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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12:00
  • 수정 2016.09.01 00:14

“책임감 때문에 놓을 수 없었던 ‘훈장’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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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훈장과 권력’, KBS에서 시작했지만 ‘뉴스타파’에서 완성한 최문호 기자

지난 7월 28일부터 이달 18일까지 4회에 걸쳐 보도된 <뉴스타파>의 해방 71년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4부작에선 역대 정부가 독재와 친일 세력에 훈장을 내리는 ‘서훈 행위’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대한민국의 서훈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할 수 있었던 ‘훈장’이라는 아이템에 대해 10년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기자가 있다. 바로 최문호 기자다. <PD저널>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최문호 기자를 만나 왜 ‘훈장’에 관심을 가졌는지, 또 이 취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등의 얘기를 들어봤다.

▲ 〈훈장과 권력〉을 취재한 <뉴스타파> 최문호 기자 ⓒ뉴스타파

재판까지 하며 72만건의 서훈 데이터를 얻고 취재에 들어갔지만…

최문호 기자에게 ‘훈장’이라는 아이템이 다가온 건 2005년이었다. “2005년에 김용진 기자(현 <뉴스타파> 대표)가 <KBS 스페셜-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링크)를 제작했는데, 그걸 통해서 “우리나라 훈장 문제도 다뤄 볼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당시 KBS 탐사보도팀은 일본 국립 공문서관에 보관된 일본 내각 상훈국의 서훈 재가 문서 1000여권을 정밀 검색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3300명의 한국인 명단을 찾아냈다. 그리고 친일 서훈록 분석을 통해 어떻게 친일 세력이 형성됐고, 이후 세를 불렸는지 등을 규명한 바 있다.

최문호 기자는 국회의원실을 통해 당시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로부터 서훈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정보 보호법(2014년 시행) 개정 이전이었기에, 가능했다. “2006년에 데이터를 받았지만, 컴퓨터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처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시 다른 급한 아이템들에 계속 밀려서 다루질 못 했는데, 항상 컴퓨터를 켤 때마다 그 폴더가 저를 노려보더라고요.(웃음) 그러다 다시 탐사보도팀에 가면서, 취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KBS 탐사보도팀에서 정보를 요구하자, 행자부는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KBS는 2013년 7월 행자부 장관을 상대로 서훈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4년 1월 대법원에서 KBS의 손을 들어줬고 KBS는 2006~2015년까지의 관련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행자부가 제공한 자료 중 41만 건은 사유가 비어 있었다. 사유가 적혀있던 나머지 자료들도 그 내용이 추상적이었다. 일부 훈·포장의 경우 아예 사유 내용이 빠져있기도 했다.

이후 최문호 기자를 비롯한 이병도 기자, 최광호 기자는 국무회의 의결기록과 부처별 인사기록을 일일이 대조해 정부에서 공개하지 않은 6만건의 새로운 데이터를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공적 사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72만 건의 자료가 모였고, 제작진은 1번부터 72만번까지의 엑셀 데이터 전부를 일일이 다 분석하며 취재할 키워드를 찾아냈고, 광복 70주년에 맞춰 ‘간첩’과 ‘친일’을 주제로 한 2부작 프로그램 제작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간첩 조작 사건 희생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간첩과 훈장’ 취재에 임했어요.”

▲ 2016년 2월 2일 〈KBS 시사기획창〉 '훈장' ⓒKBS

세 명의 기자가 소명 의식 속에 취재를 진행했지만 방송은 애초 예정됐던 날짜(2015년 5월)를 넘기고 이후에도 계속 미뤄졌다. 그리고 2015년 10월 ‘간첩과 훈장’을 취재했던 기자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타 부서로 발령됐다. 최문호 기자는 2~3주 간 업무 협조를 받으면서 ‘간첩과 훈장’ 제작을 했지만, 방송이 되기 직전까지 “데스킹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프로그램에 대한 개입”이 있었다고 한다.

“저는 원래 ‘데스킹(편집 과정)를 세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더 깊이 따져보는 거죠. 그런데 <훈장>에 대한 데스킹은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 위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이미 밝혀진 팩트에 대해서도 부인하거나 프로그램의 이미지와 내용을 약화시키는 과정이었어요.”

