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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2 17:04
  • 수정 2016.08.25 18:22

“의상미술 매력은 새로움…좁아지는 정직원의 문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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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스태프 연속 인터뷰] ② MBC아트 의상미술부 직원 B씨

한 편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까지는 PD와 작가의 역할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수백 배 많은 인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연출과 대본, 이것을 완성시켜주는 음악과 조명, 그리고 배경은 방송이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렇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방송계에 대한 꿈을 꾸고 있지만, 그에 비해 좀처럼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방송계에 들어와 마주하는 현실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고 들려올 뿐이다.

수많은 방송 스태프들은 어떤 마음으로 처음 방송 현장에 발을 디뎠을까. 또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제작 현장에서 어떤 이들이 얼마만큼의 땀을 흘리고 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 보기로 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께서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한 번쯤 이들의 노고에 대해 떠올릴 수 있길 바라본다.

방송스태프 릴레이 인터뷰 두 번째 주인공은, MBC아트 의상미술부 직원 B씨다. 인터뷰의 특성 상 방송 스태프의 처우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고, 현실에서 이런 부분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사극에서 현대물, 주인공에서 엑스트라까지

의상미술팀은 드라마 출연진의 의상을 모두 관리한다. 눈에 띄는 주인공의 의상뿐 아니라, 엑스트라와 보조 출연자 의상까지 준비한다.

본격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연출 PD 등과의 협의를 통해 모든 인물의 스타일링을 결정한다. 주요 배우들의 경우 드라마 캐릭터 콘셉트에 맞추는 것은 물론, 배우의 원래 이미지도 고려한다. 연기자의 체형에 맞춰 ‘최상’으로 멋지고 예뻐 보이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배우 캐스팅이 완료된 후 작업에 들어가면 훨씬 수월하지만, 여건 상 배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캐릭터 스타일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 스타일리스트가 있는 배우들의 경우에는 이들과의 협의도 진행한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많다. B씨는 “어떤 장소가 있으면 그곳의 그림을 만든다. 예를 들어 커피숍이다 하면 종업원 유니폼이 필요할 거고, 병원이다 하면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가 입을 옷까지 필요하지 않겠나. 이렇게 화면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의상을 챙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촬영 현장에서 진행해야 하는 일도 많다. 드라마 촬영은 보통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하기보단 장소에 맞춰 진행된다. 따라서 같은 장소지만 드라마 속에서의 날짜가 달라지는 경우, 의상도 그에 맞게 갈아입어야 한다. 반대로 촬영 장소가 바뀌면 같은 날짜 분의 촬영은 같은 의상으로 맞출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그렇기에 의상 팀은 항상 촬영 현장에서 대기한다.

▲ 의상을 디자인하는 장면 ⓒMBC아트

동시에 매회 촬영에 필요한 의상도 수급해야 한다. 의상을 수급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배우의 개인 스타일리스트가 가져오는 옷 중에서 고르기도 하고, 적절한 브랜드를 검색해 직접 구매하거나 협찬도 받는다. 사극의 경우 의상을 따로 디자인해서 제작하기도 하고, 사극이 아니라 하더라도 드라마에서 의상의 어떤 부분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거나 디테일이 필요할 경우에는 직접 제작을 하기도 한다.

B씨는 “사극과 시대물, 현대물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 다르다. 사극의 경우에는 심지어 길거리 행인의 버선까지도 우리가 챙긴다. 같은 장르 안에서도 드라마에 따라 필요한 일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10년 차’도 정직원이 되지 못하는 현실

B씨는 MBC아트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일반 의상 브랜드 디자이너로 2년 간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채용 시험을 보고 들어오게 됐다.

그는 방송 일의 매력으로 ‘새로움’을 꼽았다. 사극과 시대물, 현대물까지 장르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패턴 자체는 비슷할지 몰라도, 하나의 드라마가 끝나면 또 다른 드라마를 맡기 때문에 그 특색에 따라 바뀌는 매력도 있다. 또 드라마 마지막회가 방영되고 나서 느껴지는 보람도 크다. 특히 드라마가 잘된 경우, 혹은 의상이 특별히 주목받은 경우에는 뿌듯함이 더 크다.

하지만 일하는 현실은 고되다. 드라마 촬영 일정에 따라 모든 게 정해지다보니 규칙적인 생활과 개인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다. 밤샘 작업은 기본이다. 일일드라마는 세트촬영 전 날, 미니시리즈는 방송 당일 날에야 겨우 쉴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1~2주 정도의 휴식을 가진 후 바로 다음 작품을 시작한다.

