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에까지 깃든 세월호의 이미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세월호, 모든 콘텐츠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제 물의 이미지만 떠올려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되나보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강이나(류화영)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려 떠다니는 가방에 의지해 겨우겨우 생존하게 된 것. 하지만 그 때 한 소녀가 살기 위해 악착같이 가방에 매달리자 둘은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결국 소녀는 물 속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강이나는 살아남았다.

물론 이 장면이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염두에 뒀다고 말하긴 어렵다. 왜 배가 가라 앉았는가 같은 상황 설명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청춘시대>라는 작품에서 강이나의 이 어린 시절 사고는 대단히 튀는 대목이다. 굳이 왜 배가 침몰하고 물에 빠지는 사고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청춘시대>는 강이나가 죽은 소녀의 아버지 오종규(최덕문)와 만나 화해하는 모습을 담았다. 마치 강이나가 딸을 살해한 것인 양 분노했던 오종규는 결국 그것이 하나의 사고였고, 만일 딸이 살아남았다 해도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가라”고 했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강이나는 오종규를 만나게 되면서 마치 없었던 일처럼 묻어뒀던 그때의 사고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미래를 꿈꾸지 않고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막 살아가는 자신을.

▲ JTBC <청춘시대> 8월 13일 방송 ⓒJTBC 화면캡처

이 짤막한 강이나의 에피소드는 아마도 청춘들의 경쟁에 대한 의미를 담아냈을 게다. 즉, 서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밟고 올라서야 하는 지독한 현실을 침몰한 배에서 뛰어내려 가방 하나에 의지해 두 청춘이 생존 경쟁을 벌이는 장면을 통해 그려내려 한 것이다. 그래서 한 소녀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 소녀의 아버지는 절망했으며, 살아남은 소녀는 ‘미래 없는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가게 됐다.

모두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인데, 그러고 보면 이들 중에는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가해자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가해자는 다름 아닌 저 뒤편으로 침몰하고 있는 배다. 누군가에 의해 침몰하고 있어 무수한 희생자를 낳은 배. 이 에피소드가 구체적으로 세월호를 겨냥하고 있지 않지만,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에 피해자들만 있고 가해자는 저 뒤편에 서 있는 정황 때문이다.

과연 사회적 트라우마는 어떻게 콘텐츠에 반영될까. 최근 등장한 많은 콘텐츠들 속에는 저 <청춘시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트라우마들이 자꾸만 발견된다. SBS <원티드>를 쓴 한지완 작가는 2014년 이 작품의 초고를 쓰던 와중에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는 엄청난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고 했다. 현실이 작품보다 더 처참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원티드>는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우리네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등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 영화 <터널> 스틸컷

tvN <응답하라 1988>을 연출한 신원호 PD는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쌍문동 골목의 따뜻한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하려한 기저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그 국가적인 트라우마 속에서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작게나마 어떤 위안과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다는 것.

tvN <기억> 역시 아이의 죽음을 덮음으로써 잘 살아가고 있던 한 변호사가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걸 안 다음 그 사실을 깨닫고 진실을 규명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 작품을 보며 세월호가 떠오른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와 이를 덮으려는 시도들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를 이 작품이 에둘러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시대>부터 <원티드>, <응답하라1988>, <기억>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이 은연중에 세월호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건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올 여름 영화 시장을 강타한 <부산행>, <터널> 같은 영화가 모두 재난 상황을 통해 또 다른 세월호의 기억을 환기시킨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덮는다고 덮여지는 게 아니고, 없었던 일처럼 살아간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될 수도 없다. 그걸 직시하지 않는 한, 진실은 콘텐츠들을 통해 그 트라우마의 얼굴을 계속 들 게 될 것이다. <청춘시대> 같은 청춘의 현실을 담는 드라마에서조차 떠오르고 있으니.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