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전시하듯 ‘아동 학대’ 내용 보도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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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 강조하며 고정관념 확산…‘아동학대 사건 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

“계모 김씨(38)씨와 친부 신모(38)씨는 생리현상 등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원영이에게 ‘뒤돌아‘, ‘쳐다보지 마‘라고 명령했다. 매질과 손찌검, 락스·냉수체벌 등 작은 체구(키 112.5cm·몸무게 15.3kg)인 원영이에게 가해진 가혹한 학대도 주로 이곳 화장실에서 이뤄졌다. 원영이에게 화장실은 ‘생지옥‘이었다.”

지난 2월, 7살 원영이가 친아버지와 의붓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사건에 대한 한 일간지의 보도 내용 일부다. 당시 언론에서는 연일 원영이의 생전 사진, 원영이가 학대 당했던 공간, 원영이가 암매장 당한 장소 등을 상품 판매하듯이 앞다투어 보도하며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심지어 ‘사건의 가해자인 원영이 의붓어머니가 게임 중독자였고, 유치장에서도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더라‘는 식의 가십을 쏟아내기도 했다.

지난 23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소통학회 공동 주최로 ‘아동학대사건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토론회가 국회 도서관에서 열렸다. 표창원 의원은 “최근 아동학대 언론보도는 피해자의 처참한 모습, 가해자의 악마같은 특성들을 상품화하고 소비하고 그런 부분을 통해서 시청자수, 구독자수, 클릭자수를 높이고 있는 양상”이라며 “이런 모습으로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우려돼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 3월 11일 채널A <종합뉴스> 보도 ⓒ채널A 화면캡처

‘더 자극적으로’ 언론의 폭로 경쟁…‘계모’ 강조하며 고정관념 확산

표 의원의 말처럼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소모적이다. 정의철 상지대 언론광고홍보학부 부교수는 “사람들은 범죄에 많이 노출될 수록 범죄에 대한 더 큰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끼기 마련인데,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지나치게 아동학대 범죄 사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범죄보도의 원래 목적인 범죄예방보다는 모방범죄나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위험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정의철 교수는 언론의 이러한 행태를 ‘경마 저널리즘‘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미디어 시청률 지상주의(rating mindset)‘를 지목했다. 그는 “한국 언론의 현 주소는 남보다 앞서 보도하는 것을 중시한 나머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하면서도 그에 대해 자성할 시간은 갖지 않는 경마 저널리즘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 언론이 경마 저널리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진실 추구나 사건의 맥락, 대안 제시를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시청률에 집착하는 이른바 ‘미디어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며 “언론은 시청률이나 화제성만 추구하다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무조건적 폭로를 하게 된 것이고 이 때문에 아동학대 피해자와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초래됐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가 언급한 대로 언론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보도는 피해자, 가해자 모두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대다수의 언론은 CCTV 영상 등 관련 자료들을 여과없이 노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 아동의 이름, 나이, 거주지, 학교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수준의 피해자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에 대한 법률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신수경 변호사(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사업지원팀)는 “피해 아동들에게는 학대 사실 자체가 큰 상처인데, 피해 아동의 신상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은 (피해 아동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이어 “아동학대 보도가 아동학대 근절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려면 아동학대에 관한 여러 가지 사례를 엮어서 특정인을 알 수 없도록 하는 한편, 일련의 사례들을 통해 개별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가해자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는 “원영이 사망 사건을 보도한 다수의 언론은 가해자인 의붓 어머니를 두고 ‘계모‘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이는 소수자에 대한 주류의 인권 침해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건의 맥락을 보지 않고 개인적 상황에만 치중하는 ‘일화적 프레임‘에 의한 보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화적 프레임에 의한 보도로는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제대로 된 대안 제시가 불가능하다“며 “한국 언론이 사회적 맥락을 짚는 ‘주제적 프레임‘에 입각해 아동학대 보도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아동학대 관련 인권보도 가이드라인 이미 존재

또한 학대 아동 등의 인권을 보호하는 보도를 위해 이미 언론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아동학대 보도 가이드라인 등의 준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실제로 언론은 이미 △신문윤리 실천 요강 △방송심의규정 △한국기자협회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유니세프 아동취재 가이드라인 등 이미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올바른 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 35조 2절은 ‘아동보호 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 행위자, 피해아동, 고소인, 고발인 또는 신고인의 신상 혹은 이들을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사진 등을 신문 등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매체를 통하여 방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문제는 언론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거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용욱 경찰청 여성계장 경정은 “경찰에서도 아동학대 사건보도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언론과 경찰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를 위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도서관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한국소통학회 공동 주최로 '아동학대사건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PD저널

이날 토론회에서는 아동학대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서 언론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론이 보도에서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지에 대한 제안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미 존재하는 아동학대 예방 및 방지, 처벌 등에 관한 법·제도적 장치들이 유명무실한데, 언론이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013년 울산광역시 울주에서 아동학대로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 이후 아동학대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2014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이 시행되고, 2015년 개정됐다. 지난 3월 29일에는 ‘아동학대 방지대책‘이 발표되기도 했다.

관련 제도들이 마련된 이후 아동학대 의심사례가 늘어나는 한편 신고율과 학대아동 보호율도 높아졌지만, 전문가들은 “신고된 아동학대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팀장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아동 1000명 당 학대 피해아동 발견율은 1.1명(2014년 기준)으로 미국(9.1명)이나 호주(17.6명)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인 데다가, 아동 보호체계가 신고조사를 기반으로 한 체계인 탓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피해 아동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 팀장은 이어 “대다수의 아동학대는 가해자가 부모이고, 한국에서는 훈육과 아동 학대의 경계까지 모호한 탓에 실제 발생 건수에 비해 발견되거나 신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을 수 밖에 없다“며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서구 유럽 국가들처럼 훈육 과정에서의 체벌도 아동학대의 범주에 넣을 필요성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언론이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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