지난한 과정 끝에 ‘간첩과 훈장’과 ‘친일과 훈장’ 중 ‘간첩과 훈장’만이 <KBS 시사기획 창>에서 ‘훈장’(▷링크)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 2월 2일 방송됐다. 그러나 끝내 ‘친일과 훈장’ 편은 방송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최문호 기자는 지난 3월 11일 사표를 내고 KBS를 떠났다.

“2014년 보도 개입을 이유로 길환영 사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 당시 뉴스를 책임졌던 팀장급과 부장급들이 반성문을 썼어요. 그들의 반성문을 보며 KBS가 다시 제대로 된 언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는데, 1년 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그들의 반성은 결국 세월호 선장과 같았단 걸요. (길환영 사장 체제의) KBS가 무너질 것 같으니 제일 먼저 뛰어나온 거죠. 그런 와중에 계속해서 <훈장>의 제작과 방송 문제가 걸리다 보니 ‘적어도 내가 있는 기간에는, 더는 KBS가 제대로 된 언론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 KBS 시사기획창 〈훈장〉과 뉴스타파 〈훈장과 권력〉에서 최문호 기자가 취재하는 장면이다. ⓒ뉴스타파

다시 ‘훈장과 권력’ 취재를 시작하다

그렇게 KBS를 떠나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긴 최문호 기자는, 다시 ‘훈장’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훈장’에 다시 손을 대려 한 건 아니다. 함께 ‘훈장’을 취재했던 후배 기자들이 여전히 KBS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서  ‘훈장’이 완성되길 기다렸지만 도무지 2편이 방송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최문호 기자는 다시 취재를 시작했다. 그보다 앞서 KBS를 떠난 박중석 기자와 송원근 제작편집팀장, 조현미 기자, 데이터팀의 최윤원, 김강민, 이보람, 연다혜 기자와 팀을 구성해 취재를 진행했다.

“KBS에서 훈장과 친일 문제는 방송 일정이 잡히지 않아서 상세하게 취재를 진행하지 못했어요. 데이터는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72만건의 데이터를 일일이 읽으면서, 취재 키워드를 뽑아냈어요. 긴 시간이 필요했죠.”

그렇게 다시 하나하나 데이터를 훑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문들도 떠올랐다. 4부에서 보도한 <정경유착의 고리 ‘조세의 날’ 훈장>이 그 중 하나다. 이 아이템은 데이터를 유심히 살피던 김강민 기자의 의문에서 시작했다. 바로 “‘조세의 날’에 훈장이 왜 이렇게 몰려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질문을 안고 취재를 해보니 ‘조세의 날’에 훈장을 받는 기업엔 세무조사가 면제됐다. 그 사실을 안 취재팀은 그때부터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 관련 판결문을 전부 대조해 살폈다. “뇌물 액수와 뇌물 제공 사유들을 전부 정리한 데이터를 시기별로 훈장과 맞춰봤어요. 일정한 패턴이 보였고, 그 결과 재벌가의 세제 혜택과 훈장의 연결고리를 보도할 수 있었죠.”

제작팀은 ‘독재’, ‘친일’, ‘건국훈장’, ‘정권의 수사학’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내용을 정리했다. 그렇게 1부 ‘‘민주’ 훈장이 없는 나라’(링크)와 4부 ‘훈장, 정권의 수사학’(링크)을 최문호 기자가, 2부 ‘대한민국 훈장 받은 친일파’(링크), 3부 ‘건국훈장의 그늘’(링크)을 친일 분야의 전문가인 박중석 기자가 각각 맡게 됐다.

▲ 뉴스타파 〈훈장과 권력〉 4부작 중에서 2부 ‘대한민국 훈장 받은 친일파’, 3부 ‘건국훈장의 그늘’에서는 친일파에게 수여된 훈장과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14,000여 명을 대상으로 일제 강점기 전 시기의 행적을 전수 조사한 내용이 담겼다. ⓒ뉴스타파

취재에 ‘한계선’이란 없다는 걸 경험한 시간

“KBS에 있을 때는 위에서 아무리 ‘네 마음대로 해봐’라고 말해도 정작 제 마음 속에서는 어떠한 선을 넘지 못했어요. 그런데 <뉴스타파>에 와보니, 여기서는 그런 ‘선’이 없더라고요. 어디까지를 ‘선’으로 해야 프로그램의 질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거 말이죠. 재밌게도 그 ‘선’이 없어서 처음엔 취재가 쉽지 않았어요.”

