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주필 취재로비 의혹, 과연 ‘조선일보’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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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기업이 비용 부담하는 취재관행, 끊어야한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이 언론 지면과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 말해 <조선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초기에 형성된 ‘우병우 수석 관련 의혹’ 프레임이 ‘청와대 vs 조선일보 갈등’으로 옮겨지더니 최근에는 ‘조선일보 취재로비 의혹’으로 이동했다. 초기에 제기됐던 ‘우병우 수석 의혹’은 이제 자취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언론 프레임이 이동한 계기는 청와대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19일 청와대 관계자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뒤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입증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 ‘프레임 전환’의 시작이었다.

‘우병우 수석 의혹’이 ‘조선일보 고위간부 취재로비 의혹’으로 바뀌기까지

청와대의 이런 입장 표명 이후 언론은 ‘일부 언론’이 어디인지 그리고 ‘부패 기득권 세력’은 누구를 말하는지 쪽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계일보> 8월 22일 보도 이후 프레임 전환은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이날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야 사장의 연임 로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유력 언론인 A씨의 친형이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언론계 일각에서 해당 유력 언론인이 소속된 매체가 <조선일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우병우 청와대 수석 관련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이후 적극적인 후속보도를 해온 <조선일보>에 대해 청와대가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양쪽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청와대가 ‘일부 언론’을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규정한 이유가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로비 의혹과 관련 있다는 말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오늘>은 지난 23일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유력 언론 고위급 인사가 <조선일보> 인사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미디어오늘>은 관련 보도를 하면서 “조선일보 고위급 간부 수사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문제는 대다수 언론이 이때부터 ‘조선일보 고위급 간부가 누구냐’라는 쪽으로 보도 초점을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후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은 언론의 관심영역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15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주최 '저성장의 늪을 건너는 법' 세미나에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뉴스1

‘우병우 파문’과 ‘조선일보’, 그리고 김영란법

급기야 <조선일보> 고위간부가 대우조선해양 비리로 지난 26일 검찰에 구속된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박수환 대표와 유착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9월에 이용한 호화 전세비행기에 유력 언론사의 논설주간이 같이 탔던 것이 확인됐다”면서 대우조선해양과 언론사 고위 간부 사이의 유착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김진태 의원은 해당매체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디어오늘> 등의 보도로 해당 매체가 이미 <조선일보>라는 사실이 밝혀진 상황. 이제 관심의 초점은 매체가 어디냐가 아니라 고위간부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김진태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유력 언론사 고위 간부는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미디어오늘>은 “그동안 검찰 안팎과 언론사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송 주필의 이름이 떠돌았지만 송 주필이 일부 언론의 취재에 응하면서 수면위에 드러나게 됐다”고 전했다.

그리고 29일 오전 김진태 의원은 대우해양조선으로부터 초호화 전세기 여행 등의 접대를 받은 언론사 고위 간부의 실명을 공개했다. <미디어오늘> 등에서 보도한대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었다. 김 의원의 폭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일보>는 송 주필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김 의원의 실명 폭로 후 5시간 동안 200개 이상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는데(8월 29일 오후 2시 20분, ‘네이버’ 뉴스 기준), 거의 모든 내용이 폭로 그 자체에 맞춰져 있다. 기자회견 직후 일부 기자들이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 물타기를 위한 폭로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 모양이지만,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김 의원이 “물타기가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걸 일부 덧붙이고 있을 뿐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이 ‘조선일보 고위간부 취재로비 의혹’으로 바뀌는 과정을 필자가 이처럼 길게 설명한 이유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현재 ‘어지럽게’ 언론 지면과 화면에서 보도되고 있는 각종 의혹들의 출발점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청와대의 ‘프레임 전환’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이 청와대의 ‘프레임 전환’에 힘을 싣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필자는 청와대의 ‘프레임 전환’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번 파문이 언론계에 던지는 ‘경고’도 매우 심각하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의 ‘불순한 프레임 전환 의도’와는 별개로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조선일보> 고위간부의 행태가 온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찍히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지난 26일자 신문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아무리 기업이 공식 초청한 일정이라 해도 유력일간지 고위 간부가 해당 기업이 제공한 호화 전세기에 탑승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여행 경비의 부담 여부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얼핏 봐도 ‘접대’ 의혹이 물씬 풍긴다”면서 “그가 전세기에 탑승한 시기를 전후해 <조선일보>에 대우조선해양에 매우 우호적인 사설이 실렸다는 김 의원의 주장도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2011년 9월 임대한 초호화 전세기를 이용한 유력 언론인은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회견에서 "지난번(26일) 박수환 게이트에 유력 언론인이 연루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면서 "해당 언론인이 반론을 제기했기 때문에 더는 실명을 언급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김 의원이 공개한 송 주필의 유럽 방문 당시 묶었던 이탈리아 로마의 호텔(오른쪽 위 아래), 현지에서 이용했던 초호화 요트(가운데 위 아래)와 송 주필의 부인이 대우조선해양이 제작한 선박 명명식에 행사에서 참석한 모습. ⓒ뉴스1

기업이 비용 부담하는 ‘취재관행’, 이번 사건을 계기로 끊어야한다

물론 <조선일보> 고위간부 비리 의혹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비리 의혹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한겨레> 지적처럼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특정 언론사에 대한 흠집 내기로 우 수석 비리를 물타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임이 분명하다. “언론사의 약점을 잡아 정권 비판을 약화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기”(<경향신문> 8월 29일자 사설)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문이 언론계에 던지는 ‘숙제’는 상당히 무겁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제공한 호화 전세비행기에 탑승하는 정도의 ‘편의제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기업들이 비용을 부담하고 취재하는 관행에서 한국의 대다수 언론이 자유롭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디 기업뿐인가. 정부가 ‘편의’를 제공하는 취재에서 자유롭지 않은 언론도 상당히 많다.

이 말은 ‘이런 관행’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을 언론계 스스로 하지 않으면, 권력을 견제하고 기업의 문제점을 보도하는 언론의 기본적 역할이 상당히 위협당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오는 9월 28일부터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될 경우 언론의 취재활동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상황에 따라 지금까지의 ‘편의적 취재관행’이 언론의 취재자유를 옭죄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지적처럼 “언론사 간부의 비리의혹은 ‘우병우 문제’를 덮는 가림막이 되어서도, 정권의 실정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미끼로 이용되어서도” 안되지만, 그것은 언론 스스로 현재의 ‘취재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철저히 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현재의 ‘취재관행’에 대한 근본적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약점 많은’ 언론사가 ‘정권 탄압’ 운운하는 것 역시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고위간부의 취재로비 의혹이 과연 <조선일보>만의 문제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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