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지침,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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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보도지침 폭로했던 김주언 전 KBS 이사 “경영진 통해 압박하는 권력, 기자들 자발적으로 따를 수밖에”

“이런 식으로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 그게 맞습니까? 아니 그래서 그 사람들이…” (6월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7개 언론단체가 공개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국장의 통화 녹취록 중 이 전 수석의 말)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는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주최로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주언 전 KBS 이사는 “30년 전 제5공화국 시절에 정부가 언론 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일명 ‘보도지침’이라는 것을 하달한 일이 있었는데, 이정현 전 수석의 KBS 세월호 보도개입 사건을 보니 그 보도지침이 사라지지 않고 유령처럼 떠도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보도지침이란 제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각 언론사에 은밀하게 시달했던 일종의 보도 가이드라인을 일컫는 말로, 1986년 9월 해직된 언론인들이 만든 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월간 <말> 특집호를 통해 폭로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 김주언 전 KBS 이사가 지난 6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 보도를 빼 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 공개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언론노조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 전 이사는 <말>에 보도지침 내용을 넘겨준 당사자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 전 이사는 그해 12월 국가보안법 등 위반으로 구속됐고 1995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김 전 이사는 지난 6월 KBS 이사 시절(2012~2015년) 인연을 맺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을 설득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가 KBS 보도에 개입한 정황을 담은 녹취록 공개를 이끌어냈다.

30년 전 보도지침과 지난 2014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일은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정치권력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닮은 측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 전 이사는 두 사건에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전 이사는 “30년 전에는 언론인들이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물리적 폭력이나 사법 조치 같은 위협이 있었으나 요즘은 그런 것은 없다”며 “그러나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말했듯, 권력은 언론사 경영진을 통해 정부에 비협조적인 기자들에게 징계성 인사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정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KBS 세월호 보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정현 전 수석은 “홍보 담당자로서 통상적인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런 발언에 대해서도 김 전 이사는 “통상적인 홍보 업무라지만 그것이 청와대 정도 되는 권력자에 의해서 행해진다면 상대방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분명한 언론 통제의 일환”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이사는 “보도지침 폭로 사건으로부터 30년이 흘렀는데도 (청와대의 KBS 세월호 보도 개입 사건을 보면) 한국의 언론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거나 이제는 언론자유가 보장이 된다고 과감하게 선언하기 어렵다”며 “심지어는 한국 언론 상황이 30년 전으로 후퇴해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고, 이에 대해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 24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주최로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보도지침 폭로 당사자이자 지난 6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통화 녹취록 공개를 주도한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이날 세미나에서 정필모 KBS 연구위원은 “KBS는 이사회에서 사장 임명을 제청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사회 구성을 보면 여당 추천 이사가 7명인 반면 야당 추천 이사는 4명에 불과해 사실상 KBS 사장 선임이 청와대나 여권의 의사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청와대가 KBS에 분명한 우월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고 그런 입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이는 명백한 언론 통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 2부장은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KBS 이사회의 여야 구성을 6대 5, 아니면 그 이상으로 바꾸는 식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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