이게 무슨 얘기일까. 최문호 기자는 72만건의 데이터 중 유명한 친일 인사인 ‘노덕술’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박중석 기자와 송원근 PD가 ‘데이터에 나오지 않는 친일파들도 분명 훈장을 받았을 텐데, 왜 이것밖에 없을까’라고 의문을 표시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일일이 찾아갔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아마 저라면 그 생각은 죽어도 못 했을 거예요. 특히 KBS에 있을 때는 ‘데이터는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100% 이 사람이다’라고 확인된 것만 보도하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데이터 상 생년월일이 없어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일일이 파악하려고 박중석 기자와 송원근 PD가 현충원을 다니면서 하나하나 대조를 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놓고 1만 3000명의 데이터를 비교하는 걸 보면서 ‘이게 바로 뉴스타파의 저력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훈장과 권력’을 통해 꼭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

최문호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훈장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관점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훈장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에 빠지기에 십상이거든요. 그러나 피해자가 아닌 그 다른 반쪽, 가해자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훈장은 대통령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권력이 왜 훈장을 이러한 방식으로 줬는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이번 취재에서 이런 관점과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어떤 사람들이 훈장을 받았는지에 대해 나열하는 기사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고민이 있었기에 <뉴스타파>의 <훈장과 권력> 4부작에서는 역대 정부에서 훈장을 통한 정치 수사학을 보여줄 수 있었다.

최문호 기자는 훈장의 내역과 함께 역사를 정리해 보겠다는 목표도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밝혀낼 수 있었어요. 법 체계상 특별법이 우선인 만큼, 그 사람들에게 수여된 훈장은 취소해야 마땅하죠. 그게 바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예의고, 국가가 정통성을 세우는 길이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부분은 <뉴스타파>에서 보도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국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죠.”

최문호 기자는 앞서 KBS에서 ‘간첩과 훈장’을 제작했을 당시에도 행자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행자부에선) 간첩 조작 사건을 한 수사관들의 명단을 달라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행자부에서도 재판을 통해 간첩 사건 수사관들의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만큼 훈장의 취소를 위해 그 명단을 달라고 한 게 아닐까요? 실제 행자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서훈 제도 개정을 지시했다는 보도자료를 낸 일이 있어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고쳐야죠. 이제 곧 열릴 국정감사에서 행자부와 국가보훈처도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최문호 기자는 지금도 행자부 홈페이지에서 훈장의 사유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친일세력들이 거짓 공적으로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유를 공개할 경우 문제가 될 걸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꼭 밝혀야 할 독립운동가나 민주화 운동 유공자들의 훈장 사유까지 전부 비공개다. “행자부에 대한 대법원의 정보공개 판결 속엔 ‘사유 공개’까지 포함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는 건 결국 대법원의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거라고도 볼 수 있죠.”

▲ 〈훈장과 권력〉을 취재한 <뉴스타파> 최문호 기자 ⓒ뉴스타파

탐사보도는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한 변화를 추구하는 저널리즘

자리를 옮기면서까지 탐사보도를 놓지 않고 있는 최문호 기자가 생각하는 탐사보도란 무엇일까. 인터뷰 말미, 질문을 던졌다. 최 기자는 “결국 탐사보도 기자들은 모두 ‘소명 의식’으로 취재한다”며 이 같이 답했다.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누군가 ‘탐사보도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걱정하지 마라, 세상의 어딘가에는 한 줌의 탐사보도 기자가 있고,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해요. 그의 말처럼 하나의 문제에 대해 집착하며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소명의식을 가진 기자들이 안타깝게도 현실엔 많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정말 ‘한 줌’의 기자들만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뭔가 바꿔보겠다는 열망’인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저널리즘이 결국 탐사보도 아닐까요.”

최문호 기자가 앞으로 더 천착하고 싶은 탐사보도의 영역은 무엇일까. 뭔가 거대한 주제를 예상했던 기자에게 그는 “르포를 쓰고 싶다”는 바람을 꺼내 보였다. 

“한국에선 탐사보도라고 하면 기자가 수사관처럼 사건을 캐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떠올리지만, 사실 르포 기사야말로 탐사보도의 가장 힘 있는 방법의 하나에요. 특히 저는 존 허쉬의 ‘히로시마’를 정말 좋아해요.(웃음) 르포를 쓴다면 ‘차별’을 주제로 하고 싶어요. 늘 해왔던 방법으로 취재를 한다면 구조적 문제로 접근을 할 테지만, 우리 사회에서 차이가 어떻게 차별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르포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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