 날아든 상황이 있었다. 당시 (KBS대구방송총국의) 기자들은 누가 (달걀 등을) 던졌는지 확인이 되지 않은 만큼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보도는 안 된다고 계속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달 18일 <문화일보>와 <연합뉴스> 등에서 ‘성주 시위에 외부세력 개입 확인’ 보도를 냈고, 기자들에게 해당 내용으로 리포트를 만들라는 취재 지시가 내려 왔다고 한다.

그런데 기자들이 취재를 해 보니, 경찰도 외부세력 개입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고, 성주군민들 또한 부인하는 상황이라고 하고, 현장의 기자들은 그래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지시가 계속 내려왔고, 기자들은 어떤 근거로 외부세력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결국 그 내용으로 리포트(▶[링크] 7월 19일 KBS <뉴스9> ‘경찰 “성주 시위 외부단체 인사 참가 확인”’)가 나갔다는 게 벌어진 사실이다.”

- 당시 대구총국 취재부장은 KBS의 보도 때문에 화가 난 성주군민들이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고, 심지어 욕을 할만큼 비협조적인 상황이란 사실을 알고 리포트 제작에 직접 나섰다고 하던데, 이런 상황을 통상적인 걸로 볼 수 있을까.

“당시 대구총국 취재부장은 ‘주민들의 반론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며 직접 리포트를 했다고 전해졌다. 손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는데 말이다. 대구총국 취재부장은 성주군민들도 KBS 시청자이니 공영방송으로서 정부의 입장뿐 아니라 성주군민의 목소리 또한 대변하는 게 맞지 않냐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데스크가 리포트를 했겠나 싶었다. 

*KBS 전국기자협회는 7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네트워크 부장은 ‘리포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윗선의 지시를 인정하고, ‘KBS의 색깔이 있는데’라는 말도 하며 윗선의 개입을 합리화하기까지 했다”고 밝히며 “취재부장이 이렇게 폭발한 건(직접 리포트를 한 건) 며칠 간 (이런 식으로) 누적된 부당한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과정 속에 전국기자협회가 내부게시판에 ‘이런 식의 취재 요구는 맞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을 올렸고, 지역 기자의 한 명으로 ‘윗선의 객관보도를 가장한 공안몰이에 지역국 기자들은 가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성명 속) 말에 동의했다.

사실 사드 배치 관련 보도 논란 이전에도 유사한 논란들이 지역에서, 서울에서 존재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2년 전 세월호 사건 때에도 보도본부의 취재 지시 관련해서 (서울과 지역총국)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 많은 마찰이 있었다.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 하지만 이후 성명이 게시판에서 사라졌다. 당시 회사 측에선 성명 내용이 명백히 사실과 달랐다고 주장하며 전국기자협회가 성명을 게시판에서 자진 철회 했다고 밝혔다. 성명의 자진 철회를 근거로 해당 성명을 인용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성명이 올라간 직후부터 끊임없이 노준철 당시 전국기자협회장에게 ‘성명서가 외부로 알려져 향후 문제가 커질 수 있다’거나 특정 문구인 ‘보도지침’이나 ‘윗선의 문제’라는 표현 등을 문제 삼는 등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들어왔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일부 표현이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자칫 쓸데없는 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사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진해서 성명을 내린 것으로 안다.”

- 성명을 내렸는데, 회사는 이후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전 협회장이 당시 사측으로부터 ‘성명을 내리면 특별감사는 없을 것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내부에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성명 내용을 인용한 기사들이 나왔고, 7월 22일에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성명 내용을 인용해 KBS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그날 밤 전국기자협회에 대한 특별감사 소식이 전해졌다. 노준철 전국기자협회장, 대구방송총국 보도국장, 취재부장, 전국기자협회 대구 지회장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내부 게시판에 성명을 올린 게 잘못인가, 대구방송총국 취재부장이 성주군민들의 입장을 리포트에 담아 뉴스의 질을 높인 게 어떻게 잘못일 수 있나, 이런 문제제기들이 지역총국 기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 20일 오후 KBS 지역총국 기자들로 구성된 전국기자협회가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개념광장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사드 보도지침 논란’ 관련해 KBS 회사 측에서 진행 중인 기자들에 대한 징계절차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PD저널

- 이보다 앞서 <기자협회보>에 ‘이정현 녹취록’ 관련 KBS의 보도태도를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한 정연욱 기자에 대해서도 부당전보 논란이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에도 KBS에 어려운 시기들은 있었다. 하지만 ‘땡전뉴스’ 시절에도 기자들이 기사에 대해 단체로 간부들이나 사장을 찾아가서 ‘이건 아니지 않냐’고 항의를 하면 그 의견이 수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도 내부에 언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문제제기를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징계를 하겠다며 목소리 원천 차단하려는 상황이다. 다른 업종도 아닌 언론에서, 그것도 공영방송에서 이처럼 내부 언로를 막아버리려는 듯한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얘기조차 쓰지 못한다면 사내게시판이 왜 존재하는가 싶다.”

- 지금 지역총국 기자들의 ‘본사행’을 부른 ‘사드 보도지침’ 논란을 비롯해 ‘이정현 녹취록’ 등에 대한 보도 태도 등 KBS의 보도, 그리고 무(無)보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KBS의 일원으로서, 일련의 상황에 대해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사실과 진실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한) 보도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점점 더 KBS 공신력과 영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우려한다. 지난 200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KBS는 신뢰도 1위, 공영성 2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조사에서 KBS의 신뢰도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다.

*<기자협회보>가 전국 기자 3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KBS의 영향력은 2014년 같은 조사에서 46.3%였으나 2015년 31%, 올해 20.7%로 2년만에 반토막이 났고, 신뢰도도 2014년과 2015년 각각 12.9%, 13.3%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3.3%로 줄었다. 

물론 미디어 지형의 변화에 따라 언론의 신뢰도 등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KBS 보도를 둘러싼 논란들, 한 쪽의 ‘프레임’에 갇힌 보도라는 논란들이 KBS의 신뢰도와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준 것 아닌지, 내부 기자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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