B씨는 “미니시리즈는 여전히 거의 라이브다. 야외촬영은 새벽 5시 전부터 준비해야 하고, 며칠 동안 연속해서 밤샘 촬영을 하기도 한다”며 “요샌 날 한 번 새고 나면 이 일은 못 하겠다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의상을 담당하는 인력 자체가 워낙 부족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120부작을 넘어가는 일일드라마에 의상 관련 스태프는 단 한 명이다. 미니시리즈는 두 명에서 세 명, 사극은 다섯 명에서 여섯 명 정도의 의상 스태프만이 모든 일을 관리한다.

B씨는 “(인력을 늘리기에는) 예산이 적다. 시대에 맞춰 제작비가 오른다고 해도, 물가와 비교하면 나아지는 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2000년대 이후 드라마 제작비에서 배우 출연료와 작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어서면서 제작 스태프와 관련한 예산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 의상 콘셉트 논의를 위한 회의 장면 ⓒMBC아트

그래도 B씨 같이 정직원이 된 경우에는 수당도 만족할 만큼 받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복지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와 계약직으로 연차가 쌓였음에도 정직원이 되지 못한 스태프가 훨씬 더 많다는 게 문제다.

MBC의 경우 의상 쪽은 하청업체 한 곳이 정해져 있다. 비율은 보통 7대 3에서 6대 4 정도(하청업체 비율이 6~7)다. 이들은 정직원이 받는 복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에도 시달린다. 무엇보다 임금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식 채용은 좀처럼 이뤄지질 않는다. B씨는 “현실적으로 언제 직원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이후 MBC아트에서는 신입공채는 물론 경력직으로도 의상미술팀 정규직 직원을 채용한 적이 없다.

심지어 10년 차 이상이 됐음에도 정직원이 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방송 현장에 현존하면서 경력이 찬 친구들이 많다. 같이 일하면서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내가 저 나이 연차일 때 그래도 (생계를 비롯한 삶의 부분들을) 영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저 친구들은 그런 게 없다. 이들이 빨리 정직원이 돼서 그런 부분들을 같이 공유하면서, 같은 회사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가 방송 산업 내에 너무 고착돼있다는 게 문제다. MBC뿐 아니라 KBS, SBS, 기타 방송사의 사정도 다를 게 없다. B씨는 “하지만 그런 부분을 어디에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할 곳도 마땅치 않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외주제작과 사전제작, ‘변화’하는 방송 환경

방송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의상 분야도 함께 변화했다. 특히 외주제작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협업하고 조율하는 부분이 많이 달라졌다. B씨는 “기존에는 본사와 다이렉트로 의견조율을 하면 됐었는데 이제는 제작사의 돈과 시간, 본사의 입장 등을 모두 조율해야 한다”며 “한 마디로 신경 쓸 게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또 예전에 비해 배우들의 개인 스타일리스트가 많이 생겼다. 여기에 소위 ‘월드스타’가 탄생하면서 배우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부분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B씨는 “한마디로 ‘급이 다른 배우’는 (의상 부분에서도) 모시기에 바쁘다.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관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로 프라이드가 있으니 마음에 안 들어도 존중하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일하는 게 줄어들진 않는데, 희한하게 우리가 서는 자리가 조금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물론 배우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잘 나가는 배우’라 해도 어떤 사람은 의상 팀의 조언을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고, 사람에 따라 본인의 스타일대로 입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

▲ 의상 사이즈를 재는 장면 ⓒMBC아트

최근에는 사전제작이 늘어나면서 촬영 여건이 조금 나아진 부분도 있다. 기존의 ‘쪽대본’ 녹화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완벽한 사전제작보다 반 사전제작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이런 형태의 제작이 늘어날수록, 적어도 밤을 새서 방송 시간에 맞춰야 하는 부분이 줄어들어 수월한 부분이 있다.

의상을 전공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방송일은 전문적인 분야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의상 전공자 중에서도 이쪽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방송 촬영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곳에 발을 들인다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일이 많아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B씨가 의상미술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긴 이유다.  

“전문적인 부분 이외에도, 밝고 활달하고 센스 있는 사람이 잘 맞는다. 일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고, 촬영 현장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에 현장 대처능력과 상황 대처능력이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이가 있는 배우 선생님께 무뚝뚝하게 ‘가서 갈아입고 오세요’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센스가 처음부터 갖춰져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잘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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